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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광주항쟁, 방자해지는 전두환
[논단] 광주항쟁 주간에 골프치고 축사, 학살자에게 우호적 여론이 원인
 
이태경   기사입력  2006/05/22 [19:20]
5·18 주간에 이뤄진 전두환의 행보는 양식 있는 사람들이 지닌 보편적 윤리성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는 19일에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 후 20일에는 극동방송 50주년 기념식장에서 축사를 했다고 한다.

전두환의 방자한 언행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광주민중항쟁 기념일 바로 다음날 보란듯이 골프를 치는 그의 파렴치함에 새삼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광주민중항쟁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공식적으로 편입된 지도 벌써 10여 년이 흘렀건만, 이 인간도살자가 광주에서 살육된 시민들에 대해 어떠한 형식으로건 사죄를 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전두환의 하수인들과 수구언론은 피해자들에게 화해와 용서를 먼저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곤 한다.

기실 동서화합이라는, 정작 그 자신도 믿지 않았을 명분으로 전두환을 사면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도, 자신이 가진 재산은 29만원뿐이라며 사법부를 능멸하는 전두환이 은연 중 기대는 것도, 이 잔인한 학살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의 존재 덕분이다.

5월 광주의 진상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지금도 광주민중항쟁을 여전히 '광주사태'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여론의 힘은 그리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여전히 한국사회 구성원들 중 상당수, 특히 경상도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5월 광주에서 학살된 동족들의 죽음에 놀랍도록 둔감하다.

'빨갱이'와 '전라도'는 차별받아야 마땅하고 더 나아가 존재자체가 소거(掃去)되어도 괜찮다는 사회적 심성이, 아직도 상당수 한국사회 구성원들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빨갱이'는 이념적 소수자라는 의미에서, '전라도'는 지역적 소수자이자 내부 식민지라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적 소수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원리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생생한 실례라 하겠다.

차별과 배제의 원리로 무장한 채 '빨갱이'와 '전라도'를 인간 이외의 존재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황폐한 심성이 바뀌지 않는 한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의 방자함이 줄어들 가능성은 옅다.

주지하다시피 전두환 일파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이미 끝났다. 법치국가에서 동일한 범죄에 대한 이중처벌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단죄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5월 광주가 한국사회 구성원들 대다수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민간인 학살이자 국가폭력이라고 인정받고, 전두환과 그의 하수인들이 저지른 범죄가 인간이 범한 그 어느 범죄 보다 무겁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야 학살자와 그의 하수인들은 비로소 사죄와 반성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전두환 일파를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고 그들의 고백과 참회를 얻어내기 위한 싸움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학살자와 그의 하수인들이 아무런 참회나 사죄 없이 평안하고 호사롭게 여생을 즐기도록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 본문은 오마이뉴스와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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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22 [19: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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