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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한나라당의 좌측통행
 
공희준 Soccer Jockey   기사입력  2002/07/16 [22:58]
{IMAGE1_RIGHT}대자보 사이트가 한나라당이 선정한 집중관리대상에 포함되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네티즌이 태풍의 눈이 되어 회오리친 노무현 돌풍에 혼쭐이 났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인터넷상의 여론동향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극히 신중한 사람은 돌다리든 철교든 아예 다리를 건너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은 물방울이 좀 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도강을 해야 하겠다.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손에 틀어쥐었기에 도무지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견디지 못하겠다.

한나라당 사이버 대책팀 관계자께 당부 드린다. 나는 아무리 쥐어 짜봐야 5억은커녕 단돈 5만원도 나오지 않는 전형적인 룸펜이다. 수준 이하의 영양가 없는 사냥감이란 뜻이다. 그러니 이번 글 가지고 제발 시비하지는 마시라. 요즘 불쾌지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전에 한나라당에 관계된 일을 하는 선배로부터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98년 가을 이한동씨를 밀어내고 당권을 다시 장악한 이후 총재실에 재입성한 다음, 첫 번째 취임 일성으로 터뜨린 말이 이런 것이었단다. "앞으로는 당사 안에서 좌측통행하세요!" 선배의 얘기를 듣고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파안대소가 전부였다. 남의 주군을 가지고 면전에서 이러쿵저러쿵 찧고 까부는 것이 예법에 어긋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순전한 우스갯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 농밀한 진담 이상의 깊고 의미심장한 울림을 전하기도 한다. 깔끔하게 단장되고 엄격하게 규율 잡힌 법원에서 이력을 쌓아온 이회창씨의 입장에서 시끄럽고 소란스런 당사의 산만한 분위기는 영 못마땅했을 것이다. 총재의 의중을 눈치챈 측근들이 대대적인 당내 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돌출된 중하위 실무 당직자의 푸념과 불평이 나 같은 일개 서생의 더듬이에까지 포착된 것으로 짐작하는 것이 가장 무리 없는 시나리오리라.

이 우스갯소리를 반추하는 나는 왠지 모를 섬뜩함에 부르르 몸을 떤다. 정당은 판결문 하나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이 일도양단(一刀兩斷)식으로 단칼에 나눠지는 곳이 아니다. 온갖 잡다한 사회적 갈등이 모여들어 정화되는 하수처리장 같은 장소다. 하수처리장이 없이는 산업활동과 실생활에서 배출되는 오수와 폐수를 맑게 할 길이 없다. 하수처리장에 오폐수가 흘러 들어오는 것이 싫다고 아예 수문을 꽁꽁 걸어 잠궈 버린다면 고여 버린 물은 대책 없이 썩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좌측통행을 하는 곳, 그런 정경은 엄한 통제로 학생과 죄수들을 훈도하는 학교와 감옥에나 어울리는 정경이다. 한나라당을 고시학원처럼 꾸미든, 스파르타식 입시학원처럼 꾸리든 그건 이회창씨의 자유의사이고 고유권한이다. 한나라당이 여론과의 피드백이 전혀 불필요한 이회창 후보 개인의 사조직이라는 전제가 따라붙는 한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좌측통행하라고 지엄히 명령하는 모습은 소속 당직자와 의원들을 초등학생으로 취급해 다루는 교육청 장학사를 연상시킨다. 장학사 성화에 못 이긴 교장선생님 비위 맞춰 좌측통행했던 초등학교 때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썩 유쾌하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모름지기 시장통처럼 북적거리고 인파로 바글대는 것이 이상적이다. 단, 이익집단과 압력단체의 로비스트만은 절대 사절이다.

{IMAGE2_LEFT}한나라당은 대외적으로 국민정당을 표방하는 정치결사체다. 속사정이야 여하튼 표면적으로는 민의를 받들고 여론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추고자 다양한 이벤트를 연출하기도 한다. 실무진의 부주의와 착오로 종종 사단을 빚기는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이 채택한 득표컨셉은 대체로 주효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추월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그런 한나라당에는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원통함을 풀고자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들게 되어 있다. 각자 말못할 고통과 남모를 고민이 배어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같이 풀어줄 가슴이 따뜻한 정치인이지, 좌측통행을 하지 않는다며 싸늘한 표정으로 꾸짖는 낯설고 무서운 법관이 아닐 것이다.

이회창씨의 집권과 더불어 극성스럽게 도래할 앙시앙레짐의 정확한 실체와 구체적 양태는 아직까지 사회과학적 상상력과 그간의 경험적 관찰 속에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부활한 구체제는 국민 개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생활에 사사건건 개입하려들 테고, 당연히 사회 곳곳에서 마찰음과 파열음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다. 갈등을 풀기 위한 한나라당의 정책기조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강제와 타율에 중점이 두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며, 필연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의 복리증진에 투여돼야 할 생산적 에너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소모적으로 낭비되는 파국적 사태를 피하기 어려워질 게다.

비록 지지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나는 이회창씨가 도량이 활수하고 똘레랑스의 정신을 이해하는 통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총재로 취임하자마자 좌측통행을 지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 것이 원칙주의자로서의 풍모를 부각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적 포석이었다는 선의의 해석도 물론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원대한 비전이 있는 정치인은 당사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든, 우측통행을 하든, 퀵보드를 타고 다니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돌아다니든 하등 개의치 않는다. 지엽말단으로 치부해도 무방한 사소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굳이 히딩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창의와 자율성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의 중심적 화두다. 문명세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 이상, 남과 다른 행동 타자와 차별화된 독특한 발상은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할 미덕이다. 경직된 낡은 잣대로 자유와 자율의 입지를 축소하려는 생각은 박정희 정권시절 전국체전 입장식에나 제격일 시대착오적 사고의 소산이다.

이회창 후보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분이다. 그 코스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여기에서 묻고 따지지는 않겠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직선주로를 뛰어온 사람들이다. 소수 엘리트들의 고속질주를 위한 매끈한 직선주로를 긋고자 수많은 서민대중이 의지하는 구불구불한 곡선주로들은 인정사정 없이 훼손되고 파괴되었다. 무자비하게 파헤쳐진 곡선주로들의 복구 없이 일직선의 좌측통행만을 강요하는 것은 옛날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물럿거라"고 호통치며 백성들을 을러댄 것과 진배없음을 이후보와 측근들은 유념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회창 후보여! 부디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보다 담대히 세상을 촉촉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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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16 [22: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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