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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제대로 하기가 왜 이리 힘든가?
[논단] 삼성 이건희 일가에게 면죄부를 준 조준웅 특검이 남긴 유산들
 
이태경   기사입력  2008/04/18 [23:11]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 비리의혹 수사결과 발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사개시 99일 만에 조 특검팀은 이건희 회장 등 삼성의 전현직임원 10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의 배임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조준웅 특검=이건희 일가 면죄부 특검
 
조직적 정, 관계 로비의혹도, 삼성 비자금의 미술품 구입 의혹도, 에버랜드 사건 재판 증인, 증언조작 관련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도, 계열사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조 특검팀 앞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 특검팀이 거둔 유일한 소득이라고는 불법적 경영권 승계 과정에 이 회장이 깊숙이 개입하고, 4조5천억원의 차명자산을 보유하면서 세금 1128억원을 포탈한 사실을 확인한 것 뿐이다. 그러나 특검팀이 인정한 이 회장의 차명재산 4조 5천억원의 출처와 조성경위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따라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재산이 삼성 계열사의 비자금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절름발이 성과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조준웅 특검팀의 수사결과 발표 가운데 압권은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때였다.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한 특검팀의 불구속 이유는 국익론과 지배구조유지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특검팀은 “오늘 공소제기하는 범죄사실은 배임행위로 인한 이득액이나 포탈한 세액이 모두 천문학적인 거액으로, 법정형이 무거운 중죄에 해당한다”고 밝히면서도 주요 피의자들을 구속기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핵심 임원들을 구속하면 기업 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경쟁이 극심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라며 대한민국 경제를 걱정하는 동시에 “지배구조를 유지·관리하는 과정에 장기간 내재돼 있던 불법행위를 현시점에서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해 처단하는 것으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다.
 
임원 몇 명 없다고 삼성이 큰 어려움에 처할 리도 없지만 그 때문에 이건희 회장 등을 구속하지 않겠다는 특검의 주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국익이 불구속 사유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
 
이건희 회장 등의 배임행위 및 조세포탈행위가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재벌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이루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구속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특검팀의 주장도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이건희 회장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아들인 이재용 전무에게 경영권을 불법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계열사의 이익을 해친 행위가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말인가?
 
공정한 심판도 없는 곳에 시장경제 깃발만 나부껴
 
농구경기가 제대로 치러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기 규칙과 심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아니 농구경기 뿐 아니라 모든 운동경기가 다 그렇다. 시장경제도 다를 것이 없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의 룰과 심판이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게임의 룰은 헌법과 각종 법률이 될 것이고 심판은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 법원 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삼성, 더 정확히 말해 이건희 일가의 각종 비리 앞에서는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심판들 거의 모두가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방기하거나 일방적으로 이건희 일가의 편만 들고 있다. 조준웅 특검은 이 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역설적인 건 이런 일이 입만 열면 '시장경제'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 정권 집권 10년 동안 후퇴한 시장경제를 정상화시키자고 기염을 토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시장경제의 정상적 작동을 위해 필수적인 심판들이 반시장적인 행위들을 거침없이 하고 있는 상황은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 
 
조준웅 특검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건 정상적인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그리고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공정한 심판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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