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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변신 중인가?
[논단] 평택에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아닌 ‘아름다운 조정’을 기대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08 [11:39]
좌파와 우파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 프랑스 대통령인 작 시락은 매력적인 사람이기는 하다. 프랑스 사람한테 불어 잘 한다고 하는 것은 우스울 것 같아도 시락이나 아니면 그의 평생의 정치 라이벌이었던 프랑수와 미테랑이나 불어를 참 잘 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하는 말인데, 2~3분에 한 번 정도 작은 문법적 오류가 나올 정도로 완벽한 불어를 구사한다고 지적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시락이 가장 처량하게 “단 한 번만 봐달라”는 말을 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 대통령이 되어서 첫 번째 한 사업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영화 <고질라>의 배경이 된 남태평양의 핵실험이 바로 그 사업이었는데, 핵폭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딱 한 번은 핵실험을 해야 한다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국민들에게 “딱 한 번만 봐달라”고 TV에서 정말 애절하게 국민들에게 호소하였다.

우리 식으로 하면 국론이 쫙 분열이 되었는데, 좌파, 우파의 구분이라기보다는 전쟁에 대한 기본입장으로 구분이 되었고, 그 이후 시락에게는 전쟁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드골을 계승한다고 하는 시락이었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분위기에서 핵실험은 부담스러운 결정이기는 한 것 같다. 적지 않은 우파들도 전쟁에 대해서 반대하며, 핵실험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하였다.
 
한명숙 총리가 며칠 동안 처리한 일들이 좀 있기는 했겠지만 국민으로서 한명숙 총리의 첫 번째 목소리를 들은 것이 평택에서의 공권력 행사가 행사가 적절한 조치였으며,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조치”를 지시한 것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말을 거론하거나 ‘시민단체와의 오래된 인연’ 같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인정에 호소하는 것은 너무 구질구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더 좋은 일들과 박수 받을 일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일로 총리의 첫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작은 바램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별로 정의로와 보이지 않는 공권력 행사가 국민들에 대한 총리의 첫 목소리가 된 셈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찬란해 보이지도 않는다.
 
토지수용과 관련된 평택 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해답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조사”를 하라고 꼬리표까지 달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읽어보고 싶지만, 불행히도 국무회의 전체를 다 볼 수 있던 것이 아니라서 내가 들은 말은 어쨌든 잘 했고, 다 잡아 넣고, 감옥 보내라는 소리를 한 것으로 들린다. 나의 국어 실력 특히 행정적 표현에 대한 국어실력이 자신이 없기는 한데,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그런 의미일 것 같다.
 
약간 더 해석한다면 군인들이 그냥 무방비로 있다가 당하지 말고 곤봉 정도의 무장을 하라고 하는 말로 들리기는 한다.
 
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상징만으로 보자면 공안사건에 죽봉과 물대포, 그리고 군인까지 다 동원되어 있으니까 남은 것은 최루탄 뿐이다. “부드러운 공권력”이라는 말이 성립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군인들과 민간인이 직접 대처하게 된 현재의 상황에서 상황이 부드러워질 것 같지는 않다.
 
임종인 의원이 제안을 조금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미군 부대 부지에 대한 약간의 조정을 통해서 주민들의 토지수용 지역에 대한 절충안 같은 걸 만들어 볼 여지가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다. 800만평 중 상징적으로 10만평이면 어떻고, 1만평이면 어떻겠는가. 아무도 만족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조정 같은 걸 시도할 수도 있고, 지역주민들을 생각해서 “상징적 1평”이면 어떻겠는가! 지역의 주민들과 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대화하고 그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생겨나고 합의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평도 물러설 수 없고, 예정된 일자에서 단 하루도 변경할 수 없으며, 게다가 공권력이 밀리는 상황은 절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현재의 국방부의 입장이 그대로 정부 입장이라면 도대체 총리가 가질 수 있는 정치력과 행정력의 기반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실’은 이렇게 꼬여있고 기존의 행정절차로는 쉽게 조정하기 어려운 일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이런 특별한 부서를 총괄하고 “국책”을 조율하는 자리에 앉은 참여정부의 소위 ‘실세 총리’에 임명된 한명숙 총리에게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기대가 있는 것은 정부절차상 총리가 개입해서 약간의 뉘앙스를 주고, 약간의 조정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군이 진주한 평택에서 시작해 새로운 공안정국이 올 것인가? 아직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에서 밀어붙이기로 작정한 한미 FTA와 줄줄이 늘어선 사태들을 따져본다면 애당초 토론과는 상관없이 언론과 여론으로 몰고 가는 “민중과는 경직된 관계”라는 특별한 정국이 전개되기는 할 것 같다.
 
“원칙대로 구속하라”는 대통령과 생존권이나 거주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길 당사자 사이에 충돌이 불보듯 뻔하기는 한데, 이 일련의 흐름에서 총리는 조정의 역할보다는 공권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이 든다. 한명숙 총리는 아주 어려운 시기에 총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인데, 대단히 강성 총리가 될 것 같다. 불행히도 총리의 첫 번째 정책조정에서 했던 역할이 그러한데, 앞으로 이러한 입장이 변화할 특별할 계기가 별도로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늘은 평택이지만, 얼마 후에는 한미 FTA와 관련된 서울 집회에서 다시 한 번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라는 총리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것 같다.
 
조심스러운 예견이지만 이러한 신 공안정국의 흐름이 폭발할 순간은 기업도시가 될 확률이 높다. 똑같은 논리의 토지수용인데, 기업도시법에서 지금 미군들이 사용할 땅에 대해서 국방부가 토지수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에서 사용할 땅의 50%만 매입하면 나머지 민간소유의 땅에 대해서도 토지수용권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 때에도 지금처럼 “국익”이라는 말 한 마디로 강제수용을 총리가 두둔할 수 있을까? 운이 좋으면 다음 총리 때 벌어질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가면 총리 재임 때 벌어질 일이다.
 
사실 지금도 총리가 결심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기는 하다. 새만금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고, KTX의 여승무원 대량해직에도 조정의 미학을 발휘할 수 있고, 밀실협약처럼 진행될 한미 FTA에도 사회적 논의를 연결시킬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독불장군처럼 혼자 해결하겠다는 과감성을 주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첫 번째 들은 목소리가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라는 말이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우리가 아름다운 대통령을 모시고 있지는 못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총리의 기억”을 가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하다.
 
노무현 정권 후반부의 신공안정국의 첫 번째 사건이 평택 사건이었고, 총리의 첫 번째 목소리가 그 신호탄이었다고 역사가 이 순간을 기록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직 열려져 있는 역사의 펼쳐지지 않은 페이지에서 이제부터의 총리의 걸음을 아직은 애정 어린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는 눈이 많다.
 
“불미스러운 일”이나 “유감스러운 일” 정도로 표현해도 유사한 행정효과가 발생했을 것 같은데, 굳이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라고 꼭 짚어서 표현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
 
평택, 아직은 대화하고 접점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총리에게서 마음이 떠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치,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몸을 낮추고 마음을 사는 것이 좋은 정책수행의 본질임은 예로부터 변한 것이 없다. 신임총리에게서 이 아름다운 정치 그리고 아름다운 “조정”을 보고 싶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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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08 [11: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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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06/05/08 [19:59]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