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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장관, 중증장애인보고 죽으라는 건가"
장애인 25명, 활동보조인 서비스규탄 단식농성...매월56만원 부담해야
 
이석주   기사입력  2007/01/27 [13:29]
바닥에 엉성하게 깔린 스티로폼, 주인을 기다리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운동화, 조금전까지 누군가에 의해 덮혀졌을 침낭. '농성장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수칙'이라고 적혀있는 벽보.
 
기자가 26일 찾아간 국가인권위원회 11층 '인권위 배움터2'의 모습이다. 불과 4일 전, 책상과 서류등이 정돈돼 있었을 이곳에는 기본적인 생필품과 농성일정이 적힌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리고 몸을 정상적으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 이석주

중증장애인 25명이 휠체어를 손수 이끌고 지난 24일 인권위 건물 11층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 창문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활동보조인 권리쟁취를 위한 집단 단식농성'이라고.
 
집단 단식농성 3일차를 맞이한 26일, 기자가 만난 한 장애인은 "가장 힘든 점은 단식이 아니라 바로 옆의 동지들이 쓰러져 실려나가는게 가장 힘들다"고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줬다.
 
실제로 기자가 농성현장을 찾은 시각은 단식농성을 벌이던 장애인 남녀 두 명이 탈수증상을 보여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된지 몇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렇듯 휠체어를 이끌고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들이 인권위 11층 까지 올라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활동보조인 서비스 실시계획(안)' 때문.
 
"활동보조인 하루 2시간? 밥상차리면 끝나는 시간"
 
'활동보조인 서비스'란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중증장애인들이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조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 이석주

즉 혼자의 힘으로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 권리로,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인간다운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각 지자체 별로 운영중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중증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을 모집하고, 이들을 대부분 시간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즉 제도화되지 않은 채 희망자에 한해서만 파트타임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
 
장애인 단체에 따르면, 현재 각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15~20명 정도의 활동보조인이 장애인들의 수발을 돕고 있고, 서울시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중인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가 중증장애인들의 염원인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지난해 12월 한달 간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는 이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시범사업을 경험한 장애인들은 장애인 본인부담금 10%와 예산책정이 9개월치만 이뤄진 점에 대해 반발했다. 즉 시범사업이긴 하지만 서울시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자부담이라는 '덤'을 선물한 셈이 됐다.
 
이러한 논란은 올초까지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지난19일 공청회를 열고 서울시가 진행한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범사업의 내용을 토대로 오는 4월1일 부터 '중증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
 
  © 이석주

복지부가 내놓은 실시계획(안)에 따르면, 전국 약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지원하되 그 대상에 있어서는 예산부족의 이유를 들어 몇가지 제한을 내걸었다.
 
즉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가구소득기준으로 차상위 200% 이내에 속하지 않는 장애인들을 활동보조인 서비스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 무늬만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된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도 차별화 시켜 차상위 120%까지는 10%의 본인 부담금을, 120%~200%까지는 20%의 본인 부담금을 책정했다. 심지어 200%를 초과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100%를 자부담으로 넘겼다.
 
이밖에도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제공 시간을 월상한 80시간으로 제한했다. 이를 일자별로 따져보면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하루에 고작 2시간 남짓.
 
특히 이처럼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공에 시간제한을 둔 것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단체와 합의한 내용에 어긋나는 행위여서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활동보조인 서비스제도화 쟁취를위한 공동투쟁단’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제공 시간은 필요도에 따라서 상한선을 두지 않는다"고 공문을 통해 합의한 바 있다.

모든것을 종합해 볼때, 보건복지부가 제한한 3가지 조건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차상위 200%에 포함되지 않는 장애인이 한달 80시간의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56만원을 본인 스스로가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시간당 단가는 7000원 선.
 
실제로 인권위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25명의 장애인 중 복지부가 내놓은 제한 조건에 걸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은 44%에 달하는 1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준) 이원교 운영위원장은 "단식중인 장애인의 과반수 가까이가 이 정도인데, 복지부 정책이 전국에 적용된다면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겠느냐"고 토로했다.
 
   © 이석주


이 운영위원장은 특히 월80시간 제한 방침에 대해 "하루 2시간이면 활동보조인이 장애인 집에 와서 밥상차려주면 끝나는 시간"이라며 "보건복지부가 장애인의 생존권 의미를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 운영위원장은 "보건복지부나 서울시는 장애인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이해한 채 예산 타령만 하고 있다"며 "인권문제로 접근한다면 이런 졸속적인 행정을 펼치치 않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장애인들의 반발에 현재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19일 공청회를 마친 복지부는 오는 2월 께 사업지침을 확정하고 4월1일 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인권위 모두 장애인들 외침 들어야"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26일 성명을 내고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3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민노당은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중증장애인들은 활동을 할 수도 없고 심지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지난해 발생한 몇몇 장애인들의 사고를 통해 충분히 알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노당은 "보건복지부는 한겨울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2월 초 확정 할 사업지침에 단식농성단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노당은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국민의 마땅한 권리를 위한 이번 요구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장애인들의 투쟁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슈아이 (www.issuei.com) / 대자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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