현행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죽이고 있다니..[조윤선/한나라당 대변인 : 한나라당은 하루라도 빨리 현행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유예해서 무고하게 해고되는 근로자를 막고자 합니다.] (7월 4일 SBS 8시 뉴스)
서민들의 생계를 파탄내면서 서민들을 위한다고 속이는 한나라당 인사들과 MB정부의 관료들의 행태는 비정규직법 유예 논란에서도 여지없이 그 이중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현행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살리는 법이 아니라 죽이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의 이런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경제발전 ‘과정’이 매우 유사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최근 고용형태를 비교해 보고 현행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죽이고 있다고 강변하는 이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 실체를 해부해 보기로 한다.
우선 먼저 양국의 개괄적인 노동력 통계부터 보기로 하자. 2008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4,861만명, 일본의 인구는 1억 2,777만명. 2.63배 정도 차이가 난다. 같은 해 취업자 수는 한국이 2,358만명, 일본이 6,385만명. 역시 이 부문에서도 2.71배 정도 차이가 난다.
▲ (주-1) 임금근로자 : 대기업 임원까지 모두 포함하는 피용자, (주-2) 비임금근로자 : 자영업주와 그를 돕는 무급가족종사자, (출처) : 한국 통계청, 일본 총무성. | |
임금근로자의 경우는 어떨까. 2008년 우리나라의 임금근로자는 1,621만명, 일본의 임금근로자는 5,164만명. 이 부문에서 양국의 차이는 3.19배로 벌어진다.
양국의 임금근로자 수에서 이렇게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우리나라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이 일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2년간 한국 고용은 정규직 중심, 일본 고용은 비정규직 중심
양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아래 표는 우리나라 통계청과 일본 총무성의 고용통계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이 표에 의하면 현행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7년 3월과 올해 3월 사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일자리는 35만 개 늘어났다. 반면 일본의 임금근로자 일자리는 오히려 34만 개나 줄어 들었다.
정규직의 경우는 어떨까.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정규직 일자리는 74만 개나 늘어난 반면 일본의 정규직 일자리는 오히려 7만 개 줄어 들었다.
최소한 현행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7년 3월과 올해 3월 사이 한국의 고용시장에 일정정도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경우는 어떨까. 같은 기간 우리나라 비정규직 일자리는 40만 개 줄어들었고 일본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27만 개 줄어 들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2년 동안 우리나라 고용이 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일본의 고용은 비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행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정규직 비율 2.5%p 상승
양국의 근로자 중 정규직 비율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그 변화추이를 나타낸 것이 바로 아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현행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7년 3월과 올해 3월 사이 우리나라의 정규직 비율은 63.3%에서 66.6%까지 3.3%p 상승한 반면, 일본의 정규직 비율은 66.3%에서 66.6%까지 0.3%p 상승하는데 그쳤다.
2007년과 2008년 사이 정규직 일자리 48만 개나 늘었다
물론 이런 자료들에 대하여 보수세력들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많이 해고했기 때문에 정규직 비율이 높아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그런 제멋대로의 상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 (주) : 전년 동월 대비 근로자 수이므로 위 그림에 3월과 8월의 통계가 섞여 있다 하여 이것이 통계의 일관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주) : 일본의 근로자 총수가 우리나라보다 3.19배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본의 근로자 수를 3.19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출처) : 한국 통계청, 일본 총무성. | |
위에 소개한 두 개의 그림 중 앞의 그림을 보면 2008년의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근로자 일자리 수는 8월 기준 22만 개 증가하여 같은 기간 13.5만 개 감소한 일본에 비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두 그림 중 아래 그림을 보면 2008년의 어려움 속에서도 정규직 일자리 수는 8월 기준 48만 개나 증가하여 27만 개 감소한 일본에 비하여 비교가 안 되게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들은 현행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불리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정규직이 큰 폭으로 늘고 비정규직이 줄어드니 그게 비정규직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일본처럼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것인 모양이다.
일본처럼 비정규직 비율 높이는 것이 비정규직을 위하는 길이라니.. MB정부 권력 핵심부를 비롯한 보수세력들의 소원대로 우리나라가 현행 비정규직법을 버리고 일본과 같은 길을 선택할 경우, 즉 노동의 유연성이 더 강화된 길을 선택할 경우 비정규직 비율은 어떻게 될까. 그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자료가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자료이다.
이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2007년 3월과 2009년 3월 사이 36.7%에서 33.4%로 3.3%p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은 여전히 33.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비정규직법과 각 경제주체들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인사들과 MB정부 관료들은 말 그대로 막무가내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을 무력화하고 일본의 고용시장을 심각하게 훼손한 일본정부의 고용정책과 유사한 길을 가자고 떼를 쓴다. 심지어 후자의 길이 비정규직을 살리는 길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한 편의 엽기적인 코미디가 따로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한 편에서는 현행 비정규직법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우리나라의 고용사정이 OECD 중에서 가장 좋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자주 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이 사람들 말에는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OECD는 중장기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실업률은 2010년 3.9%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데 이어 2017년에는 3.5%까지 떨어지면서 멕시코(3.2%)에 이어 두 번째로 고용 형편이 좋은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연합뉴스 6월 29일자)최근 일본정부도 정책전환 움직임, 고용의 질에 청신호
지난 십수 년간 일본의 고용시장을 망쳐놓은 일본정부는 자신들의 고용정책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3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김은지 연구원은 ‘일본기업의 고용조정 가속화와 정책대응변화’라는 보고서를 내고 최근 일본의 고용시장동향과 일본정부의 고용정책에 대하여 서술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 일본기업의 고용조정이 비정규직에 집중된 배경으로는 △ 노동자 파견제도에 대한 규제완화 △ 2002년 이후 고용조정이 용이한 비정규직의 급증 등이 지목됨.- 일본정부는 1986년 ‘노동파견법’을 시행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 후반부터 수차례 개정과정을 통하여 파견사업 대상을 확대하는 규제 완화를 시행해 왔음■ 2009년 1월 5일 마스조에 요이치 후생노동성 장관이 노동자 파견을 제조업에서 금지하는 규제강화 필요성에 대해 언급함,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업종규제 등을 포함한 노동자 파견제도의 규제강화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음. (2008년에는 일용직 파견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뒤늦게 시작된 일본정부의 변화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2008년 마이너스로 급락한 정규직 취업자 수 증가율은 2009년 1/4분기에 플러스로 다시 회복되었다. 물론 취업자 수 변화를 고용정책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런 변화는 상당히 의미있는 변화로 해석된다.
▲ (출처) : 일본 총무성 통계 가공, (주) : 일본의 근로자 총수는 우리나라보다 3.19배 많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해석해야 함 | |
MB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헤겔은 그의 『법철학』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역사도 또한 필연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으니, 즉 현실이 무르익을 때에 비로소 관념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전자는 후자의 실재적인 세계를 그의 실체 속에서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하나의 지적(知的)인 왕국의 형태로서 구축하게 된다...철학이 자기의 회색(灰色)빛을 또다시 회색(灰色)으로 칠해 버릴 때면 이미 생(生)의 모습은 늙어버리고 난 뒤일 뿐...(중략)...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출처 :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지식산업사) 어렵게 쓰여진 헤겔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관념이 현실을 앞서갈 수 있다는 몽상에서 벗어나라’
필자는 자신들의 나쁜 머리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는 MB정부 인사들에게 늘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일단 국내외의 풍부한 사례들로부터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자신들의 나쁜 머리를 동원하라 이거다. 그렇지 않고 독선에 사로잡혀 객기를 부리면 거의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쓰라린 실패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본정부마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노선 전환을 꾀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그들의 반성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머리도 나쁜 사람들이 도대체 뭘 믿고 과거에 일본이 실패한 정책들을 그대로 재현해서 성공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객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1990년대의 과도한 토목경제로 크게 곤욕을 치른 일본정부는 2000년대 들어 이 정책에 대하여 크게 반성하고 그 비중을 대폭 줄여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이즈미 정부는 그것을 매년 3%씩 줄이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행하기도 했었다.
그 결과 일본정부의 지출총액 대비 정부의 건설투자액 비중은 1990년 15.0%, 1993년 17.9%, 1997년 15.4%, 2000년 13.1%, 2005년 9.6%로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대목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또 일본정부는 1990년대 이후의 과도한 노동규제완화정책으로 비정규직이 크게 늘면서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자 최근 이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성하고 자신들의 정책노선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의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MB정부의 납득하기 어려운 미숙한 행태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줍잖은 거짓말로 국민들을 계속 속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MB정부의 거짓말과 미숙한 행태들에 국민들의 언제까지 인내심으로 참아 줄지는 의문이다.
2010년은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국민들의 엄숙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MB정부가 진정으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국민들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