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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한나라당의 개과천선
임명동의안 부결과 '2002 월하의 공동묘지'ba.info/css.html'>
 
공희준 Soccer Jockey   기사입력  2002/07/31 [20:59]
{IMAGE2_LEFT}소 뒷발로 개구리 잡은 격이다. 오랜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밥값을 했다. 국회 식당 아주머니들도 드디어 어깨를 활짝 펴고 다니게 되었다. 의원님들의 왕성한 식욕을 위해 보너스로 사료용으로 처분될 정부 재고미라도 팍팍 갖다줘야 하겠다.

장상씨의 총리인준 동의안 부결은 의미심장한 소식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 장지명자가 끝내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하고 총리실에서 총장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는 단순 가십의 차원을 넘어 한나라당이 무소불위로 주도해온 그간의 정국 흐름을 일거에 반전시킬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씨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장상씨를 주저앉힌 봇물 같은 반대여론이 살짝 방향을 틀어 이회창씨에 대한 성토의 물결로 부메랑처럼 밀려올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에서 안이한 정세분석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침몰 직전의 DJ號 갑판에 뛰어들어 분탕질에 여념이 없다 배와 함께 가라앉아 버리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몇몇 거대신문회사들이 난수표를 연상시키는 어지러운 사설과 칼럼을 통해 시시콜콜 일일이 코치하는 내용과 관계없이 장상씨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모처럼 독자적 이니셔티브를 취했던 이회창 후보는 측근 책사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느긋하게 자유투표를 실시했다 엄청난 악수를 두었다. 사태수습의 과정에서 당전략기획팀에 실어준 신임을 철회하고 향후 신문기업에 대한 전술적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훈수꾼 얘기 들었다가 외통수에 빠진 형국이니 말이다. 여론조사상의 우위에 도취된 나머지 정국현안에 대응하는 긴장감이 상당히 이완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장상씨의 총리인준 청문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행세하는 집단들이 얼마나 부도덕한 족속인가를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몸은 한국에 있고 마음은 미국에 가있는 실종된 국가관과 이의 구체적 알리바이인 이중국적, 주택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호사스런 주거환경, 병역의무와 같은 기본적인 국민의 의무는 외면하면서도 의료보험 등의 사회안전망 혜택은 앞장서 챙겨먹는 약삭빠름. 친일행적이 왜 잘못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역사관등, 월드컵 경기장 암표장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의 일탈과 위선은 찜통 무더위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불쾌지수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

장상씨의 총리임명 동의안 부결은 고위 공직자일수록 더욱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가 현실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장상씨와 동병상련의 처지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릇된 고정관념 하나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것은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마치 별개의 항목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기실 사람 사이의 능력차는 별로 크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히딩크가 지적했듯이 자신감의 유무이다. 공직자의 자신감은 검증된 도덕성에서 나온다. 도덕성이 결여된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 있는 행정보다는 보신과 면피에 급급하기 마련이고, 비윤리적 정치인은 국리민복의 실현보다는 자신과 소속 정파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조성하는데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법이다.

장상씨의 총리지명이 DJ가 이회창씨에게 선사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음모적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감각과 총기가 살아있었다면 정권재창출조차 불투명한 현재와 같은 총체적 난국에 국민의 정부가 직면하는 최악의 사태만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상씨의 총리인준안 부결로 DJ의 임기는 실질적으로 종료된 것과 진배없다.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권력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다. 2002년 7월 31일을 기해 정권은 청와대에서 옥인동의 이회창씨 집으로 이동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치밀한 기초적 사전검증절차를 소홀히 한 채 장상씨를 총리후보에 천거해 대통령을 욕보인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조치는 DJ가 형해화된 권력의 영(令)을 그나마 세울 수 있는 최후의 기회다.

나는 한국의 주류 여성계가 유감스럽다. 장상씨 덕택에 당분간 여성을 총리로 지명하는 것은 물 건너가 버렸다. 장상씨에게 주류 여성계가 전폭적 지지를 표명하는 만용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면 미안한 감정에서라도 조만간 여성이 다시 총리로 지명됐을 경우 웬만한 흠결이 아닌 이상 비토를 놓기는 불가능했을 게다. 대다수 가난한 노동자들과 서민의 감정은 아랑곳없이 장상씨를 옹호했던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도 반성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류 여성계야 원래 그런 곳이라고 치부할 수 있어도 명색이 서민대중의 이익을 표방한다는 정당조직의 일부가 특권층을 옹호하는 망발을 부린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IMAGE1_RIGHT}이회창씨와 장상씨의 구체적 친소관계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상씨를 생각하면 이회창씨가 떠오르고, 이회창씨에 대한 서민대중의 반감을 장상씨가 덤터기로 뒤집어쓴 냉엄한 교훈을 한나라당은 겸허히 숙고해야 한다. 가난하고 못 배운 민초들의 심술로 무시했다가는 또 다시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과연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장상씨의 낙마가 한국의 귀족들에게는 '월하의 공동묘지'처럼 끔찍한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오늘은 한나라당 의원들 덕분에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기분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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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31 [20: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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