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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피장파장...장상과 장대환
 
공희준 Soccer Jockey   기사입력  2002/08/23 [23:01]
{IMAGE1_LEFT}'피장파장'이란 '상대편과 같은 처지라 서로 낫고 못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상 전총리서리에 이어 새로 총리서리에 발탁된 장대환 총리지명자를 두고 이보다 더 핵심을 꼬집는 단어는 없겠다. 굳이 다른 수식어를 찾자면 '50보 100보'라는 고사성어가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뭉뚱그려 범주화하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50보와 100보 사이에는 오십 걸음의 물리적 거리로만 따지기 힘든 엄연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50보를 도망간 병사가 100보를 걷기 전에 전장에 남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수치심이 겹쳐 다시 참호로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솔직히 나는 총리서리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장상씨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그가 총장으로 봉직하던 대학에 내가 시험을 봤다가 미끄러진 것도 아니고, 이중국적을 가진 어떤 놈팽이와 내 애인이 눈이 맞아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것도 아니다. 장상씨가 만약 나의 스승이었다면 내 기억 세포 속에서 그는 존경할 만한 사표로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재상직에 오르기에 그가 가진 윤리적 흠결과 하자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었다. 정치 패러다임의 진보와 국민의식의 각성으로 공직자가 필히 갖춰야 할 덕목인 도덕성과 신뢰성, 그리고 정직성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얼렁뚱땅 대충대충 넘어갔을 사안과 문제점들이 장상씨의 총리공관 입성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장애로 대두했던 것이다.

어떤 정치적 노림수와 정국운용의 묘책을 가지고 청와대에서 장대환씨를 총리직에 내정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의중과 복선을 둘러싼 무수한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장대환씨의 총리지명으로 김대중 정권은 민심과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는 점이다. 취임 초 들불과도 같이 타올랐던 언론개혁 함성에 귀 막고 눈감으며 족벌신문과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했던 '국민의 정부'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신문고시 시행 등으로 혼탁한 언론시장 정화를 향한 결의를 잠시 내비치는가 싶더니 언론귀족과 야합하는 것을 대미로 정권을 마감할 작정인 모양이다. 사상 초유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해 국민의 기대감과 희망을 한껏 드높였던 자타칭 개혁정권의 쓸쓸하고도 씁쓸한 퇴장인 셈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면 시작부터 의지가 창대하고 뜻이 굳건해야 함을 역설하는 반면교사라 하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장상씨의 인준을 비토한 연유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이유로 나는 장대환씨의 총리인준을 반대한다. 국민논객을 참칭하는 일개 네티즌의 연약한 목청에서 발성된 반대의 목소리가 과연 어느 정도 장대환씨의 총리인준 반대론에 보탬이 될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단호히 주장한다. 장대환씨는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질과 자격 모두 낙제점이다.

외곽을 때리는 장대환씨의 노련한 플레이를 목도하면서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장상씨의 순진함을 새삼 확인한다. 일부 여성계 인사가 장상씨의 인준투표 통과를 위한 세 과시를 공개적으로 벌인 것이 되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역효과를 빚은 바 있었다. 장상씨 본인 역시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한 상태에서 대외 활동을 섣불리 수행했다가 총리서리 제도의 위헌시비만을 불러일으키며 한층 비난을 자초했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총리 지명자로 발표된 이후 장대환씨는 잠행이라 칭해야 마땅할 조심스런 정중동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동업자 보호 차원에서 언론사들이 의도적으로 장대환씨의 동정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진단해본다.

경제지 기자들은 경제에만 밝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매일경제 편집진과 기자들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전격 방문한 대목은 통상적 취재활동으로 단정하기에 뭔가 미심쩍고 석연치 않다. 가령 이렇게 상상해보자. 내가 동네 슈퍼 아저씨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글을 골목 입구에 써 붙이려고 작정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평소 얼굴도 비치지 않던 슈퍼 아줌마가 음료수 박스를 싸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고 치자. 단순한 인사차 방문으로 간주하기에는 왠지 찜찜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IMAGE2_RIGHT}장대환씨를 둘러쌓고 인구에 회자되는 다종다양한 의혹과 복잡다단한 의문들은 '가진 ☆이 더하다"는 세간의 속설을 곱씹게 한다. 평가액으로만 환산해도 56억이나 되는 거액의 재산을 소유하고도 38억 원을 추가로 대출 받아야 하는 경위와 용처가 궁금하다. 서민의 자녀들과 견주어 손색없는 학습여건과 교육환경을 향유했을 자식들을 왜 꼭 강남 8학군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위장전입까지 불사했는지 그 동기가 아연하다. 회사운영의 모토로 수익지상주의와 영업제일주의를 표방했다면 갈빗집이나 찜질방을 차릴 일이지 뭐 하러 신문사 간판을 내걸었는지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다. 누가 좀 명쾌하게 설명해주시라.

장대환씨에 대한 정치권의 이완된 검증 분위기와 언론의 느슨한 직무유기성 보도태도는 장상씨가 여자라서 당했다는 여성계의 볼멘 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장대환씨와 장상씨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전혀 거리낌없이 장상씨를 택하겠다.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이 즐겨 쓰는 어법대로 장상씨와 장대환씨가 동시에 한강에 빠졌다면 환경부 관계자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때가 덜 묻은 장상씨부터 구하겠다. 여성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도덕성과 신뢰성에 남녀가 유별하지 않은 것처럼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적격유무를 판단하는 검증의 잣대와 기준에서도 생물학적 성의 구분은 언어도단이다.

장대환씨가 정치에 입문하고 싶거들랑 정몽준씨와 같은 배에 동승할 것을 권한다. 두 사람이 합체하면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수상 같은 야릇하고 기묘한 인물이 탄생할 것이다. 정몽준씨나 장대환씨나 그게 더 현명하고 진솔한 자세라 믿는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명(名)카피다. 두통약과 피임약도 구별 못하는 무면허 무자격 엉터리 약사가 환자를 치료한다면 대형의료사고의 발생이 명약관화하다. 마찬가지로 본령인 언론계에서조차 도덕성과 투명성에 입각한 정도경영과는 거리가 먼 경영방식으로 지탄을 받았던 인사에게 단 몇 달에 불과한 단기간이더라도 중차대한 국정운영을 맡긴다면 국민은 결코 편안히 발뻗고 잠자리에 들지 못할 것이다. 친인척 비리와 3홍 게이트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이 정권은 스스로 무덤을 판데 이어 제 손으로 묘비까지 세우는 격일 게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절창한 것처럼 개혁정권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우리는 개혁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글로벌 경제시대를 선도할 대한민국 경제전문지의 선두주자인 매일경제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장대환씨의 총리서리직 자진 용퇴를 촉구한다. 그것이 자신의 명성을 지키고 회사의 명예를 욕보이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 필자는 [우리들의 비밀암호 : 노무현을 부탁해](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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