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는 위대하면서도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는 상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을 했던 소설가 이문열씨가 1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 씨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10%대 지지율에 강한 불신감을 나타내는가 하면 공영방송은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군사독재 시절의 언론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그는 촛불시위를 촛불장난이라고 조롱하며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는 명언(?)을 남기기까지 했다. 한편 이씨는 네티즌들의 <조중동> 광고끊기 공세에 대해서도 "그거 나는 범죄행위로 본다, 집단난동으로 본다. 범죄행위고 집단난동이고"라고 기염을 토하면서 "내란에 처하면 의병이 일어나는 법"이라며 비장하게 의병들의 궐기를 촉구하고 있다. 발언 도처에 드러나는 극우주의의 흔적들 이문열씨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급의 소설가가 한 사회적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수준이 낮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씨의 황당한 발언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극우적 멘털리티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극우주의자들의 주요한 특징은 사회적 다위니즘과 극단적 엘리티즘을 추종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중을 몇몇 음모가들의 조작과 선동에 쉽게 휘둘리는 우중(愚衆)으로 평가하며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의 다른 말로 이해한다. 극우주의자들은 분명 스스로를 철인(哲人)으로 여겼을 플라톤이 꿈꾸었던 철인통치에 가까운 정치체제를 선호한다. 이들은 체력, 지력, 윤리적 감수성 등의 거의 모든 부면에서 사람사이에 생래적 우열(優劣)이 있다고 단정한다. 극우주의자들이 사회적 다위니즘과 극단적 엘리티즘을 정신세계의 공통분모로 삼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극우주의가 위험한 까닭은 무엇보다 이런 이념들이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류에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아있는 파시즘은 기실 극우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기획이었다. 문제는 촛불집회를 촛불장난으로 폄하하는 이문열씨의 발언 곳곳에 극우주의의 흔적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는 촛불집회를 촛불장난으로 비하하고, "자발성과 순수성으로 충분히 위장할 수 있을 만큼 분산되고 무형의 비조직적인 것이라도 배후라면 배후"라며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애써 촛불집회의 배후를 추적하는 이씨의 눈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수백만의 시민들이 소수 음모가들의 교활한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어리보기일 뿐이다. 또한 이씨는 "우리 사회에서 이상하게 네티즌이라는 게 무소불위의 정부 위에 있는 권력이 돼 버렸다"며 네티즌에 대해 격렬한 적의(敵意)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네티즌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거나 교수와 같이 공적으로 확립된 제도에 의해 인정된 전문가들은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네티즌이 함부로 비난받아도 되는 것일까? 이씨는 그래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성 싶다. 시민들을 몇몇 음모가들의 선동에 의해 좌우되는 우중으로 본다는 점과 선출되지도 않았고, 공적으로 인정된 전문가도 아닌 네티즌에 대해 노골적인 경멸감을 보인다는 점을 보면 이문열씨의 멘털리티는 극우에 가까워 보인다. 극우적 멘털리티에서 벗어나길 이씨가 지금의 상황에 크게 당황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고 (촛불집회를 진압하기 위해서)의병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접하면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곤 하는데 이씨가 하는 행동이 꼭 그와 같다. 한편 이씨는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소위 보수진영에 대해서 이 정도의 지지를 보내준 것이 역사에 없었다. 말하자면 대통령을 500만표 이상 이기게 도와주고 또 범보수라고 말한다면 범보수에 들어올 수 있는 세력까지 합하면 거의 헌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의석을 줬다. 내가 헤아려 보니까 190 몇 석이 되던데 이걸 가지고 쩔쩔 매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걸 보면서 이것 참 도리 없더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망감이 일 때가 있다"고 말하며 침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이씨가 현실에 절망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및 한나라당 등을 보수진영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무슨 보수주의자들이 자국의 국익 보다 미국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도덕과 법치를 헌신짝 버리듯 하며, 국민 가운데 부자들과 힘센 자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나? 작년 초 이문열씨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 가운데 하나가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이씨가 지금과 같은 극우적 멘털리티를 탈각하지 않는 한 이씨의 꿈이 이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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