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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의 디지털 觀点]
온라인 정치 3연승 되짚어보기
- 오프라인은 더이상 낡은 레퍼토리를 되풀이 말아야ba.
 
민경배   기사입력  2002/05/23 [13:11]
또 다른 대결

"Game Over", 경기는 끝났다.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 주말마다 흥행 대박을 터뜨리던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이제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아직 서울 경선과 네티즌 투표라는 공식 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게임이라기보다는 승자를 위한 흥겨운 콘서트로 마무리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민주당 국민경선이 노무현과 이인제 두 후보의 뜨거운 각축장이었음은 새삼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3라운드로 치러진 온라인 정치와 오프라인 정치간의 대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결에서 온라인 정치는 3대0 완승을 거두었다. 비록 민주당 국민경선은 끝났지만 이 경기는 앞으로 남은 대선 과정 중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말로만 무성했던 온라인 정치의 실체와 그 위력을 확인시켜 준 3라운드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이 즈음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제1라운드 : 인터넷 환경 vs 오프라인 선거법

제1라운드 경기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대선후보 열린 인터뷰'에서 거행되었다. 링에 오른 두 선수는 인터넷 환경과 오프라인 선거법이다. <오마이뉴스>가 정간법상 등록된 언론사가 아니라 '열린 인터뷰'는 선거법 위반이라며 선관위가 이를 물리적으로 가로막으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 경기는 선관위가 법적으로 언론사가 아니라고 규정한 <오마이뉴스> 사이트를 통해 오히려 그 과정이 실시간 동영상으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기막힌 역설을 보여주면서 이후 펼쳐질 극적인 경기들의 서막을 화려하게 예고했다. 세계 최고의 열기를 자랑하며 급부상한 인터넷 환경과 미처 이를 따라가지 못한 낡은 오프라인 선거법의 충돌로 빚어진 한판 해프닝이라고나 할까.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하필이면 그 현장에 첫 번째 인터뷰 주자로 나와 있던 인물이 바로 이번 경선의 최후 승자인 노무현 후보였다는 사실이다(필자가 <오마이뉴스> 기자를 통해 확인해보니 이는 바쁜 후보자들의 스케줄에 인터뷰 날짜를 맞추다보니 정말 우연찮게 노무현 후보가 첫 번째로 일정이 잡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제1라운드 경기는 선관위의 과잉 반응에 대한 수많은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문제제기가 도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열린 인터뷰'의 재개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만들지도 않은 종이 <오마이뉴스>의 언론사 등록이라는 편법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경기 결과는 온라인 정치의 판정승!

제2라운드 : <노사모> vs 오프라인 당 조직

제2라운드 경기에서는 이번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노무현 후보의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상대는 이인제 후보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던 동교동계의 지구당 기간 조직. 전형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조직간의 정면 승부인 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조직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조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공통의 관심사나 신념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안 공동체라면, 오프라인 조직은 물리적 기반에 근거한 연줄 공동체이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래로부터 형성된 자발적 참여 조직이라면, 오프라인 조직은 명확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위로부터 구성된 인위적 동원 조직이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는 무정형적인 익명의 네트워크 속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자율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는 지극히 느슨한 수평적 결사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반면 오프라인 조직은 체계적인 지위와 역할의 분담 하에 상명하달식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수직적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 조직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경선 과정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간 것은 노사모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스스로 경선장에 찾아와 목이 터져라 "노무현"을 외쳐대고, 끝나면 자기 돈 내고 설렁탕 한 그릇 시켜먹고 흩어지는 노사모 회원들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선거판에선 찾아 볼 수 없었던 전혀 낯선 풍경이었다. 게다가 경선이 진행될수록 노사모의 회원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간다. 2000년 처음 600여 명으로 시작된 노사모가 경선이 진행되면서 하루에도 수 백 명씩의 신규 가입이 이루어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3만 명이 넘는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해버렸다.

혹자는 이를 두고 "모종의 배후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는 인터넷 문화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한밤중에 채팅을 하다가 느닷없이 번개 모임을 갖는 게 네티즌들의 정서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번개를 하려고 부산에서 비행기타고 서울로 온다는 이야기는 이미 네티즌들에게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수 백명에서 수 천명의 회원을 모은 온라인 동호회의 경험은 인터넷 공간에 너무나 흔해서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러한 온라인 네트워크의 독특한 성격이 민주당 경선에서 상상을 초월한 파워를 발휘한 것이다. 결국 노사모는 노풍을 불러 일으켰고, 이렇게 만들어진 노풍을 타고 대세론은 그 주인을 바꾸었다. 급기야 이인제 후보는 선거 캠프 해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니, 제2라운드 경기 결과도 온라인 정치의 기권승!

제3라운드 : 온라인 여론 vs 조중동

제3라운드는 불꽃튀는 여론전으로 전개되었다. 대세가 노무현 후보 쪽으로 기울면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보수 언론은 일제히 '색깔론'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고 선제 공격에 나섰다. 색깔론! 역대 선거 과정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단골 메뉴이다. 더욱이 일단 한번 걸려 들었다하면 그 어떤 고수라도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했던 가공할 필살기가 바로 이 색깔론 아니었던가? 마침내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오프라인 보수 언론이 색깔론을 앞세워 링에 오른 것이다. 온라인 진영에도 돌연 긴장감이 짙게 드리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승부는 예상 밖으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분류되던 대구와 경북 경선에서조차 노무현 후보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색깔론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오프라인 보수 언론의 공세를 무력화시킨 것은 인터넷에서 새롭게 형성된 온라인 여론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종이 신문의 충성도 높은 독자로만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넷 대안 언론 사이트를 찾아가 오프라인 보수 언론과는 또 다른 시각의 기사를 접하면서 스스로 균형감을 찾아가고 있다. 나아가 각종 게시판에 올려진 수많은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직접 자신의 경험이나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보수 언론의 논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예전의 그들이 이미 아니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된 온라인 여론은 오프라인 보수 언론의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비판하면서 그 위력을 효과적으로 차단시키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색깔론 공세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오히려 색깔론을 제기한 진영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부메랑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온라인 여론의 힘은 지금까지 종이 신문이 뉴스 시장을 독점하고 여론을 주도하던 시대가 마침내 끝나가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결국 제3라운드 경기 결과는 예상을 깨고 온라인 정치의 K.O승!

그러나 경기는 계속된다. 쭈∼욱......

http://jabo.co.kr/zboard/
▲필자인 민경배 사이버연구소 소장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온라인 정치의 3연승은 이제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이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e-폴리틱스는 더 이상 미래학적 수사가 아니며, 선택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엄연한 현실이며, 냉혹한 정치판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이다. 노무현과 이인제의 엇갈린 운명은 이를 알리는 장엄한 전주곡이다. 가장 지명도 높은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를 가진 노무현과, 그에 못지 않게 가장 지명도 높은 정치인 안티 사이트인 <이반사모>를 가진 이인제. 어쩌면 이들 두 사람의 운명은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 결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온라인 정치와 오프라인 정치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 대선까지 이들 두 패러다임간의 경기는 또 다른 영역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치욕적인 3연패를 당한 오프라인 진영에서 앞으로 어떤 새로운 카드를 들고나올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해졌다. 더 이상 구시대적인 레퍼토리로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없으며, 따라서 승산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120만원 짜리 요트와 105평 짜리 호화빌라는 이미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한 치 건너 두 치인 장인의 부역 전력과 직계 자식의 병역 기피 역시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여태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정치 현상에 한껏 신바람난 유권자들에게 새삼 흘러간 레퍼토리를 되감아 틀어줌으로써 맥빠지게 만드는 일만큼은 본선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3연전보다는 더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쳐주길 기대해본다. 파이팅!

* 필자는 사회학박사로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입니다.
* 본 기사는 이슈투데이 http://www.issuetoday.com 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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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23 [13: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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