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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룰라송과 대한민국의 노비어천가
조중동과 SBS의 눈물겨운 라이브 쇼를 보며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2/12/23 [12:24]
지난 10월 28일 브라질은 새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TV 글로보를 통해.

조선일보가 며칠 전 까지 한국에서 자칭 ‘1등 신문’ 노릇을 해 왔다면 브라질의 ‘1등 언론’은 TV 글로보다. 개표 당일에도 인구 1억 7천만의 브라질에서 무려 5천 1백만이 넘는 시청자가 TV 글로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노동당의 룰라 다 실비아가 대통령으로 확정되는 순간, TV 글로보의 생중계가 느닷없이 <룰라 스페셜 쇼>로 급변하자 브라질의 시청자들은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TV 글로보는 룰라에 대해 온갖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일삼았던 대표적인 보수언론이었기 때문이다.

룰라와 수구파의 페르난도 콜라 데 멜로가 맞붙었던 지난 1989년의 대선에서 TV 글로보는 두 후보가 벌인 TV 토론을 교묘하게 편집해 룰라에게 불리하도록 화면을 꾸몄고 룰라의 신상에 대한 온갖 증명되지 않은 악소문을 진실처럼 보도해 룰라는 대패하고 말았지만 TV 글로보의 전폭적 지원으로 당선된 페르난도 대통령 역시 온갖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결국 사임하고 만다.

룰라의 대통령 당선 이후 TV 글로보는 연일 룰라를 화려하게 조명하며 마치 자기들의 승리인양 행세하고 있는데 파이낸셜 타임즈는 TV 글로보가 룰라의 승리를 TV 글로보의 승리로 둔갑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뻔뻔하게도 그간 룰라를 폄하하고 온갖 왜곡보도를 일삼던 과거는 마치 없었던 일인 마냥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것이다.

{IMAGE1_LEFT}TV 글로보의 이런 역겨운 행태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심지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까지 동원해 하루 종일 특집 축하 쇼를 벌인 SBS의 황당한 처세를 떠올리게 한다. 대선 기간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편들고 나섰던 SBS는 노무현의 승리를 자사의 승리로 둔갑시키기 위해 지금 눈물겨운 코미디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TV만 보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살피는 노인층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들의 이런 역겨운 라이브 쇼를 믿지 않겠지만.

파이낸셜 타임즈는 TV 글로보의 이런 화려한 변신에 또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1925년 창사 이래 브라질 최대의 언론재벌로 영향력을 지켜 오던 TV 글로보는 인터넷 열풍에 맞추어 독자적인 뉴스 포털을 만들고 수많은 잡지를 인수·창간하는 등 방만하게 사업을 확장했는데 닷컴 붕괴 이후 불경기가 몰려오자 엄청난 빚이 그룹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룰라의 측근인 호세 디르체우는 브라질 미디어 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이 지금 “국가적 당면 과제”라는 언급을 해 TV 글로보의 눈물겨운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TV 글로보는 룰라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호의적 보도를 통해 부채 연장 아니면 탕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TV 글로보의 이런 행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동아일보는 새 사옥을 짓고 고가의 윤전기를 들여오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 오다 IMF 위기를 맞자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당시 대우 같은 거대재벌도 줄줄이 무너지고 있던 상황에서 DJ정권에 압력을 넣어 수천억원에 달하는 부채의 만기를 연장해 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했지만 DJ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한다.

{IMAGE2_RIGHT}DJ정권에 대한 동아일보의 적대적 보도는 지난 해 세무조사를 전후해 본격화되기 시작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이 때 쌓인 해묵은 감정이 근원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정설이다.

노무현이 당선되자 그간 그에게 적대적인 보도행태를 보여 온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대대적인 ‘노비어천가’를 불러대며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다. TV 글로보의 경우에서 보듯 언론과 정권의 야합은 우호적 보도와 금융지원이라는 음성적 거래로 이루어지는 것이 대체적 흐름이다.

언론과 정권의 유착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언론수용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 밖에는 없다. 아울러 이회창 대세론과 마찬가지로 언론에서도 소위 ‘1등 신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대세론을 격파해야만 한다. 대세론을 추종하는 기성세대는 지면의 품질에 관계없이 그 신문이 정권핵심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언론 대세론’만으로 구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각 예상자 명단을 미리 맞추었다고 으스대면서 사세를 과시하는 기성언론의 촌스러운 작태는 이제 과거의 추억으로 돌려버릴 수 있도록 언론수용자의 감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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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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