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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할러데이, 재즈에 담은 고난의 삶과 영광
[비나리의 초록공명] 천상의 목소리, 비참한 삶, 20세기 미국 치부드러내
 
우석훈   기사입력  2006/04/01 [12:05]
마크 레빈슨이라는 분이 있다. 아직도 살아있다. "분"이라는 말이 어색해서 나는 잘 쓰지 않는데, 몇 사람에게는 분이라는 말을 과감히 쓴다. "하이엔드"라는 말을 유행하게 한 것도 마크 레빈슨이지만 현재의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라는 분리형 앰프 체계를 만든 것도 마크 레빈슨이고, 그래서 전세계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기도 하다. 마크 레빈슨 앰프 한 번 가져보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몇 번 만나봤는데, 한 덩어리에 천 만원은 간단히 넘어가는 거라서 지나가다 괜히 사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마크 레빈슨을 "분"이라고 부르는 건 단 한 마디 때문이다. 언젠가 기자가 마크 레빈슨에게 몇 채널이 최적이 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80년대 초반에 4트랙이 등장한 적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음악은 오랫동안 2트랙 즉 스테레오가 대세인데, 몇 년 전부터 SACD 등 차세대 포맷이 등장하면서 요즘에는 음악도 5트랙으로 녹음을 시작했고, 최근에 등장한 가수들은 이 5트랙으로 녹음하는 역사적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SACD가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는 야신타일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LP만큼 소리가 좋은 CD라고 불리는 SACD 플레이어에서 기준이 되는 소리가 야신타의 목소리가 얼마나 잘 나오느냐 이다.
 
마크 레빈슨은 음악을 들을 때는 모노면 충분하다는 뜻밖의 답을 내었다.
 
"아니 루이 암스트롱이 언제는 스테레오로 녹음해서 좋았던 거냐구?" 마크 레빈슨의 대답이었다.
 
지금도 가끔 모노음반을 사기는 하는데, 일부로 사는 건 아니고 명반을 산다고 사면 대부분은 모노음반이다.
 
내가 최고의 테너라고 생각하는 기그리의 녹음은 전부 모노이지만 모노로 녹음된 진주잡이를 우리 집에서 듣고 최고의 노래라고 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별로 못봤다. 소리통만 큰 돼지 멱따는 요즘의 테너들과는 그야말로 급이 몇 급 다르다. 불행히도 스테레오 녹음은 없다.
 
여성 보컬이라는 쟝르가 있는데, 사실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악 쟝르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하이톤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디오 애호가들이 스피커나 앰프 성능을 체크할 때 많은 경우 여성 목소리를 기준으로 한다. 대충 빌리 할러데이, 엘라 피츠제랄드 그리고 에바 케시디 같은 사람들이 기준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빌리 할러데이는 거의 대부분이 모노 녹음이고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리마스터링 했다고 해도 녹음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빌리 할러데이의 앨범을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요즘은 한물 간 듯하지만 제프 백 열광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빌리 할러데이는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음악을 골라 듣기시작하면서 용돈을 털어서 사는 음반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최고의 여성 보컬로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재즈칸에서 가장 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빌리 할러데이이고,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글이지만 자살하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노래가 빌리 할러데이였고, 역으로 자살하고 싶던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자살하지 않게 된 사연이 가장 많은 사람이 빌리 할러데이이다.
 
아마 최고의 여성가수를 꼽으라면 언제나 1등은 빌리 할러데이의 몫일테지만 그녀의 삶은 20세기가 도대체 어떤 세기였던지의 그 치부 그 자체이다.
 
13세된 흑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길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오히려 불량소녀로 감옥에 가면서 그녀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혹은 그 당시에 많은 흑인 소녀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의 뒤는 너무 뻔했다. 가난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클럽에 가짜 댄서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노래는 할 줄 아냐?"는 제안에 "노래는 잘 해요"라고 첫 곡을 불렀을 때 클럽 안은 그야말로 세상이 멈춘듯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거의 사기에 가까운 결혼으로 그녀는 성공과 결혼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고 마약 중독자가 되었는데, 요양원에 마약을 끊기 위해서 들어갔다가 그녀를 증오하는 요양원측에서 정신병원에 밀고해서 정말이지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마흔 넷에 죽었다.
 
"병명 : 마약 중독 말기 증상
 치료 방법 : 없음"

 
이 황당한 세상에서 그녀가 정면으로 내세운 노래가 바로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라는 노래이다. 벌판의 포퓰러 나무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풍경은 현실의 상황이었다.
 
그녀가 죽기 전에 완전히 상한 목소리로 불렀던 마지막 앨범인 "Lady in Satin"이 어느 음반사에서 조사한 21세기 최고의 명반에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노래가 들으면 누구나 알고 있을 "I'm a fool to want you"이다. 젊었을 때의 힘있고 기름진 소리 대신에 망가진 빌리 할러데이의 몸상태가 음악에 묻어나오지만 그 대신에 관조와 깊이는 최고로 깊어져 있는 상태이다.
 
홍대 앞에 가면 Strange Fruit라는 아주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고는 하는데 난 아직 못가봤다.
 
이상한 과일이라는 음악을 들으면서 백인들 중 소위 '마초'들은 빌리 할러데이를 엄청나게 증오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재즈가 세계의 음악이 된 이유는 시대와 같이 호흡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Billie Holiday - Strange Fruit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The scent of magnolia sweet and fresh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 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

포플러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

 

멋진 남부의 전원 풍경,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달콤하고 상쾌한 매그놀리아 향,

그리고는 갑자기 풍겨오는,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여!

 

여기 까마귀들이 뜯어먹고,

비를 모으며 바람을 빨아들이는,

그리고 햇살에 썩어가고 나무에서 떨어질,

여기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있다.

 

침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이곡은 백인 인종차별집단 KKK에 의해 나무에 목매달려 썩어가는 흑인들의 주검을 보며 유대계 백인 교사 아벨 미어로풀 Abel Meeropol 이 만들었고 빌리 할러데이 Billie Holiday가 불렀다.
 
* 빌리 할러데이 노래와 가사 번역 출처 : http://cafe.naver.com/ga3040/1013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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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01 [12: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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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6/04/01 [16:34] 수정 | 삭제
  • 너무나 잔혹한 가사에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이라니!
    니나시몬이나 사라방이 그 계보를 잇는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