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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 영웅심리에 사로잡힌 몽상가인가?
[류상태의 예수를 찾아] 우리모두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류상태
한 평론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강의석과 지만원을 닮은꼴 스트라이커로 비유한 글이었습니다. 평론가의 논지에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학교내 종교자유를 주장했을 때 그를 지지했던 분들이 지금의 그로 인해 당황해하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강군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강군은 어려서부터 유별난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눈에 잘 띄는 그 아이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4년 전에 갑자기 찾아온 사건으로 인해 함께 눈물 흘렸고 속깊은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제 목에 칼을 들이대는 어린 제자의 당돌한 주장에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해 당황했고 도피하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느끼는 점을 ‘한 때나마 그를 사랑했고 지지했지만 지금은 그의 행보를 안타까워한다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강군은 저와 처음 만났던 6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좌충우돌식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일으키는 내면의 원인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학교내 종교자유를 외쳤던 4년 전의 순수함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제 눈에는 그가 여전히 그 때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기에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가 복싱도 했을 때도, 택시 기사 일을 했을 때도, 심지어 호스트바의 종업원으로 일했을 때도 겉으로 드러난 그의 행동 이면에 그 다변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자는 늘 하나임이 느껴졌습니다.

강군은 자신의 내면에서 ‘왜?’라는 물음이 뚫고 나오면 외면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그 물음을 붙잡고 씨름합니다. 머리나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질문에 그는 온 몸으로 답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이 들지 않는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이해)와 가슴(느낌이나 감동)이 움직인다고 해도 발(행동)까지 동시에 함께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발이 머리나 가슴의 움직임을 따른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시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강군은 시차가 거의 없이 동시에 움직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때도 많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겠습니다. 저는 둘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어떤 실마리가 잡히면 그는 즉시 실험에 나섭니다. 복싱을 한 것, 택시 기사를 한 것, 호스트 바, 이 모든 것이 자기 길을 찾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저는 강군의 이런 실험 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또래 젊은이들이 책을 통한 간접공부만이 아니라 이렇게 발로 뛰는 직접공부도 열심히 하면 참 좋겠습니다.)

혹자는 호스트 바 일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덕 또는 윤리라는 말을 책임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그가 호스트 바에서 일한 경력과 시위 때 옷을 모두 벗었다는 점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에게는 잠시 윤리적인 기준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시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일, 또는 어느 누군가에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가 좌충우돌하며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의 두 축 가운데 또 하나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고3 때 학교내 종교자유 문제를 제기하여 거대한 조직과 싸웠습니다. 그냥 개인이 아니라 학생회장이었기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학우들의 불평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했고, 결국 또래 친구들과 함께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얼마 전 국군의 날 퍼포먼스도 저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해야만 했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만,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허공에 대고 외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강의석이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 조직도 힘도 없는 개인이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맞서 어떤 의미있는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언론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필수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가 먼저 언론을 찾았던 때는 오직 사회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광고 사건과 이번 국군의 날 퍼포먼스와 관계된 일에 한해서였습니다. 그 외에는 언론이 먼저 그를 찾아나섰기에 기사화되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그의 인생 실험이 갑자기 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강군이 선택한 나체시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고 낯설지만, 나체시위는 거대하고 견고한 조직과 맞서 싸울 때 힘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시위방법입니다. 그 의미는 모든 껍질을 벗고 투명하게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이 의미를 느끼는 그 일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군대 문제에 대해 강군이 보수진영 뿐 아니라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징병제 폐지가 아니라 군대 자체의 폐지를 주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주장으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요? 오히려 당장은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새로운 담론을 트고 막혔던 문제를 한꺼번에 뚫는 통쾌한 몽상가들에 의해 역사는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분들, 특히 그리스도교에 몸담고 있는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강군이 주장한 군대 폐지 문제는 성서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나라, 즉 완전한 평화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칼과 창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풀을 뜯는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의 꿈과 닿아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화운동을 하는 기독교 진보진영이 제시해야 할 주제를 강군이 제시했다고 생각되어 저는 한없이 부끄러운데, 기독교 진보진영은 별 생각도 느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평화의 세계를 꿈꾼다는 범진보진영의 인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며 한반도의 실정에 비추어 위험천만한 철부지 짓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중간 단계의 ‘과정과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궁극의 목적을 바라보며 돌진하는 이 무모한(?) 젊은이의 내적 동기를 보고, 그가 미숙하여 미처 헤아리지 못한 ‘과정과 목표’를 대신 메꾸어 줄 수는 없었습니까? 저는 강군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궁극점을 향해 돌진하는 이런 젊은이들이 각 나라에 열 명씩만 나와 서로 연대해도 세계평화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20년 전인 1989년, 한 미친(?) 사람을 보고 흥분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느닷없이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끌어안은, 철들지 않는 타입의 사람 문익환입니다. 당시 그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보수진영은 신이 나서 무차별 공습을 감행했지요. 그러나 그의 철없는 행동이 역사의 물줄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 때 흥분하던 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습니다.

강의석은 아직 23살의 젊은이입니다. 충동적일 수도 있고 미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흐르는 순수와 열정, 그리고 모든 이웃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꿈을 보지 못한 채, 단지 전통적인 시각과 전제에 의해 그의 행동과 주장을 재단한다면, 그는 그저 영웅 심리에 사로잡힌 몽상가요 사회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젊은이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강군은 지금 망설이고 있는 듯합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양심의 명령만 따르던 이 젊은이가 지쳐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의 몸부림은 곧 시들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벽은 너무나 높고 그를 마음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적기에 그는 외로울 것이고, 그의 시도는 탄력을 받지 못한 채 추락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혼자 꾸는 꿈은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강군이 한 말입니다. 어쩌면 그의 날개를 꺾고 꿈을 짓밟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를 건방지고 무모한 아이로 보았던 꽉 막힌 종교인들이 아니라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으나 더 이상은 그의 행보를 버거워하는 분들, 그러니까 새 세계를 이루어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 싶다는 진보 의식을 가진 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8/11/23 [19:4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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