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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혁명으로서 촛불시위
 
이종우   기사입력  2008/06/21 [12:56]
아래로부터 혁명으로서 촛불시위

불은 어둠 속의 자연을 밝혀 주는 것이며 촛불은 인간을 밝혀주는 도구이다. 불은 자연 속에서 생겨 스스로 어둠을 밝히지만 촛불은 인간이 만들어서 그가 직접 들고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은 자연이지만 촛불은 인간이 어둠을 밝히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이 때문에 촛불은 자연의 어두움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지를 밝혀주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요즘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정부의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에 정전사고가 일어나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에서 무지함을 그대로 보여준 정부에 대하여 전국의 시민들이 보여준 것이었다. 지금까지 6.10 시민혁명 등의 민주화 운동은 주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젊은 직장인들의 동참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는 대학생 직장인 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유치원 그리고 주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그야말로 전계급의 모든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혁명은 엘리트혁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정부가 민의 식탁을 지켜준다면 촛불시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식탁을 지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희생을 요구하였다. 인간에게 식욕은 가장 중요한 본능적인 욕구이다. 물론 소고기는 우리의 주식이 아니다. 더욱이 한우라면 서민들의 음식이 아닌 중산층 이상의 음식이다.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는 한우 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서민들의 음식이다. 정부는 일자리와 더 큰 수익을 위해서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수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서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게 되었다.

정부는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미국정부에서 민간축산업자를 감시하게 한다는 것은 도둑에게 다른 도둑을 감시하라고 맡기는 꼴이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파견한 감독관에 의하여 감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광우병, 30개월 이상의 늙은 소가 수입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감독관을 파견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소의 수입이 근절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최대한 그러한 소의 수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협상이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추가협상을 한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서민의 식탁을 지킬 수 없는 정부가 과연 누구의 식탁을 지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물론 대통령도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먹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먹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결국 미국산 소고기는 그들과 관련이 없는 남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협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정부측 협상단은 미국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신에 불과하다. 조공을 바친 후에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는 것만으로도 황은을 입는 것이라고 그들은 떠들어 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도 손을 놓고 있음으로 해서 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으므로 촛불시위는 필연이다. 위에서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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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21 [12: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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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4 2008/06/21 [20:35] 수정 | 삭제
  • 더 이상 할 예기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