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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V Y?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Rock'n'roll Diary] 준비 vs 준비, 아이비와 B.O.B의 길
 
김수민   기사입력  2005/08/26 [00:48]
싸이월드는 매일 남녀 한명씩을 ‘투멤(‘투데이 멤버’의 준말)’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들은, 특히 ‘투멤여’는 홈피를 예쁘게 꾸민 사람들로서 상당수는 자기 외양도 예쁘게 꾸민 경우다. 이들의 사진이 뜰 때 싸이월드 회원들은 그 홈피로 몰려가 방명록과 사진첩에 제 흔적을 남기곤 한다. 지난해 말께에 이 아무개라는 여자가 ‘투멤여’로 등극하면서는 그 현상이 극에 달했다. 연예인에 필적하는 얼굴과 몸매에 여러 남성 네티즌들은 열광했고, 일촌신청이 쇄도했으며, 그녀는 하루만에 준-연예인이 다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싸이월드는 또다시 인터뷰 형식(빌미는 홈피에서 흘러 나오는 BGM이었다)으로 그녀를 소개했다.
 
“야, 내가 일촌신청하면 될까?” 당시 제대를 90일쯤 남겨둔 전투경찰이었던 나는 심심하던 차에 외출시간 피시방에서 후임에게 물었다. “에이, 절대로 안됩니다.” “야 이 자식아. 뭘 ‘절대로’야.” “에이, 안 됩니다.” “그냥 해본 소린데. 진짜로 한다. 되면 너 알아서 해라.” “마음대로 하십시오. 껄껄.” 이튿날 거짓말처럼 나는 그녀와 일촌이 되어 있었다. 놈은 나름대로 원인윽 추측했다. “어, 김수민 수경님 이름이 여자 같아서 안심하고 해줬나 봅니다.” 
 
그 추측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속삭임처럼 불거진 ‘연예인 만들기’라는 의혹은 며칠 뒤 얼마간의 신빙성을 얻었다. 그녀가 이수영 뮤직비디오의 주연을 맡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뜬 여대생을 그저 한번 캐스팅한 것일 수도 있다, 는 짐작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시간은 의혹의 편을 들어줬다. 그녀는 ‘아이비’라는 이름으로 싸이월드에 또다시 나타났고, 그녀의 노래는 박진영이 연관되어 있음을 자백했다(자기가 맡은 후배들의 음색이 거의 자신을 닮아 버렸다는 점에서 유영진, 박진영 등의 가수 겸 프로듀서들은 보컬 트레이너로서 낙제를 받아 마땅하다). ‘외모 죽이는 애를 박진영이 키웠다’라는 요지의 홍보 및 소문이 궁금증과 기대를 한껏 증폭시킨 가운데 아이비는 데뷔했다. 추가로 알게된 재밌는 사실은 언론에 밝힌 그녀의 본명이 이 아무개가 아니라 박 아무개라는 사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군가를 모방한 사례가 아니라면, 이 말은 보통 듣기 좋은, 적어도 싫지 않은 말로 쓰인다. 친숙하다는 뜻이거나 예전의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이비로부터 ‘싸이투멤’ 이 아무개씨를 떠올린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듯하다. “아 이 여자, 너무 이뻐서 티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도 친숙하고 또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나는 올여름의 입구에서 이미 쓴 적이 있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Don't Go'의 뮤직 비디오가 케이블TV 전파를 처음 탔던 순간이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B.O.B.)의 멤버 오상우(보컬)와 넌(기타)은 인디 레이블이 낳은 ‘마루’의 멤버들이었다. 첫 음반 첫 노래였던 <상실의 나라>로 오버 그라운드 음악계를 난도질해버린 그들이 이제 지상파에 출연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들을 만한 우려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마루 시절 <내가 배운 게>(1집)나 <1942>(2집)로 드러낸 날카로운 사회적 감수성이 B.O.B의 처녀작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아쉽다. 그러나 그들은 버즈Buzz나 옛날의 Y2K와 같은 밴드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B.O.B가 소녀취향에 가깝기는 하나 그 사운드는 결코 얕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마루가 2집을 내며 로큰롤, 하드록 스타일에서 모던록으로 변신을 감행하면서 축적한 내공을 그대로 발휘하였다. 그야말로 ‘준비된 밴드’다. 사후 평론으로 ‘준비’라고 부른 과정들이 단순한 준비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찬사에 과장을 듬뿍 섞자면- ‘완비된 밴드’다.
 
인디씬에서 외곬행보를 보이는 고집 센 밴드와 티비 브라운관에 나오면서 록씬의 로비 역할을 하는 밴드가 이신전심으로 호응해야 록음악의 발전을 장담할 수 있다. 이것은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실상 후자에 해당하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는데, B.O.B라는 오버와 언더의 ‘마루’로서 자격이 있는 밴드가 부상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B.O.B는 마루 시절에는 인디 밴드였고, 그 이후에는 ‘FAKE’나 ‘TAKE 4’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자력으로 싱글을 발매했고 그 와중에 메이저 음반사에 픽업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언더 그라운드가 오버 그라운드를 받치는 존재는 아니지만, 언더에서 성장해 오버에서 성공하는 밴드가 늘면 늘수록 전체 음악계는 풍성하고 다채로워진다.
 
그런데, ‘싸이월드’도 언더인가. ‘미니홈피’는 ‘언더 부동산’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용해 연예인으로 뜨는 것은 오버, 아니 오바다. 더욱이 근래 ‘떨녀’ 탓에 네티즌들은 더욱 민감해졌다. 김현식이 몰래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클럽 같은 곳에 노래를 아주 잘부르는 가수가 있다는 입소문으로는 도저히 재기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나는 계속해서 아이비와 B.O.B의 엇갈린 궤적을 훑으며 음악계의 미래를 점칠 터이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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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26 [00: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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