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여성부 폐지,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의 엇박자
[정문순 칼럼] 시장주의 정부는 '여성'과 '가족'의 불편한 동거 용인않아
 
정문순   기사입력  2008/01/22 [16:00]
여성가족부가 김대중 정부 때 여성부로 출범한지 7년 만에 차기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와의 통합이라는 날벼락을 맞게 생겼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여성권한지수가 바닥을 기는 나라에서 여성 정책을 전담하는 독립 부처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무지와 편견을 충실히 떠받든 결과다.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성매매방지법, 호주제 폐지 등 여성들의 숙원사업을 일구어냈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도입을 추진하여 본격적인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독자적인 부처 소관이 아니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성과들이다. 여성가족부가 중앙이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해 추진하고자 하는 ‘성주류화’나 ‘성인지적 관점’의 접근은, 여성 문제를 복지부 소관 사항으로 이해하는 1970-80년대식 사고방식의 이명박 차기 정부로서는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일부 힘 있는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당선자에게, 여성가족부의 영어 명칭이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이듯, ‘여성’이라는 기호가 ‘성평등’을 뜻한다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문스럽다. 
 
여성 정책은 이 당선자가 오해하듯 고위 공직에 여성을 진출시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장하진 장관의 UN회의 발언처럼 여성 정책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의 근본적인 변화와 지속적인 개선”이 요구되는 심층성과 발본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 정책에 대해 성적 관점을 도입하는 ‘성주류화’ 정책은 공적인 영역에서 완강하게 굳어져 왔던 남성 위주의 사고와 관습을 뿌리부터 들추어내는 작업의 첫 걸음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여성부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성계 전반에 울려 퍼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21일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 대표와 장하진 여성부 장관의 면담 모습. 이들은 이날 인수위의 여성부 폐지 방침을 강하게 규탄했다.)     © 민주노동당

가령 여성의 감수성을 가진 이라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강행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성에게, 물줄기를 거스르고 강바닥을 파헤치고 산의 정수리를 뚫는 대역사와, 많은 비판과 우려에 귀를 닫고 이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차기 정부의 태도는 자신의 몸에 가해져온 성적 지배자의 끈질긴 수탈과 억압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남성지배적 욕망과, 무지막지한 자연 수탈과 막개발의 근친성을 밝히는 작업은 복지 부처 소속의 여성 정책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몇몇 특기할 만한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애초에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개편된 데는 여성 인권을 위함이 아니라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개발독재 시기만 하더라도 여성배제적 노동정책은 여성을 결혼 후 퇴직으로 이끌었기에 미래의 노동력 생산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하는 여성을 일터에서 내모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 없지만, 이제 여성들의 대응방식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양극화와 빈곤이 급증하는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열악함은 더 이상 여성들을 취업보다 출산을 택하도록 강제하지 못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여성들이 ‘출산 파업’을 선택하는 한 정부로서도 보육 환경이 여성의 취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 몫이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보조하는 데 그칠 일은 아니었다. 정부의 공보육 정책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아이를 몇 명 낳으면 출산보조금을 얼마 준다는 식에 그치는 근시안적 접근 자체에도 원인이 있지만, 보육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른 조건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에 무지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여성의 노동환경 개선이야말로 여성을 출산으로 유인하는 강력한 전제 조건임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노동 조건이 척박해질수록 여성이 결혼과 출산에서 멀어졌지만 정부의 노동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돌았다.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육아에는 개입할 수 있지만 여성의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건 참여정부의 관심 밖이었다. 여성 취업자의 70%를 비정규직으로 내몬 참여정부의 여성노동 배제 정책과, 여성가족부가 내건 공보육 정책은 서로 아귀가 맞을 수 없었다. 
 
이랜드에서 해고되어 기약 없이 농성 중이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된다고 하여 곧장 가정으로 발길이 향해지지는 않는다. 그녀들을 품어줄 안락하고 따뜻한 가정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비정규직화나 배제는, 그 가정의 경제적 안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은 여성의 노동권 확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 무지한 것이 참여정부였다.

이명박 차기 정부는 참여정부의 여성 정책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현 정부의 보육과 노동의 엇박자가 거추장스럽다고 내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시장이 원하지 않는 부처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손대는 일마다 시장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그 이름을 공공연히 내걸지 않은 유사 시장정부와, ‘기업 프렌들리’를 드러내놓고 외치는 시장 근본주의 정부의 차이점이다. 시장 만능정부로서는 출산과 육아 환경을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손대는 것조차 비효율과 낭비로 보일 것이다.
 
자신의 시장친화적 정체를 가끔 부인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는 ‘여성’과 ‘가족’의 불협화음 속에서 용케 버텨왔지만, 이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태도는 차기 정부에서 필요 없게 되었다. 여성 노동을 하찮게 취급하거나 제도적으로 내몰게 하면서도 성인지적 관점과 보육 환경 개선을 말하는 갈팡질팡한 모습을, 이명박 정부가 물려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8/01/22 [16: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눈탱 2008/01/24 [15:58] 수정 | 삭제
  • 초대 여성부 장관이 '대리모'가 뭔지 몰랐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두번째 여성부 장관은 여성계의 이화여대 독식현상에 대해 '우리때는 서울대 대신 이화여대를 택했다'고 정당화했다. 고로 서울대의 대한민국 요직 독식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세번째 여성부 장관은 세계적 망신거리가 된 '회식비 사건'때 자기는 모르는 새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장관들 수준이 그모양인데 여성부는 유지해야 된다 이거지?

    여성부를 만든 넘은 뒤로 딸자식 숨겨두고 한 여자를 자살로 몰고가도 추앙받고 김용갑 같은 의부는 여성부 폐지, 호주제 반대 주장했다고 재수없는 넘이라 이거지?

    여성부가 대한민국에 가장 크게 기여한건 호주제 폐지, 성매매금지 등이 아니라 저런 돌대가리 무식한 것들에게 철밥통을 기여했다는 거야. 좀 더 쉽게 얘기해서 여성학, 여성부 이런 것들 자체가 여자들에게 밥 그릇을 만들어 주었다는 거지. 그렇잖냐? 아픈데 찔리니까 뜨끔하자?

    여성부건 뭐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닌데.... 제발 할만한 사람들이 해라. 젊고 똑똑한 여자들이 하면 이렇게 반감이 많진 않을게야.

    제발 부탁인데 칠팔십년대 민주화 운동했네, 주장하는 올드 페미니스트들...
    늬들 이제 역사의 장 밖으로 좀 사라져라.
    이화여대 페미니즘... 김활란의 후계들말이다.


  • 알렉스 2008/01/23 [21:22] 수정 | 삭제
  • 정말 다 노무현 탓이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명박의 여성부폐지도 노무현 탓이라고 하니, 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