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민경배의 디지털 觀点] 노사모는 사조직인가?
선관위는 참여 민주주의의 싹을 자르지 마라ba.info/c
 
민경배   기사입력  2002/04/07 [00:17]
노무현은 유난히 선관위와 자주 부딪친다. 그가 금품 살포나 향응 제공, 혹은 흑색선전과 유언비어 유포 등 선거철이면 의례 등장하는 짜증스러운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관위와 부딪치는 것은 노무현이라기보다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사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다만 그 맨 앞자리에 늘 노무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의 대선주자 열린 인터뷰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열린 인터뷰의 개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선관위의 과잉 대응을 계기로, 온라인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 낡은 선거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주인공이 바로 노무현 아니었던가? 온라인 언론에 이어 이번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선거법 사이에 또 다른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노무현의 팬클럽인 노사모를 선거법상 금지된 사조직으로 규정한 선관위의 발표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또 노무현이다.

노사모는 e-폴리틱스의 선구적 실험

{IMAGE1_RIGHT}물론 이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선 후보 중 가장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물이 노무현이라는 것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여타 후보들처럼 튼튼한 지역기반이나 변변한 조직 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그가 이번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노픙을 일으키며 일약 선두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그래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이인제와 노무현의 경쟁 구도를 지역 대결이니 보혁 대결이니 하는 식의 낡은 구도만으로 설명할 일도 아니며, 음모론이니 색깔론이니 하는 식의 근거없는 ‘설’로 설명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기존 오프라인 방식의 정치와 새로운 온라인 정치가 맞붙어 자웅을 가리는 진검승부의 제1라운드인 것이다. (작년 12월 17일 노무현 대선출정식이 끝나고 난 이후 노사모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 노무현 후보 : 대자보 자료사진)

경선이 진행되면 될수록 두 선수는 각자에게 부여된 본연의 역할에 점점 더 충실해지면서 관전자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동원해가며 연일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이인제의 색깔론 전략과 이에 편승한 기성 오프라인 언론의 보도는 지난 30년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며 한국의 유권자들을 질릴 정도로 익숙하게 만든 오프라인 정치의 총결산이라 하겠다. 반면 온라인 언론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폭적 지지 하에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노무현의 온라인 전략은 e-폴리틱스의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시키고 있는 선구적 실험이라 평가된다.

이렇게 두 선수는 열심인데 문제는 심판이다. 자질이 떨어지는 심판의 잦은 휘슬은 경기의 흐름을 끊으며 재미를 반감시킨다. 나아가 지난 동계올림픽처럼 엉뚱한 오심이 경기의 승부를 뒤바꿔버림으로써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지금 선거법과 이를 집행하는 선관위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이미 오마이뉴스의 열린 인터뷰 때도 한 차례 지적됐지만 선관위는 이번에 노사모를 선거법상 금지된 사조직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시 한번 심판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문제의 핵심은 e-폴리틱스에 대한 몰이해이다. 오프라인 정치와 온라인 정치의 승부에서 오프라인식의 잣대로 심판을 보려고 하니, 인터넷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높아진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선관위 규제는 교각살우(矯角殺牛)

현재의 선거법에서 사조직이 본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승리를 위해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선거 과열과 부정 행위의 자행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체 어떤 것이 사조직이냐에 대한 해석이다. 분명 선거법은 특정 후보가 자신의 득표활동에 동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한 ‘위로부터의 조직’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규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프라인에서나 유효한 상황이다.

{IMAGE2_LEFT}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조직이란 대부분이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조직’이다. 누가 억지로 끌어 모은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독특한 특성이다. 그리고 노사모의 탄생 과정과 지금까지의 활동이야말로 이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이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스스로가 좋아서 움직이는 팬클럽을 두고 느닷없이 사조직이라고 규정한 것은 동계올림픽에서 오노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호주 심판 제임스 휴이시의 오심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판정이다. (사진 : 노사모 제공)


원래 사랑이라는게 누가 사랑하라고 시켜서 되는 일은 아니다. 노사모라는 말 그대로 이들이 노무현을 사랑하겠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스로의 선택이야말로 참여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e-폴리틱스도 단지 투표과정을 효율화시킨 전자투표나 썰렁한 정치인들의 홈페이지보다도 노사모처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정치 커뮤니티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노사모 같은 커뮤니티는 지난 총선 때 벌어진 '낙천/낙선운동'이나 정치인 안티 사이트와 같은 네가티브(negative) 캠페인이 아닌 포지티브(positive) 캠페인 모델이다. 참여 민주주의의 활성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양성시켜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짜증스러운 발상이라 하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부가 인터넷을 두고 하는 일이란게 늘 이런 식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인터넷 내용등급제에서도 보이듯이 인터넷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실험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앞장서 나가면서, 노사모와 같이 정치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인 참여 민주주의의 실험은 또 제일 앞장서서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노사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조차 마음놓고 표현할 수 없다면 대체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투표장에 가서 찍기만 하면 끝이란 말인가?

[관련기사] 손혁재, 노사모는 자발적 정치참여의 모범사례, 대자보 79호
[관련기사] 명계남 '정치에 뜻 없다!' 하니리포터


* 필자는 사회학 박사로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4/07 [00:1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