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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마감, 정운영선생을 기리며
[비나리의 초록공명] 한겨레 논설위원 시절 명문장을 오랫동안 추억하며
 
우석훈   기사입력  2005/09/26 [11:26]
정운영 선생이 62세를 일기로 신부전증으로 사망하셨다. 그저 놀랄 뿐이다.

연초에 2005년도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하던 걸 들었는데, 진짜 그런 게 있는지 몰라도 올해에는 어른들이 줄지어 불귀의 객이 되셨다.
 
거의 같은 때 문순홍 선생이 암으로 돌아가셨고, 빈소에 다녀온지 며칠 되지않아 임길진 선생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며칠 동안 그야말로 빈소 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2005년이 흉흉한 해인가? 아직은 한참은 더 움직이실 것 같던 정운영 선생이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정운영 선생을 개인적으로 만난 건 내가 스물 한 살 때의 일이다. 불어권으로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불어권 대학 중에서 제일 큰 대학은 벨기에의 루뱅 대학이고, 내가 아는 한에서 루뱅에서 공부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운영 선생 밖에는 없었다. 공부 끝나면 나중에 노트라도 좀 보여달라고 하셨던 얘기가 기억이 나는데, 끝내 나는 나의 노트를 정운영 선생한테 보여주지는 못했다.
 
누가 뭐래도 역시 학자로서의 정운영이 가장 화려하던 시절은 한겨레 논설위원 하던 시절이다. 레닌 시절의 영웅들의 이야기나 무너지던 동구의 비참함 그리고 유럽이 가지고 있던 혁명의 기운 같은 것을 경제학 이야기랑 섞어서 그야말로 서슬시퍼러던 시절에 한겨레에 쓸 때에는 가슴이 설레이고는 했다.
 
중앙일보로 옮긴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들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건너들은 얘기로는 그만큼 한겨레에 대해서 정선생이 실망한 것이 있다고들 한다. 보통 21세기로 살아서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에 정운영의 이름을 올리기는 하지만, 학자로서 미처 피어보지 못한 그 삶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깃들 뿐이다.
 
정치경제학 전공자에게 90년대 어른 노릇한 사람이 김수행 교수와 정운영 교수가 있는데, 이 둘 사이에도 약간의 애증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호방하고 호탕한 성격에 언젠가는 꼭 시집을 발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걸로 알지만, 시집은 끝내 발간하지 못하시고...
 
정운영 정도의 학자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거의 없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또 한 명의 어른이 사라졌다는데 그야말로 이제는 구시대의 한 페이지를 접어야할 것 같다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마음 속에서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당신의 낙원 속으로 편하게 잠드시기를 바란다. 한이 많았던 인생이다. 이제는 그 한과 아쉬움마저 다음 생으로 넘어가야 하나보다.
 
그야말로 명복을 빌 뿐이다.
 
[故 정운영 선생 약력]
 
고인은 서울대와 같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기자, <한겨레> 논설위원을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경기대 경제학부 경제학전공 부교수로 있다.

경제분야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레테를 위한 비망록>(한겨레) <광대의 경제학>(까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까치) <시지프의 언어>(까치) <중국경제산책>(생각의 나무) 등이 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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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26 [11: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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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씨구.. 2007/02/24 [23:50] 수정 | 삭제
  • 눈에 보이는 것이나 똑바로 보세요들
  • 추모 2005/09/30 [11:12] 수정 | 삭제
  •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무에 그리 다른가
    김대중정부이후 한겨레는
    그야말로 어용이었다.
    지금까지 쭈욱
    그런 한겨레에서 중앙으로 옮긴 것이 (분명 칭찬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에 그리 돌맞을 짓인가?
    한겨레에서 곡필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중앙에서 직필하는 게 낫다.
  • 지나가다 2005/09/27 [01:58] 수정 | 삭제
  • 개운처럼 살진 말아야지
  • 개운 2005/09/26 [16:11] 수정 | 삭제
  • 중앙일보 시절 반면교사로 많이 배웠지.
    반면교사로..
    인간이 저래 살면 안되는 구나 싶어..
  • 궁민 2005/09/26 [13:28] 수정 | 삭제
  • 삶은 마지막이 중요하다는 걸 고 정운영 씨로 배웁니다.
    고작 말년의 영달을 위해...쯧쯧(한겨레에 실망했다고 중앙일보로? 홧김에 서방질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지막 가시면서 중앙이롭의 내부 사정에 대해 폭로나 하시고 가시었으면?
    어쨌든 명복을 빕니다.
    정운영 님의 삶으로 인생을 배워야 할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