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역모기지론, 정말 제대로 알고나 있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사회적 보장제도도 미국 방식으로 전환되는 신호탄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22 [18:45]
1. 역 모기지론을 통해 보는 시대 유감
 
모기지라는 단어를 나도 잘 쓰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대형 건물 같은 데에서 에너지 절약설비를 설치할 생각이 있으면 ESCO(energy service company)에 연락을 하면 추가 비용 부담없이 조명도 갈아주고 최신형 절약설비들을 달아준다. 이 설비 개체의 비용은 절약된 전기비 등 에너지 비용에서 설치회사가 회수하고 건물주는 자기 비용 없이 에너지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전기비용 사이에서 턴오버 기간을 잡을 것인가 혹은 금리계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우리나라보다 이자율이 싼 외국의 자금을 끌어오면 턴오버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소위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이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일본 전문가들이 표현대로 “마른 수건 짜듯이” 에너지를 줄이는 것은 개인들에게 줄어든 비용은 별거 아니라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에너지 안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게 가능한 이론적 이유로는 건물에 설치한 에너지 설비가 도망갈 이유가 없기 때문인데, 여기에도 모기지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소유권과 질권 사이의 특수 관계에 의해서 부동산 형태의 자산에 대해서 금융기법이 투입되는 것을 모기지라고 부르고, 80년대 후반부터 경영기법으로 국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2. 그 자체로는 조세 중립적인 제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이 금융기법을 도입한 것을 역모기지라고 부른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사회적 수요가 생기면 금융기관에서 알아서 만드는 장치인데, 정부가 이 장치에 개입을 했다. 평균수명을 넘어서는 나머지 기관에 대해서 약간의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 위험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직접 개입을 한 것을 역모기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걸 놓고 잘 한 거니 못한 거니 얘기들이 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역모기지론 자체는 나쁜 제도는 아닌 것 같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나이에 그렇게 해서라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좋은 제도이고, 게다가 10년 전부터 이런 사람들에게 “임대사업”을 하라고 하던 황당한 정책 방향보다는 조금 나은 제도 같다.
 
어차피 역모기지론 시장이 국민의 5% 정도에 해당한다고 설정을 해보면 평균 수명을 계산하고, 전체 평균의 변동 리스크만큼을 재보험 형태로 흡수하게 되면 쉽지는 않은 계산이지만 부동산 시장이 균형이라고 가정할 때 특별히 세금을 더 많이 쓰지 않더라도 작동할 수 있는 장치이기는 하다. 운용만 잘 한다면 정부는 민간 금융기관이 할 수 없는 수명증가분에 대한 보장만 해주면 특별히 세금이 더 들어가지 않고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장치일 것이다.

물론 기분 좋다고 개인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면 망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이유로 지나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조세 중립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 자체로는 나쁜 제도는 아니고 그 자체로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3. 미국은 발달, 유럽은 없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시중 은행들이 역모기지론 상품을 발매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누군가 보증을 해서 “평생”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활성화시키기 전까지는 별로 인기있던 상품은 아니었다. 큰 시각으로 보자면 모기지론과 쌍으로 움직이는 개념인데, 소위 소득의 라이프 사이클을 놓고 청년기에는 모기지론을 통해서 주택을 - 그것도 기준시가 3억원 이상짜리 - 구입하고, 노년기에는 역모기지론으로 자신이 지불했던 비용을 다시 지불받는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비록 “미세”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존재하거나 혹은 주택가격 상승이 동반되어야 한다. 대단히 미국식의 방식이다. 모기지론을 미국만 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모기지론까지 쌍을 이루는 것은 “정글 안의 개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복지정책을 갖고 있지 않은 선진국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싫으나 좋으나 이제 개인들의 삶의 패턴까지 미국 방식을 따라가고 있으니까 사회적 보장제도도 미국 방식으로 전환되고 - 혹은 구축되고 -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기는 하다.
 
4. 아, 씁슬해!
 
표준시가 3억원의 주택에 대해서 100만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시세로 따지면 4억에서 5억원 정도의 주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서민과는 상관없는 중산층, 그 중에서도 실평수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정책이니까 평생을 아파트 분양의 기회를 노리고 신규분양 받아 분당으로 일산으로 뛰어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100만원의 시혜를 제공하는 제도인 셈이다. 아파트 관리비 내고 전기세와 이것저것 떼고 나면 아마 60만원 안팎의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65세 이후의 노후에 가진 거라고는 정말 집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터이니까 이 제도를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제도는 그야말로 “아파트만이 살 길이다”는 한국 사회의 신화를 재증명해주는 부정적 효과도 존재하지만 부의 세습을 제어하는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든 제도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 있으니까 그 정도로 생각하면 과도한 평가는 아닐 것 같다.
 
그렇지만 씁쓸한 마음이 줄지 않는 것은 그린벨트까지 다 풀면서 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지난 3년 동안에 건설경기를 죽어라고 부양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공공임대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임대형 정책을 따라간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는 점에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 우리는 작은 평수에서 살라는 말이냐”라고 하면서 고급형 임대주택에 심지어 40평에 육박하는 임대주택을 만들면서 정작 극빈층들은 외면하고 중산층을 끌어들이겠다는 3년 동안의 임대주택 정책에 따라 임대주택은 점점 고급화 ? 대형화하는 추세이다.
 
정말 선의로 꼭 주택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고 임대주택 정책을 따라간 사람들은 이 얼토당토 않은 상황에서 좀 황당해지기는 할 것 같다. 아니 평생을 살면서 좋은 아파트 한 채는 가져야 그래도 100만원의 주택노후보장이 된단 말이야?
 
물론 정부가 그렇게 악랄하게 생각해서 이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에 따라 임대주택으로 옮겨간 중산층들은 또 속았다고 씁쓸한 맘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어쩌겠는가! 토지가치 상승에 의한 무상 소득 위에 서 있는 정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정책의 한계인 것을...
 
5. 아, 불안해!
 
크게 보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는 미국식 사회정책과 “그래도 큰형이 있잖아”라고 하는 유럽식 복지정책 사이에서 한국의 여러 제도들은 어중간하게 서 있는 셈인데, 둘 다 사람 사는 사회라서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미국에 플로리다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외곽 방류의 이민자 게토가 있던 셈이고, 4만 5천불의 스위스에도 남쪽 농업지역의 가난한 지역들이 존재한다. 가난한 지역과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예전에도 늘상 존재했고, 후기산업시대를 넘어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21세기 자본주의에도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시스템의 문제이다.
 
역모기지론으로 우리나라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는 시스템에 한 발 더 들어가게 되었다.
 
“아니, 평생 집도 하나 장만 못하셨다니, 어떻게 사신 겁니까?”
 
내가 사는 집도 표준시가로 3억원이 한참 안 되기 때문에 25년 후에 백만원이라도 받을려면 한 두 번은 더 집을 사야한다고 이 제도는 자상하게 말해주고 있다.
 
역모기지론이 미국에서 주로 발달하고 유럽에는 별로 없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시스템은 하루가 다르게 미국식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이런 변화들은 씁쓸하기는 해도 불안할 이유는 별로 없는데,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이 제도는 약간이라도 인플레이션이 작동하고 지금까지와 같이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오른다는 과거의 추세를 반영해서 설계되는 디자인인데 IMF를 한 번 더 겪게 되는 일이 발생해서 아파트 가격이 뚝 떨어지는 일이 생기거나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1989년부터 시작된 현 일왕의 연호-편집자 주) 공황 같은 거품빼기 절차가 오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정부 몫으로 떨어진다.
 
즐거움은 아파트를 가진 일부의 중산층들이 가지게 되는데, 정부에 떨어지는 충격의 괴로움은 온 국민이 나누게 된다는데 이 제도의 불안감이 존재한다.
 
아니 도대체 뭐 이런 제도가 다 있어? 즐거움은 나누어지지 않고, 괴로움만 나누어진단 말이야? 즐거움과 괴로움도 다 나누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는데 이 제도의 곤란한 점이 존재한다.
 
불황기에는 온 국민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그런 황당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금 20대, 아파트 살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이고 “딴딴한 직장”을 가질 가능성은 더더군다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뿐더러, 언젠가 고통 분담을 하자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복지정책이 일단 시작되면 그 효과가 20년 이상 누적되기 때문에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벌어지게 되고, 워낙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제약조건이 따라 붙는다.
 
올라갈 때 내려올 때를 대비하라는 말이 있듯이 IMF와 같은 경제위기를 내재화한다는 것은 외환만 많이 가지고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난 역모기지론이 좀 불안하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2/22 [18: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