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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팔아 ‘양아치’ 길로 가는 사람
[비나리의 초록공명] 바그다드에 갔던 사람들과 ‘양아찌지라이제이션’
 
우석훈   기사입력  2005/11/12 [14:25]
이라크전이 벌어지자 바그다드로 날라간 사람들이 몇 사람 있다. 그 중에 몇 사람은 아주 잘 알고 몇 사람은 잘 모른다.
 
A씨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렇지만 나는 윗분으로 "모시고" 존경을 하는 편이다. 적어도 내가 가지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이라크의 경험으로 내가 전혀 모르던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A씨는 여전히 가난하고, 전형적인 도시 빈민으로 살아간다... 그렇지만 언젠가 A씨가 나이를 먹게 되면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야말로 나는 깍뜻히 예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어른이 되기 어렵고,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도 어른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 해서는 또 어른이 될 수 없다.
 
나는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 몰라서 실수한 건 있을 것 같지만,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A씨가 나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되지못한 어른의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미 A씨를 어른으로 대접하고, 그리고 그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의 삶도 의미있을 뿐더러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A씨는 책을 냈지만 내가 알기로는 엄청나게 안 팔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진실은 진실의 값으로만 거래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믿는 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내가 인용하는 단 한 마디의 용어이다.
 
B씨도 이라크전이 벌어지고 이라크에 갔다. B씨는 자기가 어른인 줄 안다.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B씨는 나쁜 일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은 거짓말을 아주 많이 한다. 큰 거짓말에서 작은 거짓말까지 한다고 그 측근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그렇다고 그 거짓말을 일일이 밝히는 일을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 관심도 없고, 얼마 남지도 않은 것 같아보이는 내 삶을 그런 쓸데없는 일에 쓰고 싶지는 않다.
 
B씨는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자기는 한 달에 50만원으로 청빈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하는데, 아주 비싼 건물인 오피스텔에서 글을 쓴다는 얘기는 빼먹고 하지 않는다. 오피스텔 유지비는 어쩌면 회사의 후원을 받아서 유지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가난한 삶'을 믿기는 어렵다.
 
물론 꼭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A씨가 이라크에 갈 때는 마침 생활비로 손에 쥐고 있던 돈이 비행기값보다는 컸기 때문이다.
 
B씨가 이라크에 갈 때는 후원을 받아서 하다못해 카메라와 호텔비를 지원을 받았다고 들어서 알고 있다.
 
B씨의 출판기념회가 얼마 전에 열렸다. 똑같은 이라크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넥타이를 맨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고, 자리는 예약석으로 운영되었고, 말도 아닌 얘기들을 듣고는 포도주를 신나게 마셨다고 한단다.
 
A씨의 출판기념회에 갔다온 사람들은 A씨를 도울 방법이 뭐가 없느냐고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B씨의 출판기념회에 갔다온 사람들은 세 시간이 넘도록 너무 괴로왔다는 얘기와 B씨의 사기행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만, B씨는 어른이 되기보다는 사업수완이 좋을 뿐이다. 포장기술이 좋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어른이 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B씨는 그동안 크고 작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 아마 이 거짓말들이 세상에 알려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B씨는 강연회에서 곧잘 운다. ‘찌지라이제이션’ 죽을 뻔했다고 울고, 무서웠다고 울고, 살고 싶었다고 울고, 이제는 이라크의 반전 지도자 여성들이 불쌍하다고 운다.
 
그래서 그 죽음 앞의 숭고함 때문에 가끔 따라우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나랑 몇 사람은 뒤에서 B씨가 또 노가리 푼다고 킥킥거리고 웃는데, 그래도 또 따라 우는 사람도 있다.
 
‘찌지리’도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끔은 입증된다.
 
진실되지 않은 양아치들이 울면서 마케팅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 “양아찌지리제이션”
 
이라크의 민중들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정작 돈 버는 사람은 또 따로 있는 셈이다.
 
옛날에 운동 같이 했던 선배들 중 일부는 요즘 양아찌지리제이션의 길을 걷는 것 같다. 툭하면 양아치 같은 소리나 하다가 얘기를 마감하기 전에 찌지리 전략을 한 번씩 쓴다.
 
나는 강연하다가 딱 한번 운 적이 있었는데, 절대로 울지 말아야겠다고 작은 다짐을 해본다.
 
B씨는 사업수완이 좋으니까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것 같다. 그가 행복해지는 만큼 사회가 불행해질 것 같다는 경제학적 법칙이 자꾸 생각이 난다. 
 
trade-off law of yangatzizilization in korean society...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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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12 [14: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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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닢 2006/01/01 [16:13] 수정 | 삭제
  • 삐는 박노해야... 것도 모르셔...
  • 오다가다 2005/11/18 [13:18] 수정 | 삭제
  • 거의 한비야 같군요. 현란한 말솜씨, 없는 척 하기, 그러나 공주병.. 찔찔이.. 정황이 드러나군요. 박노해도 이 방면에서 한가닥 하죠. 자본에 비수를 던진 인간이 중앙의 품에 안겨 희희낙락하는 꼴이란..
  • 지나가다 2005/11/17 [18:39] 수정 | 삭제
  • 1. 이라크에 다녀왔다.
    2. 책도 냈다.
    3. 곧잘 운다.
    4. 반전여성에 관심이 많다. -> 여성 아닐까?
    5. 시민운동가이다.
    6.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아 성황리에 강연회가 열린다.
    7. 책도 잘 팔린다.

    그러나 한비야씨가 과거 운동권 출신인지는 모르겠다.
    또한 실제 모습이 가식적인지도 모르겠다.

    B가 누군지 궁금하군.
  • 박노해만세 2005/11/12 [17:34] 수정 | 삭제
  • 박노해 시문집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한겨레 2005-11-11 18:18]




    [한겨레]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노동자 시인 박노해(48)씨가 오랜만에 새 책을 내놓았다. (느린걸음)는 인도네시아 북서부 분쟁지역 아체를 올 3월과 5월 두 차례 방문해서 보고 겪은 것을 시와 산문,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에 담은 책이다.

    아체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는 지난해 말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은 쓰나미의 피해지로서였다. 박 시인이 방문했을 때에도 아체는 여전히 쓰나미에 할퀴인 상처에 신음하고 있었다.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면서 쓰레기 더미 위로 지평선이 보이게 된 기괴한 풍경, 부모와 친척을 모두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린 아이들, 학교 운동장만한 자리에 10만 명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공동묘지….

    그러나 아체의 눈물과 한숨은 단지 쓰나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구 400만(이 가운데 40만 명이 쓰나미에 희생되었다)의 아체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녔으며 한때는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도 했으나 풍부한 천연자원을 탐낸 인도네시아에 점령되어 ‘식민 지배’ 상태에 놓여 있는 땅이다. 현재 4천 명으로 추산되는 전사들이 ‘자유 아체’의 이름으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으나 대국 인도네시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인 형편이다.

    후원금과 물품을 지니고 아체에 도착한 시인은 쓰나미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며 도울 방도를 알아본다. 그러나 피해 규모와 정도는 엄청나고 도울 수단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에는 그들과 더불어 울어 주는 것이 최선책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우기처럼 쏟아지고 고통은 건기처럼 내리쬐는 아체인의 절망 앞에서, 나는 함께 울어 주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4쪽)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어린 가슴으로 채 소화하기 힘든 시련과 아픔 앞에서 아이들은 지레 성숙해져 버렸지만, 폐허와 절망 속에서 그래도 먼저 웃고 뛰노는 것 역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21쪽)인 아이들이다. 시인은 고아가 된 아이들의 자립을 돕고자 아기 염소 100 마리를 기증하는 ‘깜빙 프로젝트’를 벌이는가 하면 복구 중인 마을에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후원한다. 아체의 피와도 같은 석유를 빨아가고 있는 다국적 기업 액슨모빌의 사진을 찍으려다 무장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장전된 총구 앞에서 “한 마리 아체의 개”(185쪽)가 되는 경험도 한다.

    는 ‘팸플릿 001’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80년대의 무크와 같은 부정기간행물에 강준만 교수의 ‘1인 잡지’ 형식을 결합한 새로운 출판 양태다. 책 뒷날개에는 이 ‘팸플릿 002’로서 출간 예정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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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은만세 2005/11/12 [17:32] 수정 | 삭제
  • [한겨레] 106일간의 이라크 평화운동 책으로 펴낸 윤정은씨
    한 소년이 무덤 위로 물을 붓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무덤 흙이 무너져내리는 걸 막으려는 소년의 곁에서, 그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죽이려고 애썼다. 자신은 ‘기록자’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평화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윤정은씨(32). 그가 비로소 돌아왔다. 윤씨는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106일 동안 이라크 분쟁지역에 머물면서 평화운동가로서 사상자의 이야기 등을 기록하는 한편, 기자로 등의 매체에 기사와 사진을 발표했다. 지난해 돌아왔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서서히 현실 감각을 되찾아가며 그는 글을 썼다. 이라크 전쟁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즐거운 상상)라는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기록자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역사적 소명과 용기가 필요했는데, 개인으로서 무기력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는 9·11테러에 이어 일어난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1년 뒤 현지에 들어갔다. “전쟁보다는 전쟁 뒤의 생활을 훑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때를 맞춘 것처럼 그가 도착한 지 보름쯤 지난 뒤, 다시 ‘전쟁’이 터졌다. 팔루자에서 미국 경호원 4명이 사살당해 사체를 훼손한 사건이 일어났고, 미군이 팔루자를 봉쇄한 채 보복공격을 시작했다. 작전공격명은 ‘단호한 결의’.

    5일간 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천여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거리에서 그에게 물을 팔던 아이가 폭탄에, 주검을 거두던 성직자는 미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가 만났던 한 여성은 전쟁의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눈에 유독 크게 들어온 건 아이와 여성들. “전쟁터에서 아이와 여성들은 언제나 이중의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정씨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헤매던 여성들은 납치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했다. 남편 없는 여성들에게 집안의 먼 친척 남자들이 와서 횡포를 부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군의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고문을 받은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로 썼다.

    “제 보도가 편향적이란 지적이 있었어요.

    부인하지 않아요. 다만 사람들에게 전쟁 뉴스의 이면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가 이기고 지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분쟁으로 권력의 폭력성에 약자들이 어떻게 노출돼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인 신디 시핸은 전쟁을 멈추라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신디의 모습에서, 전쟁터에 가려는 아들을 붙잡는 이라크인 어머니의 눈 속에서 슬픔을 읽었다.

    그리고 말한다. “가족을 잃고 고통당하는 이라크뿐 아니라 이라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그 슬픔이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판동네사람 2005/11/12 [17:25] 수정 | 삭제
  • 우석훈님이 말씀하신 A씨는 ‘이라크평화네트워크’의 윤정은씨이죠. 갔다 와서 '슬픔은 흘러야 한다'라는 책을 냈고, B씨는 아무래도 박노해 같은데.. 박노해 씨는 이라크가 아닌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아체에 갔다와서 책을 냈는데... 사기치는 행각은 우석훈님이 지적하신 그대로이죠^^ ㅋㅋㅋ.
  • 홍기빈 2005/11/12 [17:02] 수정 | 삭제

  • "A씨의 출판기념회에 갔다온 사람들은 A씨를 도울 방법이 뭐가 없느냐고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B씨의 출판기념회에 갔다온 사람들은 세 시간이 넘도록 너무 괴로왔다는 얘기와 B씨의 사기행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혹 독자분들 중 누가 우석훈씨가 차마 밝히지 못한 두 사람의 실명을 아는 분이 계시면 쪽글로라도 남겨주시면 좋겠네요...실명까지 아니더라도 대충 뭐하는 사람들인가라도 알 수 있도록...낄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