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5262, 676, 5266’에 나타난 숫자의 의미들
[비나리의 초록공명] 전두환 이후 폐교는 5262, 3년간 없앨 학교는 676
 
우석훈   기사입력  2006/08/21 [11:26]
수학의 한 분야로 정수론이라는 것이 있다. n이 3보다 클 때 xn+yn=zn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페르마의 정리가 정수론에 등장하는 간판타자다. 1637년 프랑스 수학자인 페르마가 제시한 이 문제는, 책에서 지면이 부족해 증명은 생략한다고 적혀 있어 오랫동안 수학계 최고의 미스테리였다. 요즘 네트워크 이론을 설명할 때 쓰는 그래프 이론을 만들어낸 천재 중의 천재인 오일러도 페르마의 정리를 제대로 풀지는 못했고, 결국 1994년이나 되어서야 프린스턴 대학의 앤드류 와일스 교수가 이 난공불락의 정리를 증명하게 되었다. 해석학과 리만기아학 그리고 위상수학을 거쳐 그래프 이론까지 수학이론이 전개되고 있지만, 정수가 가지고 있는 수의 아름다움에 관한 정수론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5262, 676, 5266이라는 세 가지 정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하면 와일스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다. 사실상 의미가 없어보이는 세 가지 숫자는 그러나 정확히 하나의 명제를 구성하는 숫자들이다. 이럴 때에는 컴퓨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독자여러분도 인터넷 브라우저 아무 거나 올려놓고, 국산 검색 사이트를 켜 보고, 검색창에 “5262 676 5266”이라고 쳐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익숙한 명제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농어촌 학교를 살려주세요”라는 단발마적인 비명을 담고 있는 신문기사들이 여러분들의 컴퓨터 화면에 떠오를 것이다. 정수론의 질문 같아 보이는 이 세 가지 숫자가 담고 있는 의미는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기는 시골학교”라는 구조요청의 메시지다.
 
5262는 1982년 즉 전두환 대통령이 과외를 금지시킨 상태에서 국민들이 88올림픽의 꿈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학교의 숫자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물경 5262개의 학교를 없애고 있었던 셈이다. 해도해도 너무한 숫자들인데, 25년 동안 이 땅의 경제학자와 교육학자 그리고 행정학자들은 5262라는 숫자를 통해 학교를 없애야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다는 이론을 혁파하고 또 직접 실천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숫자를 보고도 머리가 띵하지 않다면 당신은 경제학자, 교육학자, 행정학자 혹은 공무원일 것이다. 더 다양하게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해도 부족할 마당에 열심히 학교 없애고 있던 일이 대한민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렇게 없어진 폐교에 대해서 폐교관광이니 폐교활용이니 하면서 좋은 건물 하나 싸게 구했다고 좋아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걸 썩 흡족해했던 사람들은 한 번쯤 하늘을 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다.
 
676이라는 숫자는 지나간 25년이 아니라 앞으로 3년간 교육부가 새로 없애겠다고 한 학교의 숫자다. 숫자로만 계산해보면, 우리나라는 매년 210개의 학교를 없애고 있던 셈인데, 앞으로 3년간 이보다 조금 ‘세게’ 매년 240개의 학교를 없애겠다고 하는 셈이다. 정말 희한한 나라다. 광복 이후 박정희 시절까지 새로 출발한 국가를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건국 1세대들이 땀 흘리고 희생하면서 만들어낸 지역의 중추 같은 이 학교들을 그 후 매년 210개씩 없애고 있던 나라인데, 그나마 이제는 좀 먹고 살만한 국민소득 1만5000달러 국가가 되니까 이제 학교를 더 ‘세게’ 없애야겠다고 하는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선생님 5266명을 줄일 수 있고, 그들의 인건비 3000억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계산이다. 원래 잘살게 되면 특수한 학교들을 다양하게 더 많이 만들어주고, 지체부자유아동을 비롯한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학생 1인당 여러 명의 교사가 필요하게 되는 단계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 흐름인데, 우리나라는 수출경제의 공격경영하는 마음으로 목숨걸고 학교 없애는 나라 같아 보인다. 이게 “교육은 경쟁력”이다는 구호로 교육부가 겨우 준비한 미래를 향한 큰 걸음인가?
 
아니, 정신을 들어 이 숫자들을 보라. 이걸 보면서도 뿌듯해하는 어른들이 도대체 제 정신 박힌 어른들인가? 한 해에 교사 인건비 5000억원 줄인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커질 것 같은가? 학교 하나 없어질 때마다 깨어지는 지방경제와 지역공동체 그리고 경제의 다양성들의 손실액이 간단하게 손으로 꼽아보아도 수조원은 될텐데, 고작 5000억원 줄이겠다고 앞으로 3년간 매년 240개의 학교를 문닫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할 요량이면, 차라리 교육부를 없애고, 교육행정은 전부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 줄어든 교육부 공무원 월급 가지고 농산어촌의 귀농자들을 위한 학교를 새로 지어주고 특수지역 부임교사들에게 월급 2배로 올려주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진다. 확실하게 좋아진다. 학교 없애는 일에 목숨 거는 교육부, 당신들이 지금 3000억원 줄인다고 박수치며 좋아하고 있을 때, 많은 국민들은 드디어 교육부를 없앨 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교의 적, 그리고 공공의 적 교육부를 해체하고, 교육부 장관의 월급과 판공비 그리고 수행원들의 업무추진비로 일단 내년에 폐교될 운명인 240개의 학교에 2억원씩 지원하자. 교육부만 없애면 우리나라에 교육행정에 돈 모자란다는 말 안 나올 것이다. 아니 돈이 없어 학교문을 닫아야 한다면, 공무원수를 줄이면 될 것 아닌가!
 
5262, 676, 5266의 정수들은 “당장 교육부를 해체하라”는 숨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생님 대신 거들먹거리는 중앙의 교육부 공무원을 줄이고, 중앙 대신에 시군구의 선출된 기초지자체장에게 학교관리 업무를 이관하여 분산형 시스템으로 교육행정을 재구성하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시도교육청과 기초단체에 업무이관하고 교육부를 문 닫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린다.

어차피 한글학회에서 공공연히 “영어학원”이라고 비난받고 있던 교육부가 그나마 자기소관 업무인 학교마저 없애는 것에 열심히 매진하고 있다면, 이런 교육부는 우리나라에 필요 없다. 죽어가는 농촌과 어촌 그리고 산촌을 흔적이라도 남기고 ‘국토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건교부 해체가 아니라 교육부를 해체하는 일이다.
 
* 본문은 [한겨레] ‘여기는 명랑국토부’ 8월 18일자 기고문입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8/21 [11:2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