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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변호사, 왜 반김정일 투쟁에 나섰나
부림사건의 서석구변호사, 운동권에 대한 편견이 반공투사?
 
서태영

"부림사건'은 내게 있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독재와 고문에 대해서만 분개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부림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학생들은 나에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착취와 빈부 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읽다 붙잡혀 온 그 책들을 읽길 권했다. 바쁜데다 경황이 없어 책이 잘 읽히질 않았다. 나 또한 짧은 식견으로 토론을 하며 오히려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땐 잘 이해도 못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에 관해서도 차츰 눈을뜨게 되었다. 훗날 그들이 석방되어 나올 때쯤에는 나도 꽤 많은 책을 읽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성실함이 나를 운동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그때 만난 사람들 중에 이호철이란 젊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동일한 사건으로 좀 뒤에 체포됐는데 부산지법 서석구 판사의 소신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서석구 판사는 진주로 좌천된 후 사표를 냈고 지금은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호철 그 친구도 검찰의 항고로 끝내 유죄 판결을 받았다. " <노무현, 「
돈 잘 버는 변호사와 부림 사건 」,『 여보, 나좀 도와줘』>

부림사건은 부산지역 학생 재야운동권 인사 20여명이 독서클럽을 결성해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된 시국사건이다. 그 부림사건은 사람팔자를 여럿 바꿔놓았다. 서석구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를 맡은 부림사건 판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림사건 변호사를 맡은 일을 인생을 바꾼 사건이라고 했다. "부림사건을 맡고부터 나는 하루하루 양심과 욕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하나하나 나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정이나 살롱에 발을 끊고 그렇게 좋아하던 요트 타기도 그만두었다.”(노무현,「내가 살아온 길」88년)

노대통령은 81년 부산 민주화 학생운동 사건이었던 '부림사건' 변론을 맡아 고문당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운동권' 변호사로 변신했다. 노변호사는 지금 대통령이 되어 있다. 서석구 판사는 부림사건 때문에 변호사로 팔자를 바꿨다.

81년 당시 주임검사는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이었다. 99년 전주지검장으로 재직하다, 대전법조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사표를 제출했는데, 울산남구에 출마해팔자 사납게도 국회의원이 되었다.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주장이 제기되었다. 최병국 의원은 총선연대측에 "전반적인 수사가 대공수사대에서 진행해 송치되어 왔고, 관대하게 처분했으며 지금도 당시의 결정에 대해 소신있게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공안검사 출신이면 이 정도 사건 안 다룬 검사가 누가 있겠느냐"소명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도되어야 할 학살자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     ©서태영
다들 잘 나가는데 서석구 변호사만은 뒷걸음질이다. 부림사건의 피고도 청와대 비서관이 되어 있는데, 다년간 운동권변호사 생활을 해온 그는 운동권에 실망해 오랜 소신을 바꾸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운동권이 그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는 말일까? 그는 더 나은 운동권이 되지 못하고 운동권을 비판하는 안티운동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살다보면 누구나 수 많은 변화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렇다. 그의 변신은 무죄다. 그렇지만 그 깨우침 끝에 나온 일련의 행동만은 유감이라고 토를 달아야 겠다.

의약분업 논란으로 세상이 진통하던 2000년 8월에 그는 대구변협 홈페이지에 "준비가 덜 된 저수가 의약분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실었다. 장문의 글이라 파일로 첨부했다. 찬사 못지 않은 비판이 뒤따랐다. 의료계의 저수가를 문제삼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법조계의 고수임료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도 변론능력이란 말인가. 김진국 대구적십자병원 신경정신과장(현)은 대구사회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분권과 혁신 2001년 1월호에 기고한「탈중앙의 지역사회, 지역의료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지역 의사들의 홍보용 문건에 가장 많이 인용된 글"이라고 평가하면서, "서 변호사는 의료의 모든 문제가 저수가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수가만 현실화되면 의료개혁은 저절로 이루어 질 것 같은데 저수가로 고생(?)하는 의료계와는 달리 서민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고수임료를 받고 있는 법조계의 비리는 왜 근절되지 않는지 이에 대한 해답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우리 나이로 올해 환갑에 든 그는 2000년 김대중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대구지역 변호사 시국선언을 주도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2001년 7월 23일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는 강도를 높여 대통령 탄핵까지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에 열성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지만, 김대중 정권의 인치와 안보유린이나, 북한정권의 인권탄압에 침묵하고 국가보안법과 사형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도 크게 실망했다.......과거에 내가 활동했던 단체들 대부분이 김대중 정권의 인치, 개혁실패, 부정부패, 안보위협에 침묵했다. 혹시 비판하더라도 입놀림-립 서비스-에 그치거나 공범자가 된 비참한 현실에 나는 실망한다. 요즘 내가 시민운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거의 외면한 것도 그 때문이다."<「고백」>

보통사람들은 갑자기 소신을 바꾸면 "저 사람 왜 이러지!"하는 반응을 보인다. 서 변호사는 2002년 월간조선 9월호에 문제의식을 담은 "한 운동권 변호사의 고백(이하 고백)" 수기를 기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운동가에서 우파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왜 조선일보사의 안보상업주의를 적극 이용하지 못했을까? "어느 주사파 변호사의 고백수기"라는 제목을 뽑았더라면 꼴보수계의 법륜공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왕 버린 몸이라면 확실하게 망가뜨렸어야 하는데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과연 그는 "김대중 김정일 세력을 비판하는 운동권으로 거듭 태어났는가?"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걸쳐 인권운동을 하였던 나는, 급진적인 이념서적이 범람하던 1980년대에 과격한 사회운동이나 이념서적을 많이 읽었던 탓에 편협한 이상론이나 비현실적인 혁명이론에 적지 않은 관심과 매력을 느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이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운동권을 비판한 나의 이 글은 보기에 따라서는 배신이나 변절로도 평가받겠지만,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적인 사상의 전환으로 평가받고 싶다. " <「고백」>

▲지나가던 외국선수가 유인물을 받아서 바지주머니에 구겨 넣고 있다.     ©서태영
"한때 조선일보 구독을 사절하였던 내가 다시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을 그만둔 것도 운동권 변론의 경험 때문"이란다. 글쎄올시다! 그는 "나의 적지 않은 판결들이 때로는 민주화와 인권개선에 이바지하였지만, 그보다는 운동권을 더욱 강화하여 안보와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책임을 통감한다"(「고백」)
면서, 운동권 변론해준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코페르스쿠스적 전환도 좋지만, 어쨌거나 수십년 인생 헛산 것이 되어버렸다. 태양중심의 천체운동을 제시한 '지동설'이 어떻게 분단체체 아래의 문제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운동권을 비판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할 수 있겠는가. 코페르니쿠스가 해방의 논리였다면 그의 궤변은 억압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판사 믿고 운동하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코페르니쿠스를 이런데 동원하면 코페르니스쿠스가 욕얻어먹는다는 사실을 변호사님은 아실까 모르겠다.

대구 YMCA이사, 대구 경실련,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의 소장, 이사장을 역임한 그는 시민운동가로서 깜냥이 모자랐던지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자리따라 소신이 왔다갔다 하면 우리는 가차없이 '하고잽이'라고 평가한다. 변호사의 인지능력이 타인의 영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삶의 주체성을 의심받게 된다.

"민주화운동에 열성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지만, 김대중 정권의 인치와 안보유린이나, 북한정권의 인권탄압에 침묵하고 국가보안법과 사형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도 크게 실망했다.....일부 운동권들로부터 두만강과 같은 북한 소설이나 북한을 미화한 책, 북한을 미화한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 북한 상품 등을 선물로 받는 것이 거듭되자 불안하였다......두만강이나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 같은 것을 또 다른 운동권으로부터도 중복하여 받은 것도 의아했다. 그들은 귀중한 선물로 여기고 주었겠지만 결국 나마저 그들과 같은 사고의 틀로 의식화하려는 그들의 거듭된 선물이 감사하고 고맙기보다는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북한을 미화하는 그들의 선물에 실망한 것도 운동권 변론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백」>

그의 증언이 썩 미덥지 못한 것은 분단체제 상황 아래, 할 말 있어도 제 할말을 다못하는 주사파를 비겁하게 물고늘어진다는 점이다. 스스로 일부운동권이라고 표현해놓고 마치 운동권 전체가 주사파인 것처럼 빨간색칠을 하면 한줌도 안되는 그의 도덕성만 뽀롱난다. 그의 비판이 터무니없는 까닭은 김대중정권을 비판하는 시민운동에 눈과 귀를 막고 살기 때문이고, 불필요하게 사실을 뻥튀기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오도한다는 점이다.

인생 늘그막에 멋진 중세를 구하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 돈키호테처럼, 운동권 득시글거리는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우파운동가로 궐기한 그가, 27일 오후 5시 40분경 동변동 유니버시아드 선수촌밖 길거리에 나타났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손에 익지 않은 자세로 찌라시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주차장 경비업무를 맡고 있던 민모 경장이 다가가 내용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문으로 작성된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는 선전물이라는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김정일독재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북한국민을 해방시켜야 할 때>라는 A4용지 한 장 분량(앞뒤면)의 영문찌라시였다.

▲국익과 적법을 놓고 대치한 경감과 변호사. 젊은 경감은 새로워진 대한민국의 표상이었다.     ©서태영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상황실장인 대구서부경찰서 소속 배기명 경감은 유대회의 성공을 위해 배포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는 좋은 말로 배포중지를 요청하는 배경감에게, 민주주의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운동권을 변론해준 것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북한 김정일 비판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이 내용이 무슨 법률을 위반했는지 근거를 대라. 나도 외부적으로 자극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하는 일이다. 민주경찰이라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서 단속하라. 이것은 국민의 언론의 자유"라고 따졌다. 북한선수단이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세번째 사과를 해야 할 일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배경감은 변화하는 경찰의 표상이었다. 그는 비판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는 국민의 주문사항을 고집스럽게 전달했다. 배경감의 만류로 그의 찌라시 배포행위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젊은 경감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운동권을 비판하는 우파귀족운동권으로 변질된 서 변호사의 위치가 위험하다. 김정일 비판도 좋지만 김정일체제 비판 영문찌라시를 들고 유대회 선수촌밖 거리로 나선 그는 깽판놓을 일만 골라서 하는 영락없는 꼴보수의 자태를 하고 있었다. 서 변호사는 곰곰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운동권에 실망해 운동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치고 성공하는 예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변절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서 변호사가 운동권에서 발을 뺀다고 시민운동은 망하지 않는다. 운동권에 실망했으면 운동을 접고 사는 것도 노후를 평안하게 보내는 한 방편이다. 당분간 휴식하는 것도 선택해 봄직하다. 시민운동으로부터 일탈하면 보기에 흉측해질 따름이다.

보라. 김대중 김정일 비판에 앞장선 안보상업주의자들과 같은 길을 걸으니, "이준호군과 폴러첸 씨를 따라서. 노무현과 싸우는 김문수 의원을 따라서. 목숨을 걸고 친북좌익들과 싸우는 조갑제씨, 김동길선생, 지만원 박사를 따라서. 우익 앞장에 서서 싸우는 서정갑 대령"(월간조선 토론방)과 한통속이 되어 있지 않은가. 일부 누락된 대한민국 꼴통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기사가 나가면 젊은 우익 신혜식씨가 운영하는 독립신문에서 연락이 갈지 모르겠다. 축소지향의 꼴보수는 남북한화해시대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깜냥이 못된다. 정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고 싶은 사람들은 '장나라' 사람들을 본받으라.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동포들을 먹여 살리지 않는가. 능력 되는 대로 지원하라. 군비증강 자금으로 전환되지 않을 방도는 충분하다.

운동권에 대한 증오에서 출발하는 변심은 절대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못한다. 그가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성에 안차는 운동권을 위한 보편지향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 신자된 도리로 안다. 인생육십이면 남은 생이 길지 않다. 노년의 변심은 반성할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경계하라고 했다. 서 변호사는 지금 노망보다 지독한 편견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노여움을 풀고 다시 시민운동편으로 낮은 자의 자리로 귀순하기 바란다. 미안하게도 탕자생활을 하는 냉담신자는 기도하는 법을 까먹고 산다. 특별히 서석구 빈첸시오를 위한 기도가 뒤따르는 평화의 주간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사입력: 2003/09/02 [10:3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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