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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부답, 이런 것이 북한식 예의인가?
[시론] 북측은 피격사건 합동조사에 즉각 응하고 진심어린 사과 해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8/07/14 [18:12]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을 대하는 북한 당국의 태도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북측은 관광사업을 총괄하는 명승지 종합개발지도국 담화에서 짧게 유감을 표시한 반면 이 사건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남측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강도높은 어조로 요구했다. 북측은 남측이 요구한 합동조사 요구를 사고 경위가 명백하다는 이유를 들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북한측의 자세는 이중으로 잘못된 것이다. 먼저 북한측 주장과는 달리 박씨의 피살경위는 도무지 석연치가 않다. 당시 사고를 목격했던 목격자의 진술, 박씨가 투숙했던 호텔과 제2초소 및 피격 지점까지의 거리 및 지형, 북한측이 사고 발생 5시간이 지나서야 현대아산측에 피격사실을 알린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박씨는 군사보호구역인지 모른채 북한군 제1초소에 접근했다가 경고발송을 듣고 놀라 달아나다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누구나 쉽게 추리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북한측이 억지로 일관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결코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 발생 경위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서라도 북한측은 남한측의 합동조사 요구에 아무런 조건 없이 즉각 응하는 것이 옳다.
 
같은 동포의 비극적 죽음을 접한 북한당국이 보이는 비정함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윤리적 미감을 크게 거스르고 있다. '관광목적의 50대 중년 민간인 여성이 설혹 군사보호구역을 실수로 침범했다해서 꼭 사살을 해야 했나'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북한당국의 '유감'표명은 미흡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일각에서 이번 사고를 초병의 과잉대응이 아닌 북한측의 의도된 도발로 보는 데에는 북한측의 인색한 사과표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최근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출간한 회고록을 보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DJ의 금수산궁전 참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정상회담 성사 전부터 집요하게 DJ의 금수산궁전 방문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금수산궁전에는 사망한 김일성 전 주석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아마 김 위원장이나 북한당국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김일성 전 주석의 유해가 있는 금수산궁전을 참배하는 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예의를 소중히 여기는 북한측이 박씨의 죽음에는 냉담한 까닭이 무언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혹시 북한에는 망자에 대한 예의에도 위계가 정해져 있는 건가?
 
북한은 이제라도 남측과의 합동조사를 통해 박씨의 죽음에 관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소함과 동시에 박씨의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망인의 넋을 위로하고 남북관계의 경색을 막는 길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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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7/14 [18: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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