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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아니고 '임신 중단'입니다
[정문순 칼럼] 인권에서 보아야 할 임신 중단의 권리
 
정문순
▲ '출산 권리 센터'가 발표한 2014년 세계 낙태 지도. 남반구와 북반구의 색채 대비가 뚜렷하다. 낙태가 제한되는 나라일수록 붉은 색이며, 자유로운 낙태가 허용되는 나라는 초록 색이다. 대한민국은 주황색으로 낙태가 상당히 제약되는 나라로 분류되었다.     © 정문순


 우리는 낙태했다.”
 
1971년 옛 서독 잡지 <스턴>지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표제다. 이 선언에는 374명 여성들이 참여했으며 표지에 그들 사진이 실렸다. 그들은 대부분 일반인이었지만 배우 센타 버거, 로미 슈나이더, 여성운동가 알리스 슈바르쩌 등 유명 인사 수십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독은 자유로운 낙태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낙태 경력을 당당히 밝히는 것은 범죄를 자백하는 것이자, 사회적으로 매장 당할 것도 각오해야 하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조신하지 못한 여자, 문란한 여자, 헤픈 여자, 생명을 죽인 야만인 등의 비난도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당시 현행법인 낙태죄를 반대한다고만 말했으면 아무런 사회적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비난과 모욕이 쏟아질 것을 무릅쓰고 낙태 경력을 고백함으로써 낙태죄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존재가치를 상실한 법인지를 웅변했다. 반향은 컸다. 이웃 나라 프랑스에도 낙태고백운동이 번졌고, 서독의 경우 몇 년 후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유럽에서 낙태고백이 잇따라 나온 1970년대 초기는 1960년대 끝자락에서 시작한 페미니즘의 기운에 힘입은 시기였다. 세계사에서 1960년대 후반은 68혁명(권위적인 학교 문화와 드골 정부에 대한 프랑스 대학생들의 반대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진 젊은 세대의 진보 운동)으로 상징된다. 베트남전쟁 반대, 페미니즘, 프리섹스, 흑인인권운동, 록음악, 히피운동 등 기성 세대의 억압과 권위를 거부한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감수성이 전 세계를 달군 시대였다. 첨예한 남북 대결 체제에서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외화 특수를 누리던 우리나라 정도만 예외였을 뿐, 이웃 일본이나 파키스탄 등 아시아도 68운동의 영향권에 있었다.
 
시대 변화는 여성들의 옷차림에서 먼저 나타났다. 치렁치렁한 치마를 벗고 기장이 무릎 위로 올라가는 스커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당대 페미니스트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진보운동이 퇴조의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낙태고백은 여성운동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고 역사적으로 평가받는다.
 
미니스커트가 긴 치마의 속박에서 여성의 몸을 벗어나게 한 것이듯, 낙태도 여성 몸의 권리와 일맥상통한다. 혹자는 일개 물건인 치마태아라는 생명을 등가로 취급하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로 낙태죄 폐지의 최대 걸림돌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태아라는 생명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의 완강함이다.
 
그러나 낙태죄 존속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것 중의 하나는 태아는 혼자서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생명이 아니며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자신이 깃든 여성의 몸에 의지해서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권은 자기결정권을 전제로 한다. 자신과 관련한 일에서만큼은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어야 한다. 자기결정권 행사에서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신체, 즉 몸이다. 성폭력이 가장 나쁜 범죄인 이유는 몸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낙태에 대한 권리는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권과 동일한 뜻이다. 자기 몸에 일어나는 현상조차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 인권과 존엄을 가진 인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뱃속의 생명을 출산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생명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하는 윤리적 차원에만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임신이 여성의 몸, 건강, 생활, 나아가 삶 전체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가 하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럴 경우 그 선택의 권리를 당사자가 아닌 국가가 관여하거나 개입해야 정당할까.
 
엄격한 카톨릭이나 인권 후진국에서는 낙태를 생명을 죽이는 죄와 연관시키지만, 여성인권을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낙태죄가 없다. 선진국들은 이르면 1950년대 늦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 낙태죄를 폐지했다. 여성의 안전한 낙태권을 지지하는 운동 단체 출산 권리 센터http://worldabortionlaws.com/map/)작성한 낙태법 세계 지도에 따르면, 낙태죄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는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오늘날 낙태죄는 대부분 중동, 남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몰려 있다. 유럽에 국한할 경우 2014년 기준으로 낙태가 제한된 나라는 아일랜드와 말타, 폴란드뿐이다.
 
이 단체는 1)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거나 여성의 목숨을 위협할 때만 허용하는 나라, 2)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 3) 여성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허용하는 나라 4) 아무런 제약이 없는 나라 등 세계를 4그룹으로 분류하고 각각 빨강, 주황, 노랑, 초록으로 색을 입혔다. 한국은 두 번째 유형인 주황으로 낙태가 상당히 제약을 받는 나라이다. 이 지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 20%는 낙태가 엄격히 제한된 나라에 살고 있다.
 
낙태죄가 없는 나라들은 태아의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거나 인권을 경시해서 그런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아프리카, 중동과 남아시아 등 낙태죄가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사형제 유지 국가와도 겹친다는 것. 이는 낙태를 인권 감수성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에서 생각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낙태에 제약을 가하는 나라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몸을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반인권적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를 반대하는 목소리들은 여성 건강의 측면에서도 낙태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는 200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48,000여 명의 여성이 위험한 낙태로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낙태가 금지되지 않았다면 48,000명은 안전한 방식으로 임신을 중단함으로써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마저도 공식적으로 드러난 수치일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합병증을 앓다 숨질 경우 불법적인 낙태 시술이 사망 원인으로 밝혀지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낙태를 처벌할 경우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거나 안전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낙태를 한다는 것이므로, 안전한 낙태는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안전하고 법으로 보호받는 낙태는 곧 여성의 인권”(‘출산 권리 센터’)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여성의 낙태에 참견하는 나라는 출산권에도 제약을 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저출산을 이유로 기혼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다시피하는 우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낙태를 제한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되지만 엄격한 산아제한정책을 펼치거나 여성의 출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다. 우리도 한때 지금의 중국처럼 산아제한이니 가족계획이니 하는 명목으로 낙태를 사실상 허용한 역사가 있었다. 또 정부가 한센인에 대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불임이나 낙태 시술을 가한 수치스러운 사실도 밝혀졌다.
 
낙태권과 출산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한국이나 현재의 중국처럼 국가가 여성이 출산할 권리에 개입하여 원하는 출산을 가로막는 것은, 낙태권과 출산권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둘을 아울러 출산에 관한 전반적인 권리로 봐야 함을 일깨운다.
 
나는 이 글에서 줄곧 낙태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언어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경우 중립성이 심각하게 저해 받을 수 있다. 낙태라는 낱말이 주는 부정적 의미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임신 중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임신한 여성의 몸을 모체라고 말하는 것에도 신중함이 필요하다. 태아를 품은 여성을 모체라고 할 경우 독립적인 여성은 사라지고 자식을 양육해야 할 어머니 몸만 남는다. 그럼으로써 여성은 어머니 몸이기 이전에 임신을 지속할지 중단할지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존재임은 망각된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나 현상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모든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대한민국 여성들은 아직 기초적인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 단순한 진리에서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사진 출처]  
http://germanhistorydocs.ghi-dc.org/sub_image.cfm?image_id=1592 
http://worldabortionlaws.com/map/ 
http://www.imdb.com/name/nm0002769/?ref_=nv_sr_1
 
* 위키피디아 기사 일부 참조 
  
이 글은 iCOOP생협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손본 것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12/20 [13:1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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