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을 개미 다리라고 했다. 도청내용을 코끼리 몸통이라고 했다. 개미 다리를 수사하기 위해서 현미경을 대지 말고, 현미경 없이도 볼 수 있는 코끼리 몸통부터 수사하라고 했다. 하지만 ‘소’(牛)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소’같은 인간들에게 어려운 ‘경’(經)을 읽어준 것도 아닌데.
삼성회장 이건희 부회장 이학수로부터 돈 받아먹은 검찰, 이미 부패 검사의 비리 바이러스가 펄펄 살아 날 뛰는 한국검찰이 자기 조직 내 ‘부패 검사의 정체’와 ‘비리 바이러스 감염수준’에 대한 수사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검찰을 돈으로 ‘사고자 한’ 이건희와 이학수를 ‘도청내용’에 중점을 두고 조사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이 검찰 내 ‘이건희 장학생’들이 ‘도청내용’, 현미경 없이도 볼 수 있는 코끼리 몸통으로의 접근 자체를 길목에서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참 기괴하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메는 것도 한 번이면 실수로 봐 줄 수 있지만 두 번 이면 ‘실수가 아니다.’ 대통령의 행보가 바로 그것인데, X파일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올 때 느닷없이 ‘연립정부’ 운운하며 여론의 초점을 전환시키려다가 ‘실패’했다. 몇몇 신문과 많은 인터넷 언론들이 X파일로 삼성의 이건희일가가 곤경에 처하자 노대통령이 이건희일가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며 의혹에 찬 눈초리를 따갑게 쏘아 보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설마’하며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옹호하는 글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한데 X파일과 관련해서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연정론’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국면전환을 위한 여론조작의 테크닉일 수 있다는 의심이 뭉개뭉개 피워난다. ‘X파일의 본질은 도청자체’라고 선언하며 ‘광야에 홀로 선 선지자’인양 ‘어리석은’ 국민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모양에서 ‘위선의 실체’를 느낀다. 아~위선이라는 게 바로 저런 것이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 70%가 졸지에 알맹이와 껍데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전락해버린다. ‘미군에 의한 미선이 효순이 살인규탄’과 ‘이라크파병 반대’ 그리고 ‘대통령 탄핵사건 규탄’에서 보였던 국민의 여론은 한결같이 70% 전후였다. 한국의 개혁지지세력 70%, 아직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꿈꾸는 사람들 70%를 노대통령은 단숨에 ‘시각교정대상’으로 매도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노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도 본말이 뒤집어졌는데도 그냥 넘어간다. 돈으로 대통령후보와 언론 그리고 검찰 고위직들을 매수했다는 삼성 이건희 관련 범죄행위, 즉 드러난 도청내용이 본질임을 알면서도 굳이 다른 이유로 침묵했던 한국언론은 노대통령의 본말전도 굳히기 선언이 제법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삼성의 광고와 소송위협이라는 칼 날 때문에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며 ‘도청만이 문제’인 듯 호들갑을 떨면서도 양심의 가책은 있었는데, 대통령이 ‘도청만이 문제’인 듯 선언해 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더 이상 삼성의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지 않아도 되는 ‘기댈 언덕’을 찾은 것이다. 대통령의 위선을 알려야 할 언론이 그 위선에 기대어 진실을 숨기려한다. 이들을 어찌할꼬.
* 본문은 <경향신문> 미디어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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