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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민심도, 당당한 미국도… 정부 '진퇴양난'
30개월이상 수출중단 요청에 美대사·백악관 난색
 
윤석제   기사입력  2008/06/04 [10:29]
정부가 미국에 대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으나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재협상 필요성을 못느낀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피력해 미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문제가 계속 혼란과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수출중단 요청이 미국 정부가 아닌 민간업체간 자율규제협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발표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눈속임식 미봉책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에 대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을 요청하고 이에 대한 답신이 올 때까지 고시와 검역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30개월령 이상에 대한 규제는 지난 4월 한미간에 합의된 수입위생조건 위반이기 때문에 정 장관의 발언은 누가 보더라도 사실상의 재협상 착수를 의미한다.
 
정 장관은 심지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든다"는 표현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정 장관의 발표가 끝난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 장관의 요구는 (미국의) 민간부문에 30개월 이상 된 소를 추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며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한미 양국 수출업자간의 자율규제협정(VER)에 무게를 실었고 미국 수출 쇠고기에 월령 라벨(Label)을 붙이는 조치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또 "우리 정부가 또다시 (미국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린다면 미국입장에서는 외교적 분쟁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시 검역중단만으로도 외교 마찰이 우려되는데 재협상은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강조하며 정부의 고충을 토로한 셈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만나 "미 업계가 자발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혀 이런 정황을 뒷받침했다.
 
들끓는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수입은 중단하겠지만,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는 민간업자들끼리의 자율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는 정부의 속내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주무장관과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말이 서로 달라 정부가 국민들의 우려와 불신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할 망정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작 문제 해결의 키를 쥔 미국측 버시바우 대사는 "재협상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유명환 외교장관을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정부의 고시연기에 실망하고 있으며 우리는 한국민들이 미국 쇠고기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에 대해 알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특히, "미국정부는 4월에 합의한 내용에 대해 변경을 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성난 민심을 달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허덕이고 있는 마당에 미국의 거부의사까지 겹치게 됨에따라 정부는 그야말로 곤혹스러움을 넘어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애초 잘못 끼운 첫 단추로 갈팡질팡하는 정부가 '여론의 성토'는 물론 '미국의 거부'라는 만만치 않은 두가지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게됐다. / CBS정치부 윤석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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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04 [10: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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