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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총리 인준 부결이 의미하는 것
하필이면 민주당? 계급갈등구조 여실히 드러내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2/07/31 [19:39]
장상 씨의 총리인준청문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묘한 데가 있다. 평소 버릇대로 나는 청문회 자체보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 각 계층의 대응을 지켜보는데 더 관심을 두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권의 치밀한 기획설'은 그런 쪽에 관심 많은 강호제현들께 맡기고 일단은 결과론만 살펴보기로 하자.

{IMAGE1_LEFT}장상 총리 후보와 그녀 주변의 행태를 지켜보면 한 마디로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편입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란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화여대 총장 재직시에 친일파 김활란을 옹호한 것이라든가 미국 유학 경험, 아들의 미국시민권과 군대 면제, 게다가 부동산투기 혐의까지 받고 있는 재산축적과정까지... 하나같이 한국의 기득권층이 공감할 만한 '품격(Quality)'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리 편인 것이다.

문제는 장상 씨가 그네들 사이에서 소위 '천민당'이라고 비하하는 민주당과 DJ 정권이 지명한 총리라는 것이다. 이게 미묘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일으킨다. 한 마디로 내 편에다 귀족 출신임은 틀림 없는데 왜 하필 '천민당'과 함께하느냐는 심적 갈등이다.

아울러 중년 여성들의 반응도 문제가 된다. 청문회를 보는 어머님의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웬만한 흠은 덮고 넘어갔으면 하는 태도를 보이셨다. 내편인데 어지간하면 봐주었으면 하는 심정인 것이다. 겉으로야 어떤 반응을 보이든 중년여성들은 이번 일로 아마 자존심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이 자기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민주당을 '천민당'이라고 비하하는 것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바로 일제시대 이래 장구한 세월에 걸쳐 한국의 귀족계급으로 행세해 온 자기들과는 영 코드가 맞지 않는 하층계급이 정권을 잡았다고 설치는데 대한 못마땅한 심사다. 조선일보 사설에서도 이런 정서가 자주 드러나곤 한다.

여기에 '삼홍비리'까지 더해지니 이들의 분노는 일거에 그럴 듯한 정당성까지 부여 받는다. 온갖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보이는 이들의 행태는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다. 군대면제, 미국영주권, 대형빌라... 하나같이 '우리 편', '우리 계급'의 징표들이다.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그것도 둘이나 군대면제를 받았다니 오히려 친근하고 정감을 느낄 것이다. 군면제자인 모 30대는 아무리 주위에서 문제점을 들이밀어도 기어이 이회창 지지라고 한다. 같은 편이니까..

이번 장상 총리 사태를 거치면서 드러난 것이 이런 미묘한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이들은 '천민당' DJ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자기 계급의 일원을 비토해야 하는 기묘한 현실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

이래 저래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 한국의 기득권 층이다. 더불어 중년여성 표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조선일보 게시판에서는 평소 한나라당 지지성향을 보이던 사람들이 의외로 장상 총리를 싸고 도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번 사태로 누가 덕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 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한국사회 계급갈등의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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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31 [19: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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