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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박정희의 유산
[시론] 5.16쿠데타 51주년에 생각해보는 박정희와 박근혜, 타락한 가치관
 
이재봉
지난 5월 15일자 [한겨레]에 꽤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들이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대체로 많이 가질수록 현상 유지를 원하여 보수적이 되고, 적게 가질수록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진보적이 되기 마련인데, 빈곤층마저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그들은 박정희가 대통령을 잘 했기 때문에 그 딸 박근혜도 잘 할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고 한다. 5.16 쿠데타 5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의 보도여서 더 충격적이다.

박정희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자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후보까지 그와 닮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그리고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그의 딸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히고 있다.

만약 역사왜곡이 없었다면 이게 가능할까? 우리 현대사가 심하게 왜곡된 채 교육되고 보도되지 않았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나타나겠느냐는 뜻이다. 박정희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장교가 되었던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역사책에 실렸어도 그의 인기가 높을까? 해방 후 미군정에서는 남로당원으로 암약하다 이른바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체포되자 동료들을 밀고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구한 배신자요 변절자였다는 사실이 널리 보도되었다면 그가 존경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1961년 5월 민주정부를 뒤엎고 쿠데타를 일으켜 1979년 10월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자유와 인권을 혹독하게 짓밟으며 병영국가 체제를 만들었던 군사독재자였다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그의 딸까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물론 연좌제를 만지작거릴 생각은 없다. 1980년대 폐지된 연좌제를 다시 불러오는 것은 분명히 반대한다. 아버지가 일본군장교를 지낸 친일파였고 남로당원 출신의 배신자요 변절자였으며 군사독재자였기 때문에 딸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박정희가 집권할 때 저질렀던 역사왜곡을 박근혜가 정권을 잡으면 조금이라도 바로잡기는커녕 그것을 굳히기나 더 심각한 왜곡으로 이끌기 쉬울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 아닌가.

마침 5.16쿠데타 51주년을 앞두고 이에 관해 세 가지만 짚어본다. 첫째, 박정희 정권 시절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불행한 역사적 사건을 여전히 ‘5.16 혁명’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4월혁명’을 ‘4.19의거’로 깎아내리고 ‘5.16쿠데타’를 ‘5.16혁명’이라고 미화시킨 박정희 정권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은 것은 무능했던 김영삼 정권의 뛰어난 업적 가운데 하나다.

둘째, 미국이 5.16 쿠데타 모의를 사전에 탐지하지도 못했고 쿠데타 발발에 전혀 개입하지도 않았다는 일부 언론인들과 학자들의 주장은 바로잡혀야 한다. 1961년 5월 미국 중앙정보국 (CIA) 한국지부장을 지낸 실바 (Peer de Silva)가 1978년 펴낸 회고록, 미국 국무부가 1960년대의 비밀문서들을 1980년대부터 해제하기 시작하여 1994년과 1996년 펴낸 외교문서집 등을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미국 국무부는 이승만 대통령을 퇴진시킨 데 이어 장면 정부도 교체되기를 바랐다. 장면은 미국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미국 관리들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지만,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세계적으로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 전후의 상황에서 한국을 강력한 반공보루로 유지하려던 미국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1961년 4월 중순부터 군사쿠데타 음모의 진행과정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최소한 미국의 중앙정보국과 국방부는 쿠데타 주도자와 지지자들의 명단과 성향까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데타를 드러내! 놓고 옹호하는 인상을 주지 않았을 뿐 은밀하게 도왔다. 5.16쿠데타는 덜레스 (Allen W. Dulles) 당시 중앙정보국장의 말대로 “가장 성공적인 해외 공작활동”이었던 것이다.

셋째, 박정희 정권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이를 그의 업적으로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장면 정권이 세워놓았던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한 일본의 더러운 돈과 베트남파병에 의한 미국의 피 묻은 돈 그리고 세계 최고기록을 세운 우리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중노동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아울러 인정해야 한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구사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지만, 자유를 가능한 한 보장하며 경제발전을 추구하려 했던 장면 정권이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지 않았다면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최선의 결과를 불러왔을 수도 있고 사회혼란에 따른 북한의 적화통일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박정희는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뿌리째 없애버리고, 적화통일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불러오지 않았지만 빵 없는 자유보다는 자유 없는 빵이라는 차악을 가져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무를 가장 잘 수행한! 대통령”이나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받들어지는 것은 역사왜곡에 따른 편견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잘못된 군사문화에 오염된 타락한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 글쓴이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평화연구소장이며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2012년 5월

기사입력: 2012/05/18 [17:1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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