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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은 장상(將相)이 되겠지만
윗목이 따뜻하면 아랫목도 따뜻한가?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7/30 [22:07]
{IMAGE1_LEFT}장상 국무총리 지명자를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시종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문회 내내 양계장 속의 더위 먹은 닭들처럼 힘이 없었고, 장지명자는 곤혹스런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노회한 정치꾼 마냥 요리조리 피해 가는 노련함을 과시했다. 고전적 모르쇠 전술과 잘못은 하급자의 실수로 돌려버리는 나몰라식 책임전가 수법 역시 동원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첨예한 대치전선이 형성될 것이란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이틀에 나뉘어 진행된 장상씨의 인사청문회는 큰 대과 없이 원만히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원만함이 서민들에게는 원통함이 되어 염장을 질러댄다. 장상씨가 삶의 고비마다 구사한 신묘한 변칙과 불미스런 행적을 날카롭게 추궁해야 마땅할 의원들이 본분은 망각한 채 이른바 주류 여성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취업에 필요한 추천장을 쥔 지도교수에게 알랑대기에 여념이 없는 대학교 사은회 행사의 4학년 과대표 같은 추태를 연출한 탓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회창 후보의 여성 버전인 장상씨를 공격하는 게 혹 주군에게 누가 될까봐 몸을 사리는 눈치였고,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DJ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로서는 총리 인준 동의안을 부결시켜 임종 직전인 DJ정권의 심장에 최후의 십자가를 꽂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이중국적 문제를 비롯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친일전력 시비에 이르기까지 동병상련 처지인 장상 지명자와 아픈 부위가 겹치는 까닭에 섣불리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가는 자칫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었을 테이므로 결국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기는 고육지계를 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장상씨의 총리지명에 확실한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머뭇거려야 했던 노무현 후보는 꽤나 심란하고 울적했을 것이다. 인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개진할 경우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몽니를 부릴 동교동 잔존세력의 반발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상 카드가 청와대 누구의 작품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양자를 동시에 겨냥한 청와대측의 마지막 무력시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총리직에 안착한 장상씨는 5년 전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그랬듯이 임기 말에 처한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방지하는 여야를 고루 타깃으로 설정한 쐐기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YS는 김태정씨를 내세워 DJ 비자금 수사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은근히 강조하며 이회창-김대중 양자를 견제했다. 마찬가지로 DJ는 이회창의 발목을 붙잡고 물귀신 노릇을 할 장상을 전면에 포진시켜 한나라당의 예봉을 차단하는 동시에, 노무현 후보에게는 당선되도록 밀어줄 능력은 없을 망정 노무현씨에게 언제든지 불리한 정치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여력만은 청와대에 남아 있음을 경고하는 양수겸장의 꽃놀이패로 장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겠다. 장상씨를 비토(Veto)할 마음이 굴뚝같았을 노무현씨가 DJ의 정치적 잔해를 긁어모아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획책중인 중도개혁포럼의 노골적인 사보타지에 걸려 단호한 입장표명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장상씨의 총리 인준이 정국흐름과 대선구도에 미칠 영향에 대한 더욱 상세한 분석은 다음 기회를 빌려 상세히 전개하도록 하고 이 글에서는 장상씨의 총리서리 지명을 계기로 불거진 여성들의 정치참여 문제에 관한 기술적 개선방안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장상씨의 총리지명에 찬성하는 주류 여성계의 논지는 총리라는 대빵 자리를 꿰참으로서 여성들의 활발한 고위공직 진출을 자극하고 그 부수적 효과로 여타의 영역에서도 여성의 사회활동에 유리한 지형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경제학 용어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 부른다. 재벌과 같은 거대기업에 뭉텅이로 돈을 지원하면 그로부터 파급되는 효과가 잔잔한 수면 위에 떨어진 동그라미 모양의 파장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진다는 주장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바로,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소리다. 이런 논리를 가장 열성적으로 전파한 인물은 페미니스트들의 공적 1호인 마초의 상징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레이거노믹스의 공급중시 정책(Supply-Side Economics)을 정치적으로 리메이크하여 립싱크하고 있는 패거리가 한국의 주류 여성계이며, 그로 인해 촉발된 논쟁의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집단이 한나라당인 것이다. 이제 대충 이해가 되시는가?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이론이 타당할까. 97평 아파트와 105평 빌라에서 엄동설한 한 겨울에도 보일러 펑펑 돌려대며 반 팔 입고 지내셨을 고귀한 신분의 분들께 질문하는 내가 오히려 머쓱해진다.

윗목은 설설 끓는데 아랫목에 고드름 맺히는 데는 여성계도 에누리가 없다. 특정여대 출신들이 몰려있는 곳은 엉덩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방구들이 뜨거운 반면 그 '라인'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여자들은 어디를 가나 찬밥이다. 무식한 마초들에게 치이고 잘난 그 페미니스트들에게 차이는 완전 동네북 신세다.

특권층 여성 한 두 명이 고위직에 낙하산 타고 착지한다고 기층 여성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들만의 성채에 숨어 계모임과 구별조차 되지 않는 귀족여성들의 고급 사교클럽에서 일취월장한 인사가 여성 전체의 대표자 자격을 참칭하는 것은 오만한 찬탈에 다름 아니다.

{IMAGE2_RIGHT}여성들의 정치참여는 기층의 실무자로부터 착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국회의원들이 스탭 중의 한 사람을 반드시 여성으로 채용하도록 법제화할 것은 제안한다. 수 백여 가까운 의원들은 어김없이 여비서를 채용하고 있다. 개탄스럽게도 여비서들의 역할은 전화 받고 커피 타는 과거 경리 여직원이 도맡아 하던 단순한 업무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책개발과 입법작업 같은 난이도 있는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보좌진의 일원으로 등용된 여성들은 여성의원 숫자보다도 더 적다.

정책비서의 일원으로 여성을 기용하도록 의무화한다면 여성들이 저변에서부터 탄탄히 정치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것이다. 유능한 여성 스탭을 충원하는 것이 당장은 난감한 일이겠지만 전국에 있는 여대생 중에 정치학을 전공하거나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숫자를 감안하면 양질의 여성 정치보좌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의원들의 내놓은 정책의 실질적 얼개가 실무를 전담하는 보좌진에 의해 꾸려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전문적인 여성 참모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생산되는 정책의 내용은 여성의 실제적인 복리증진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 명확하다. 여성인력의 정치권 대거 진입은 상스런 욕설과 거친 몸싸움이 난무하는 기존의 후진적 정치풍토를 선진정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질 무렵에야 시작해서 새벽녘에나 끝나기 일쑤인 국회의 고질적 의사일정 관행도 여의도 바깥의 보편적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정상화되어야 하는 등의 선결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부적합한 인물을 무리하게 총리에 기용하려는 의지의 반의반이라도 있다면 쉽사리 해결될 과제라 본다.

잘 키운 비서 하나 열 장상(將相)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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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30 [22: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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