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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주역 '386', 지금 뭘하고 있을까?
[비나리의 초록공명] 386세대의 배신과 과외없는 사회위한 작은 생각들
 
우석훈   기사입력  2005/11/01 [12:07]
얼마 전에 어느 출판사 사장님하고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중학생들이 해방 이후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세대라고 하신다. 386세대가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중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마지막 희망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중학생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두발자유에 대해서 더 많이 외칠 것이고, 그들이 대학교에 가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이고,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는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부모가 386세대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다음 세대가 나아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지금 30대이고, 68년에 태어났고, 86학번이니까 386 가운데 가운데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누가 나보러 386이라고 하면 기분은 안 좋아질 것 같고, 욕이라고 생각될 것 같다.
 
모든 혁명의 세대가 배신을 한 것처럼 87년을 만들었던 386들도 역사에 대해서 배신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 때 비밀과외라는 것이 있었고, 고액과외라는 말도 그 때 있었고, 입주과외라는 것도 있었다. 아예 그 집에서 먹고 학교 다니면서 당시 돈으로는 큰 돈이었던 100만원 이상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나의 기억으로는 같이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주머니 사정과 형편상 서로 만날 일들은 없었다. 모두가 술을 열심히 마셨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연애하고 싶다고 술 마시고, 연애 안된다고 술 마시고, 연애 끝났다고 술 마시고, 하여간 술 마신 핑계는 잘도 찾아냈다.
 
가끔은 민주주의 외친다고 술을 마신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는데, 사실 민주주의 때문에는 아주 가끔 술을 마시고, 대부분은 연애 하기 위해서 술을 마셨던 것 같다.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도 그렇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사실 다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연애가 뭔지...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세브란스 뒤쪽으로 가면 좀 비싼 술집들이 있다. 내 친구 중에는 당시 재벌의 후계자 순위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있다. 그들은 그 쪽에서 술을 마셨고, 클럽에 출입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과외하던 친구들은 생맥주집에서 술을 마셨고, 87년 서울에 급격히 보급된 호프 집에서 많이 마셨다. 유일하게 돈 없던 학생들이 술 마시던 곳은 ‘신선들이 마시는’이라는 형용사를 달고 있던 목화생맥주라는 곳이었다.
 
그 때 500 한 잔에 이곳은 450원이었고, 100원짜리 안주가 있었다. 멸치 몇 마리에 김 한 봉을 주는 100원짜리 한 주에 생맥주 한 잔씩 마시면 일인당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 때 내 기억으로는 막걸리 한 통이 1,000원이었고, 생두부 안주가 또 1,000원이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내려가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씩 가지고 술을 마실 수 있던 유일한 집이 목화생맥주였다. 1988년에 목화생맥주가 문을 닫았다.
 
과외하지 않던 학생들은 지금은 현대 백화점이 되어버린 신촌시장 뒤쪽에서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지금도 그 당시 단골이던 페드라가 남아있기는 하다. 하여간 그 당시에 대학을 다니던 사람들이 결국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친구들을 잘 안 만나기 시작한 것은 얼굴 봐야 증권얘기만 하다가 좀 있으면 과외얘기로 바뀌어 버려서 그야말로 할 얘기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잘 안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때의 이 386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원정출산이라는 것도 생겨났고, 지금의 사교육 붐에 따라서 열심히 학원도 보내고 부동산 투기도 하고, 또 무조건 좋은 학교 보내야 한다고 광란의 난리치는 사람들도 사실 이 386세대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니까 원정출산은 아니라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70년대생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원정출산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럴까? 잘 모르겠다.
 
정치적으로는 386들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세대들이 죽어라고 과외해야 한다고 믿는 것만큼은 사실은 것 같다. 하긴 어찌 이들만 야속하다고 원망하랴... 죽어라고 과외시키는 것은 유명한 노조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고, 민주노동당의 고위 인사들도 과외는 다 시키는데, 어찌 386 부모들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나...
 
임수경에 대해서 붙어있는 많은 얘기들 중에서 ‘천하의 임수경’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몇 년 전에 5.18 기념식 때 광주로 줄줄줄 내려간 386 의원들이 그야말로 접대부들하고 폭탄주 마신 사건에 대해서 한 소리 했을 때이다. 정말 천하의 임수경이었다. 멋졌다.
 
따져보면 내 친구들이고, 가까운 선배들인 셈인데, 이 넘들은 무슨 심각한 정치 한다고 자기들끼리 작당하는 걸 좋아하고 연애라면 또 최고로 좋아하던 옛날 버릇 그대로 폭탄주에 접대부까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에는 그래도 언론에 드러난 것은 새발의 피이다. 룸싸롱에는 못가도 열심히들 노래방 간다고 하면서 온갖 못된 짓은 앞장서서 했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돈맛도 제일 먼저 알았고, IMF 이후에 벤처 지원기금 풀렸을 때 코스닥이니 어쩌구 하면서 그야말로 강남의 룸싸롱을 헤집고 다니면서 온갖 못된 짓은 다했던 세대들도 바로 386세대이다.
 
남자들은 이 난리 치고 다니면서 ‘비지니스’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도 이넘들이고, 여자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아파트 사서 ‘부자되겠다’고 난리치던 것도 이 세대들이다. 사회가 나아질까? 나아지기는 개뿔이 나아질까...
 
이들이 사회에서 과장 정도의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 재태크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유행을 했고, 이들이 차를 장만할 나이가 되었을 때 레저용 다목적차인 SUV 붐을 이끌었던 세대도 바로 이 세대이다.
 
이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골프 치는 일이고, 골프장 많이 만들어서 나라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맨 앞에서 주장하던 세대도 바로 이 386세대들이다. 그래, 돈 좀 벌었다 이거지.
 
그리고 이들의 아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가 되었을 때 특목고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쳤고, 특목고 보낸다고 가짜 진단서 떼어서 아이들 학교가는 대신에 학원 보낸 그 부모들도 지금 바로 이 세대이다.
 
4.19세대가 역사를 배신한 것처럼 386들도 배신한 건 마찬가지이고, 그 배신에 대해서 섭섭해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이다. 그들의 아이를 위해서 사회학 교과서의 경제항목을 바꾸어서 아이들에게 ‘경제 마인드’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 자랑스러우신 386세대의 부모님들이시다.
 
어떻게 하면 이 사교육을 없앨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80년 전두환의 과외금지조치로 자기들은 과외를 안했지만, 과외금지조치가 풀리고 나서 자기 아이들은 열심히 과외시키는 이 386세대의 화려한 모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별로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정치연대의 선거 공약으로 ‘과외없는 세상’을 내밀 수 있을까? 수단이 별로 없다. 말은 좋은 말인데,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 같다.
 
나의 막내동생은 미국에서 조카를 키우는데, 하다 보니까 나의 조카는 미국 사람이다. 아직 2살도 안된 조카한테도 학원을 보내는 거 보니까, 엄청나게 과외를 시킬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나의 동생도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당장 나의 2살도 안된 조카가 과외다니는 것도 못 막는데, 사회적으로 과외를 없앨 수 있을까?
 
사교육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대변할 뿐이고, 386이 부모 세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 이 과외열풍인 것 같다. 다른 세대와는 조금 다른게 자신은 과외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과외를 열심히 시키는 걸 보면...
 
예전에는 과외하지 않은 이 세대가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과외라는 것이 사라지고 세상이 조금 정상적으로 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나서 다시 돌아보니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욕망의 과열이 사라지기 전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386들, 개인적으로는 이미 욕망의 함정 속에서 잘 살고 싶다는 꿈 외에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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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01 [12: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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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동남 2005/11/02 [13:55] 수정 | 삭제
  • 386은 쉬고 있는 것이 아니아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혁명보다 제도 개선하고 시스템을 바궈야 한다
    법률 등 후속 조치에 힘쓰고 ...
  • pig 2005/11/01 [23:51] 수정 | 삭제

  • 386정치인에 대한 문제제기 보다는...386세대 전체의 정체성에
    대한 평가라고 보여집니다.

    '미리 술부터 먹고 난리부르스를 춘' 386은 극히 미미한 몇몇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대다수의 386은 저 밑바닥 뜻 모를 '욕망의 함정'에서
    허우적 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세대의 책임이 가벼워지지는 않겠지만요~
  • 중독 2005/11/01 [18:53] 수정 | 삭제
  • 386은 혁명의 세대도 아니고 실패한 혹은 미완의 혁명의 세대도 아니고.
    혁명을 했다고 착각한 세대.
    말 그대로 혁명을 이루기 전에 미리 술부터 먹고 난리부르스를 춘 세대.

    세상은 변하는 거라면서 자기들의 변화를 정당화하려는 세대.
    씹새들.
  • 월급쟁이 2005/11/01 [16:06] 수정 | 삭제
  • 386들 개자식들 입니다.
    개자식들....
  • pig 2005/11/01 [13:59] 수정 | 삭제

  • 안타깝게도...
    정확하게 내 얘기를 하는 거 같네요~

    어설픈 과거를 안주 삼아 곱씹으며,
    현실을 핑계로 안주하는...
    몸따로 마음 따로...

    흠...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걸까요?

    (근데,
    그들이 혁명의 세대인거는 맞나요?...혹시, 실패한 혁명의 세대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