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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가 왜 그렇게 비싼가 했더니

[정문순 칼럼] 모성보호에 정책적 배려를
 
정문순   기사입력  2002/09/04 [02:03]
앞으로 '성형열풍'이 다소나마 수그러들게 될까. 세법개정안에 따라, 미용 목적의 의료행위에 부가가치세가 물려질 전망이다. 병원 문턱만 높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 스스로 자기 몸을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학대하는 지경에 이른 작금의 미용 풍조는 어떻게든 제지를 받을 필요가 있다.

당국의 관심이야 세수 증대에 있겠지만, 시술 비용의 상승이 여성의 몸을 괴롭히는 잘못된 풍조를 조금이라도 억제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미용성형수술에 대한 부가세 적용이, 여성의 몸을 못 살게 구는 짓에 대한 처벌과 다름없다라고 멋대로 넘겨짚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와 대조적으로 여성 몸을 돌보는 일과 관련된 것에는 감세나 면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용성형에 부과세 적용

{IMAGE2_LEFT}최근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벌인 '생리대 부가가치세 인하 캠페인'은 모성보호에 관한 당국의 관심이 얼마나 걸음마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잘 나타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생리대에 부가가치세가 매겨져 있다니? 시판용 생리대의 사용이 널리 퍼지지 않던 70년대, 부가가치세법의 제정 당시 생리대는 기초생필품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에 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그러나 연간 23억개 이상의 제품이 소비된다는 오늘에 이르도록 생리대는 법적으로 생필품이 아니다. 민우회의 서명 운동이나 설문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은, 생리대의 가격이 만만찮은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단다.
△ 지난 8월 23일 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생리대 가격, 너무 비싸지 않니’ 거리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생리대 부가가치세 폐지에 서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탁기형 기자

가임기 40여년 동안 그런 달갑지 않은 비용을 써야 한다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모성보호법이 있는 나라가 임신과 관련된 몸의 활동에 없어서는 안될 물품에다 수십 년 째 부가세를 매겨오다니,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거꾸로 여성의 몸을 배려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이를 단순히 세제 정책의 난맥상에 기인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 당국으로서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이나, 모성보호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희박함은 다른 부분에서도 입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며칠 동안 피를 쏟을 때마다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 못지 않게 여성의 몸을 괴롭히는 것에는, 여전히 여성의 전적인 몫으로 맡겨진 육아와 가사노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해도 아이 키우기와 집안 일은 개인의 몫이자 여성의 ꡐ성직ꡑ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여성의 노동력은 필요로 하면서도, 여성들이 짊어져 온 짐을 대신 넘겨받을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이 여성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그대로 감당해주기를 바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면, 곱절의 노동을 감당할 수 없는 여성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성보호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IMAGE1_RIGHT}지난 해 사상 최저로 감소한 출산률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사회문제로까지 일컬어지는 여성들의 늘어가는 출산 기피 현상은, 그 몸을 부실하게 대접하는, 집 안에서나 집 바깥에서나 똑같은 강도의 노동력을 바치길 요구하는 현실에 대한 침묵의 항변으로 읽혀져야 한다. 당연히, 출산률의 과도한 저하에 따른 사회적 폐해는 고스란히 국가의 골칫거리로 넘겨질 것이다. 그 점을 당국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육아의 사회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딱한 일일 수밖에 없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미용성형의 유행이든, 여성에게 전통적 성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적 인습이든, 이런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당국의 모성 보호 정책의 부재이든, 모두 여성의 몸에 괴로움과 억누름을 덧씌우는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여성의 몸이 그 자신의 것이 되어 자유로워지기까지는 얼마만한 피를 더 흘려야 하는 것일까.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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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9/04 [02: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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