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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탕아들의 대결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6/11 [22:09]
{IMAGE2_LEFT}우승후보 영순위로 지목되던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가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참담한 기록만을 남긴 채 2002 한일 공동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Defending Champion으로 16강 진출조차 실패하는 프랑스의 처절한 몰락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자란 존재하지 않음을 웅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경기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거함 프랑스의 침몰은 예정된 항로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치며 전술과 경기력을 가다듬은 다른 참가국들과 달리 프랑스는 전대회 우승국에게 부여되는 본선 자동진출권으로 인해 세계 축구의 추세에 발맞춰 팀을 재정비하고 전력을 강화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또한 세대교체 실패에 따른 선수들의 전반적 노쇠화는 점점 빠르고 스피디해지는 압박축구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해 프랑스 골문은 삐걱거리는 낡은 회전문처럼 허술해졌다. 설상가상격으로 팀의 주축인 지네딘 지단의 부상과 컨디션 난조는 그를 주축으로 짜여진 팀 조직력 전체를 와해시켜 예선 세 경기 동안 프랑스 선수들은 아트사커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조기 축구회처럼 공만 쫓아다니며 우왕좌왕하는 실망스런 꼴불견과 졸전만을 거듭했다. 프랑스의 자존심 라팔이 미국의 고물전투기 F-15K의 할리우드 액션에 밀려 한국 국방부 구석의 서류함에 처박히는 수모를 겪은 것까지 고려하면 당분간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은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악몽의 땅으로 각인될 듯 하다.

이변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즐겁게 한다. 뻔한 승부가 예측되는 맥 빠진 경기는 팬들의 사랑은커녕 외면만 받기 십상이다. 목요일 치러질 6.13 지방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동네축구 수준인 지역구도 중앙정치가 지방선거 판도에도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 예상되는 터이므로 유권자들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면면 역시 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스타 플레이어보다는 문전 앞에서 연신 헛발짓만 해대는 수준 이하의 선수들이 즐비한 것이 현실이다.

축구경기와 지방선거의 근본적 차이는 축구와는 달리 투표를 통해 관중이 직접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맘에 안 들면 선수까지 교체할 수 있으니 이만큼 신나고 짜릿한 일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이런 모든 가능성들은 일단 경기장에 나가봐야 실현될 수 있다. 투표도 하지 않으면서 정치의 문제점을 시비하는 것은 평생 축구장 한 번 안 가면서 한국 축구의 후진성을 질타하는 일처럼 무책임하고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관중이 꽉 들어차면 관전하는 팬들의 눈총이 무서워서라도 선수들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플레이에 임하게 마련이다. 지금처럼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도가 저조한 상황에서는 참여민주주의를 꽃피울 깨끗하고 능력있는 지역일꾼이 나올 수 없다.

{IMAGE1_RIGHT}부활한 첫 번째 지자제 선거가 실시되던 10년 전, 내가 살던 동네의 선거전은 그야말로 탕아들의 대결장이었다. 구의원으로 두 명의 후보자가 출마했는데 한 명은 설렁탕집 주인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목욕탕 사장이었다. 결국 먹는 게 이겼다. 그 후 열 받은 목욕탕 주인은 해물탕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가 업종을 전환한 이유가 지방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민들의 관심권 밖에서 치러지는 지방정치가 얼마만큼 희화화되고 형해화될 수 있는가를 생생히 입증한 극명한 사례라 하겠다.

6.13 지방선거를 맞이해 내가 정한 간단한 후보자 감별법을 소개하련다.

투표의 대전제는 이 사회의 문벌귀족과 권문세가라 칭해도 무방할 민정계가 주축을 이룬 정당은 무조건 찍지 말자는 것이다. 민정계가 주인 행세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아닌 경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동시에 재산이 적은 후보자에게 우선적으로 표를 던져라.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도한 부를 축적한 사실은 선량이 갖추어야 할 기본덕목과는 거리가 먼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같은 진보정당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은 경우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되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의 측근이거나 동교동계의 자양분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은 가급적 선택 대상에서 배제하라. 흉포한 강도를 쫓아낸 자리에 얍삽한 정치꾼이 새치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방선거가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워지고 지방자치가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복마전으로 타락한 데는 60대 이상 노년세대의 무지와,  40~50대 장년세대의 무기력과, 20~30대 청년세대의 무관심에 원인이 있다. 노년세대에게 지지정당을 바꾸라고 해봐야 무용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이해할 머리가 없다. 장년세대의 투표성향을 변화시키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들을 귀가 없어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직이 지역토호와 지방유지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해답은 청년세대의 적극적 참여에서 구해야 마땅하다.

축구에서는 백번 골대를 맞춰봐야 아무 소용 없다. 골대만 골라 때린 프랑스의 말로를 상기하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백번의 비판과 질책보다 한 번의 투표가 세상을 바꾸는 데 훨씬 유효하다. 수돗물을 마시고 전깃불을 켜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상사에서도 국가권력의 작용이 개입하는 법이고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권력의 궁극적인 지형도를 그리는 것은 여러분이 가진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는 투표행위에 다름 아니다. 지역일꾼을 선출하는 마이크로 심급의 정치가 올바로 서야 국가권력의 향방을 좌우할 매크로 정치의 개혁과 미래가 밝아진다. 기권도 정치적 의사표현의 하나라고 자위하기에는 우리의 정치현실과 내외정세가 너무나 위중하다. 수구적 거대 신문회사와 귀족정당이 찰떡궁합을 지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유포한 지방자치 무용론과 지역선거 회의론의 골 네트를 흔들어야 한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래도 찍을 만한 후보자는 분명 있다.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면 투표 용지에 애인 이름이라도 쓰고 나와라. 기권만은 안 된다. 목욕탕 주인과 설렁탕 주인이 자웅을 겨루는 탕아 아닌 탕아들의 독무대로 지방선거 현장을 방치하면 미소 지을 사람은 민정계의 등에 올라탄 귀족적 대통령 후보와 그의 빠순이 노릇을 자임한 부패한 거대 신문회사들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태의연한 지역감정과 신문권력의 세뇌공작에 때묻지 않은 청년세대의 적극적인 지방선거 참여만이 한국축구의 돌풍과 프랑스의 치욕적인 예선탈락에 비견될 이변을 창출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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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6/11 [22: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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