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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과 지만원은 닮은꼴 스트라이커
[하재근 칼럼] 돌출적이고 자극적 행동으로 자기진영에 피해, 더 성숙해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8/11/20 [10:32]
강의석과 지만원은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다. 투톱도 아니고 혼자서 행동하는 원톱이다. 그런데 그들은 상대 진영이 아닌 자기 진영의 골에 슛을 한다. 화려하면서도 괴이한 ‘독고다이’형 자해 골게터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보수진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만원에 대해 신경 끄자고 한다. 그의 괴상한 주장을 받아줄 수록 오히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인터넷에 출몰하는 보수측 네티즌들은 지만원의 화려한 개인기에 신바람이 났다. 그를 옹호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로 입장이 전도됐다. 보수진영에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지만원에게 공이 갈 수록 좋은 일이다. 반대로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지만원의 존재감이 축소되고, 그가 희화화될수록 좋은 일이다.

지만원이 펼치는 주장은 ‘섹시’하고 자극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황당한 헛소리다. 문근영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이 좌파의 음모라는 말에 누가 동의하겠나?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대표논객이라고 포지셔닝 되는 것은 보수진영의 정치적 자해극이다.

보수진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만원이 단지 비정상적인 사람일 뿐, 보수우파의 대표논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거꾸로 한국의 보수우파가 그만큼 합리적인 세력이라고 홍보해주는 것과 같다.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무조건 지만원을 옹호한다. 이것은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한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있는지 스스로 폭로하는 것과 같다.

보수진영 반대파 입장에선, 지만원이 대대적으로 부각 돼서 그가 한국 보수우파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국민들 머리 속에 각인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롭다. 그가 앞으로 ‘섹시’한 ‘돌출’ 행동을 할 때마다 국민들의 보수우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

보수진영 입장에선 지만원과 선을 긋고, 오히려 지만원을 공격함으로서 국민들 머리 속에 ‘지만원은 보수우파의 대표 논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롭다. 그것이 그가 앞으로 펼칠 자살골로부터 보수진영을 보호하는 길이다.

지만원의 열정적인 단독 드리블과 화려한 강슛이 자살골인 것처럼, 강의석의 화려한 개인플레이도 자살골이다.

강의석의 ‘섹시’한 ‘돌출’ 행동은 지만원의 단독 플레이 이상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 머리 속에는 강의석이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각인된다.

지만원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 자기 세력을 코미디 집단으로 만드는 것처럼, 강의석도 상식과 온도차가 있는 이슈를 화려하게 부각시킴으로서 진보진영을 경박하고 무책임한 집단으로 만든다.

한국인의 모든 고통은 양극화와 경제적 박탈감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민생의 고통들이다. 대표적으로 교육, 고용, 노동조건, 육아, 주거 등의 문제들이다. 심지어 요즘엔 먹는 문제까지 대두된다. 결식아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진보진영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민생사안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헌신, 그리고 책임 있는 정책 대안이다. 강의석은 이런 것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슈들을 너무나 화려하게 내세워 국민들로 하여금 진보진영에 실망하도록 이끈다.

지만원을 옹호하는데 안간힘을 쓰는 보수파 네티즌들에겐 사실 강의석을 부각시키는 게 훨씬 이익이다. 강의석이 부각될수록 그가 장차 벌일 이벤트로부터 진보진영이 당하는 피해의 수위가 커진다.

지만원의 화려한 플레이는 보수진영의 세심한 정책가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며 만든 정책패키지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복잡하고 미묘한 정책들에선 국민의 판단도 애매해진다. 그러나 지만원의 극단적인 경기운영은 관전하는 국민들에게 즉각적인 판단을 안겨준다. ‘저건 헛소리다!’

강의석도 그렇다. 진보진영에도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정책연구자들이 있다. 또 세심하게 민생경제를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연구보고서는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돼도 국민에게 읽히지 않는다. 섹시하지 않으니까. 강의석의 화려한 플레이가 국민들 머리 속에 압도적인 이미지로 남으면, 진보진영에서 불면을 밤을 보냈던 연구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지난 강의석의 알몸 이벤트 때 비판매체가 이를 거대하게 부각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의석을 공격하는 건 아니다. 강의석이 주장하는 가치는 민주공화국에서 용인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그가 과도한 공격을 받을 때 그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행보가 진보진영에 현실정치적 피해를 입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만원도 명백한 피해를 자기 진영에 입히고 있다. 그런데 지만원을 공격적으로 옹호하는 보수파 네티즌들에겐 이런 통찰력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쓴 것은 그들과 지만원이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집단 자살골이다.

국민이 대번에 헛소리라고 느낄 만한 주장을 가지고 자기들 집단의 정체성을 삼는 그 정치적 무능이 안타깝다. 보수우파는 그래도 한국 사회의 주류인데, 조금은 더 세련된 판단력을 보여줄 순 없을까?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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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1/20 [10: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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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벌턴 2008/11/21 [13:57] 수정 | 삭제
  • 하재근님! 지만원을 강의석에 비교하다니 !! 아무리 진보와 수구의 현실 세계에서의 역할이라는 틀로 묶는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닙니다. 강의석은 우리가 나아갈 미래를 제시하고 (조금 앞서 있고) 지만원은 과거로 유아적 퇴행을 보이는데...
  • 이정 박헌영 2008/11/21 [10:00] 수정 | 삭제
  • 가뜩이나 그 퍼포먼스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모양인데.. 그사건이나 끝나고 강의석을 비판할 것이지. 지가 까는건 내심 이해하나 강의석 비판은 좀서툴렀다.
    어렵고 힘든 처지의 사람에게는 돌을 던지는건 한시적이지만 자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