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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살면서 느낀 인종차별과 인권의 소중함
무뎌진 인권의식과 진실을 밝히는 故이경운 부친의 사랑
 
김선영   기사입력  2002/10/22 [04:21]
{IMAGE1_LEFT}오늘은 그동안 미루어왔던 몇마디를 꼭 하고싶습니다. 며칠전인 10월19일 한국에서 KBS 추적 60분 제작팀이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고이경운군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사실, 지난 9월 27일 고이경운군 정의, 인권 2차 시위때 한국의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우리는 형제입니다' 라며 취재나온 중국 취재기자들께 한국인으로서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었거든요. 심지어 이곳의 한인신문사가 네,다섯곳은 되는것 같은데, 단 한분의 기자도 파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취재팀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취재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사뭇 흐뭇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인권의식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대자보의 보도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접한 KBS의 추적 60분 제작팀이 영국취재가 가능하게 협조해준 대자보 영국취재부에 아울러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고이경운사건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글을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려봅니다.

영국에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외국인, 또는 동양인, 소수민족으로서의 차별된 대우...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경험하게 될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생명이 오가는 상황에까지 적용된 영국인들의 인종차별은 결국 스테판 로렌스, 고 이경운군, 그리고 인도인 리키..그외에도 수많은 사건들과, 특히 의문사들을 낳았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와 우리자녀가 희생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관련 기사]
* 런던에서 열린 이경운군 2주기 추모식, 대자보 93호
* 주영한국대사관은 공개해명거부를 사과하라, 대자보 92호
* 고 이경운군 사망사건 개요 및 의문점, 진행상황
* 고 이경운군 사건관련 대사관의 입장(이건호님께)
* 고 이경운군 사건에 대한 대사관의 입장에 대한 반론, 이훈종
* 고 이경운군 사건 관련 대사관의 입장(이훈종님께)

얼마전 이곳 유치원의 간이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죠. 제 아이가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아서, 친구를 위해 비켜주라고 하자, 영국인 여자 아이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며 하는 말이 저를 매우 당황하게했습니다. "I'm White, I'm First" '나는 백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먼저다'라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들었다가 놀라서 다시 그 아이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부터 너한텐 "Lady First" 도 없다. 영국인들에겐 오히려 백인우월주의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평소 부모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웠길래.... 하는 생각이 들며 영국사회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수의 수준낮은 영국인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리고 하루는 같은 유학생 가족들이 차를 마시고 오겠다며 외출을 한후 어이없어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던 날이 기억납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려는 순간, 건장한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으며, "여기는 동양인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랍니다. 그저 평범한 곳이었는데, 그날은 기분좋은 외출은 기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2차 시위때 어느 선교사님의 연설을 통해 듣게 되었던 사건은 우리를 또한 두렵게 했습니다. 퍼트니 다리위의 한밤중 한국인 신학생에 대한 영국청년의 어이없는 구타사건도 인종차별을 느끼게 하는 사건중의 하나입니다. 지나가던 한국인 신학생을 잡아 싸움을 걸었고, 겁먹고 도망가는 한국인 신학생을 쫓아가 쇠파이프로 머리며 어깨 등을 마구 구타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히고 도주한 범죄자들과 증거물인 쇠파이프를 경찰은 현장에 버려두고 가 버렸고, 뒤늦게 연락받고 현장에 간 어느 선교사님께서 증거물과 사건현장 사진을 찍고, 법원에서 증인이 되겠다며 경찰에 알렸을때 그들의 대답은 한국인 신학생이 지나가다 시비를 걸어서 싸움이 붙은 것이라는 어이없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정작 그랬다고해도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안겨준것에 대한 설명으론 충분할수는 없을텐데요...그러나 그 한국인 학생은 어디에다 하소연하며 어디서 억울함을 풀수 있었을까요?...사람같지만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이곳에는 많다던 그 선교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한다던 그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고이경운군 죽음에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가족은 보상금을 노리고 자식을 2년째 병원에 버려뒀다" 는 말을 교민사회에 공공연히 흘리고 다니는, 정작 도움을 주며 앞장서서 나서야할 이름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그런 비방을 하고 다니는지도요. 고이경운군 사건을 처음부터 숱한 루머의 온상으로 만들고 끝없이 유가족의 가슴을 도려내고 있는 이들...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가족에게 모든 잘못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하니...같은 한민족으로서 부끄럽고 창피할 뿐입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날마다 저지르고 있는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적 범죄행위들을 은폐하고, 깊숙히 덮어 두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영국과 자신들이 사는 이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겁니다.

인도청년의 의문사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킹스톤 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인도인들을 보고 그들을 사뭇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야만 했던 순간...연설을 마친, 경운군 아버님께 악수를 청하며 용기를 주던 많은 인도인들...밤늦은 시간까지 빈자리 없이 모여 유가족을 위로하며 동참하던 그들을 보며...우리의 인권의식은 최소한 그들보단 뒤져있는 듯 했습니다. 인권문제를 우리는 그저 한 개인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고이경운군 정의, 인권 2차시위때 아쉬움을 느낀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함께한 자리에서 27일 트라팔가 광장에서 꼭 뵙겠다던 그 교민분들의 얼굴을 찾았지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죠. 앞장서 나설수는 없지만 뒤에서 돕겠다던 한인 목사님들도...개인적으로 일일이 찾아뵙고 사건개요와 시위계획을 알렸을때 참여하기로 하셨던 많은 한인교회 성도님들과 교민들의 불참....저 역시 이 사건을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얼마전 이었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파트타임 일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람스게이트, 헤이스팅스에서 두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고 시위참석을 위해 올라온 많은 학생들이 유가족에게 더 위로가 되었고, 함께 한 이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분들께 고이경운군 사건경위와 시위참여 계획을 알렸을 때, 제가 들은 말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참여를 자제하라는 것이었죠. 우리나라에 있었던 수많은 독재정권하에서의 의문사들....인권유린에 대해선 무뎌질 대로 무뎌진 우리들..아니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그저 덮어두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

{IMAGE2_RIGHT}'인권'-한사람의 소중한 가치, 존귀함... '인권'이란 단어가 우리나라 만큼 생소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 또한 한개인이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나라 만큼 어려운 나라가 있을까요? 한국정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영국내 각종 인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듯 얻고있는 소수민족들의 도움들을 통하여 고이경운군 아버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대한민국 국민들께 보여줄 그 '인권'의 충격과 감동과 위대함을 기대해 봅니다.  

저는 경운군 아버님을 뵐때마다 우리 '아버님'를 보는듯 합니다. 그래서 '아버님'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약 영국에서 죽었다면, 생업을 포기하고 오셨을 우리아버지...제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모르는 채 절대로 저를 묻어버릴 수 없으셨을 한국의 아버지들....밥먹듯 끼니를 거르시지만 할 수 있는한 모든 곳에 도움을 구하러 다니셨을 자식을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사건을 알리시면서 가슴에 흐르는 슬픔을 숨기고, 시종 웃으며 고마움을 보이셨을 이미 늙어 버리신 우리아버지....그래서 오늘도 들리는 소리에 낙심하지 않으시고 용기를 내어 다시금 일어서시는 경운군 아버님이 고맙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경운이가 아버지께 드리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합니다. "아버지, 저를 길러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 저는 죽을때나 지금도 아버지의 사랑속에 있어요. 외롭지 않고 춥지 않아요."

어느나라인들 인종차별이 없겠으며, 사람 사는 곳에 불의한 일들이 또 어찌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에 맞서 주어진 기회를 통하여 싸워 나갈 수 있도록 열린 사회, 열린 의식들... 또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잘못을 바로잡을 줄 아는 올바른 의식들...저는 영국정부에는 그것이 있다고 봅니다. 고이경운군 사건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과 인종, 피부색을 떠난 인간의 존엄성과 또한 주어진 권력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영국땅에 공부하러 온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많은 우리의 유학생들이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제화된 도시 런던 그리고 영국, 그중에서도 백인우월주의가 심한 곳 중의 하나라는 Kent지역, 그곳에 있는 Cantubery. 그곳 병원에 누워있는 경운이...모든 영국인들은 이 사건과 자신들이 한 가정에 저지른 엄청난 잘못에 관하여 놀라며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한 개인의 인권이 무시당할때, 그들이 자랑하는 유수한 전통과 높은 이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도시가 될 한국의 서울이 있지만..인권의 소중함을 알지못하면...

한국의 대 방송사인 KBS, 그것도 '추적60분'팀이 이경운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런던에 왔습니다. 이번만큼은 이 사건을 대하는 그들을 기대해 보렵니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이경운군 사건이 인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 바탕위에 세워진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 국민 모두의 일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 김선영님은 '젊은교회' 이훈종전도사의 부인으로 두자녀의 어머니 이기도 하다.
* 고 이경운군 사건관련 집회 및 추모식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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