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의대안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서재응, 매덕스의 후계자가 되어라!
[스포츠] 다양한 구질의 신무기에 만족말고 피칭아티스트로 거듭나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5/08/21 [15:42]
서재응, 파죽지세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다

서재응(뉴욕 메츠)의 최근 기세가 무섭다. 20일(이하 한국시각) 뉴욕 메츠의 홈구장 셰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워싱턴과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서재응은 8이닝동안 안타 4개만을 허용하며 2볼넷 5탈삼진으로 무실점, 팀의 1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서재응은 시즌 성적 5승 1패, 방어율 1.09를 기록하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선발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에서 공을 던지던 투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투구내용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4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가운데 선발과 마무리를 막론하고 서재응 보다 방어율이 더 좋은 투수는 워싱턴의 마무리 채드 코데로(방어율 1.02)뿐 이라는 사실이다.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겠지만 현재의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서재응이 꿈의 0점대 방어율을 달성하는 것도 어렵지 만은 않을 듯하다.

이와 같은 서재응의 눈부신 성공은 무엇보다 사용하는 구종을 다양화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본래부터 핀 포인트 컨트롤을 자랑했던 서재응이었지만 최근까지 그가 구사했던 구종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 거의 전부였다.

서재응은 메이저리거로서는 그리 빠르지 않은 90마일 전후의 패스트볼을 뿌리는데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는 변화구가 체인지업 하나뿐일 정도로 단조롭다 보니 타자들이 그를 공략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 아무리 로케이션을 잘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볼 끝의 움직임이 그리 심하지도 구속이 빠르지도 않은 패스트볼과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체인지업만을 가지고는 세계최고 수준의 타자들이 즐비한 빅 리그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서재응은 새로운 구질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커터와 스플리터 그리고 슬로 커브를 자신있게 사용할 수 있는 레퍼토리에 추가하는데 성공했다. 서재응이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거둔 빛나는 성적은 그가 위에서 열거한 신무기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방증이었다.

신무기 장착을 마치고 빅리그에 합류한 서재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투수로 거듭났다. 그는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좌우를 골고루 활용하는 특유의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하여 5종의 구질-패스트볼, 체인지업, 커터, 스플리터, 슬로 커브- 을 적절히 섞어 타자들을 압도해 나갔다. 몰라보게 좋아진 수 싸움과 넘치는 자신감은 그의 능력을 한층 배가시켰다.

아직 단언하긴 이르지만, 서재응의 성공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성 싶다. 영리한데다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를 수 제구력을 갖춘 서재응이 다양한 구질마저 보유하게 되었으니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불의의 사고나 부상만 없다면 서재응이 빅 리그 어느팀에서나 붙박이 선발투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들의 관심은 서재응의 선발 로스터 잔류가 아니라 과연 서재응이 master라 불리는 매덕스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모아진다.

제2의 매덕스를 꿈꾸며

보통 피칭의 3요소라고 하면 구속(velocity), 제구력(location), 투구폼(delivery)을 든다. 유연하고 무리 없는 그래서 부상의 위험이 적은 투구폼을 소유한 투수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빠른 속도의 공을 뿌리는 것이 모든 투수코치들과 투수들의 꿈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속과 제구력이 많은 부분 상충한다는 점이다. 즉, 빠른 구속을 얻으려고 하면 제구력을 잃기 쉽고, 좋은 제구력을 유지하려면 공을 빠르게 던지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설명이 잘 납득되지 않으면 직접 야외에 나가서 포수를 앉혀놓고 공을 던져보라! 그러면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피칭의 3요소를 두루 갖춘 투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현존하는 투수들 가운데 위에서 열거한 피칭의 3요소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투수는 단연 로저 클레맨스를 들 수 있겠지만, 서재응이 역할 모델로 삼아야 할 투수는 로저 클레맨스가 아닌 그렉 매덕스이다.

매덕스는 현존하는 투수들 가운데 로저 클레맨스와 함께 빅 리그 통산 300승과 3000K를 동시에 달성한 유이의 선수일 뿐만 아니라, 피칭에서 구속의 완급조절과 로케이션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대투수이다.

매덕스와 서재응 사이에는 중요한 유사점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우선 매덕스와 서재응 두 사람 모두 유연한 딜리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로케이션을 자랑한다. 또한 두 사람 공히 타자와의 수 싸움에 능하고 영리한 투구를 한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점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매덕스가 전성기 시절에 구사했던 공 끝의 무브먼트는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서재응의 그것은 그리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다.

매덕스가 최상급의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90마일 전후의 패스트볼을 많이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공 끝의 무브먼트 덕분이었다. 또한 최근 매덕스의 성적이 전성기와 비교해서 많이 저조한 원인도 공 끝의 무브먼트가 좋지 않은 탓이다.

서재응이 매덕스를 역할 모델로 해서 사숙한다고 하더라도 공 끝의 무브먼트가 갑작스레 좋아지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서재응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완급이 조절된 다양한 구질들을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다면 공 끝의 움직임이 둔하다는 약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커맨드와 타자들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더해 진다면 서재응은 충분히 매덕스로부터 피칭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물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서재응이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 빅 리그에서 피칭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들으며 피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08/21 [15:4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