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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발언은 뉴라이트 등장 신호탄?
일제시대 수탈론은 ‘신화’라고 비판, 뉴라이트 등 보수우익에 적극 가담
 
이창은   기사입력  2005/04/26 [19:33]
지난해 9월 2일 'MBC 100분토론'에서 일제시대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다는 요지의 망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킨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이번에는 우리 국사 교과서가 일제의 수탈상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잇따라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사학자이자 국내 대표적인 식민지근대화론자로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인 “국사교과서의 일제시대 서술이'수탈론'에 입각한 일종의'신화'”라고 비판한 것은 사실 이 교수의 지론으로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한일간 독도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 망언 이후 가장 최근의 조영남씨 ‘친일’발언 등 국내에 반일정서가 충만한 가운데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에 대해 정치적 배후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문제의 글이 신흥 우익세력의 본산인 웹진'뉴라이트'(www.new-right.com)에 23일 기고 형식으로 올라온 것에 대해 이영훈 교수와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창자인 안병직 교수 등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전경련 부설 연구소 등과 공동 심포지엄을 열고 이른바 ‘뉴라이트’ 등과 공동행보를 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최근들어 한ㆍ미ㆍ일 우호 관계 강화를 자주 언급하고, 시장경쟁원리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학문적 연구의 틀을 벗어나 현실정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고, 보수우익의 진용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뉴라이트>에 기고한 '북한 외교관과 남한의 교과서가 빠져 있는 허수의 덫'에서 그간 교과서 등에서 통용되온 위안부와 강제 연행자의 숫자가 정확한 검증없이 과장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글에서 최근 북한 유엔대표부 김영호 서기관이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의 수가 20만, 강제 연행된 인구가 840만이라고 말한 사실과 남한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위안부의 수를 '수십만'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을 650만으로 기술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이 숫자들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강제 연행자의 숫자에 대해 "194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20~40세의 조선인 남자의 총수는 321만명이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들을 모조리 다 끌고 가도 반을 채울 수 없는 숫자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또 국제회의에서 거론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16~21세의 조선 여자는 125만명"이라며 그 중 '수십만'이 위안부로 동원됐다는 교과서 기술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더 나아가 이 숫자들이 검증없이 제기된 뒤,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며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0만명'이라는 숫자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69년 국내 모 일간지로"정신대로 동원된 조선과 일본 여성은 전부 대략 20만으로서 그 가운데 조선 여성은 5만~7만명으로 추산된다"고 썼다.
 
그런데 이것이 송건호의 '일제지배하의 한국현대사'(1984)에서 "일제가 정신대의 명목으로 연행한 조선인 여성은 어느 기록에 의하면 20만이고 그 가운데 5~7만이 위안부로 충원됐다"로 바뀌었다는 것. 즉 일본과 조선의 여성을 합한 정신대의 숫자가'조선 여성'으로, 또 정신대로 동원된 조선 여성이'위안부'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정신대'가 후일 다시'위안부'로 탈바꿈해 결국'위안부가 20만명'이라는 설로 확대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총괄적으로 이 교수는 “작년에 쓴 한 논문에서 한국의 국사교과서가 지난 40년간 일제가 토지의 40%를 수탈하였다고 가르쳐 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면서 “지난 40년간 국사교과서는 줄기차게 그 가공의 숫자를 인용해왔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지난 20년간에는 '위안부 20만'과 '강제연행 600만'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가 슬슬 만들어져 온 셈이다”며 국사 교과서의 일제시대의 서술을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한국과 일본 간의 과거사에는 청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이역만리 먼 곳에서 떠도는 징병ㆍ징용자들의 유해를 수습하여 국내로 봉환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인데 “(국사 교과서 등이) 자꾸 허수를 지어내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진정 올바른 방식의 과거사 청산일까. 역사가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며 현재의 과거사 청산방식과 한일문제에 대해 부정적 시작을 드러냈다.
 
이같은 이 교수의 ‘식민지근대화론’과 일제시대 경제성장론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사학계의 논란속에서 오히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방식인 실증경제사학 방식으로 일제시대의 성장이 허구였음을 밝힌 허수열 충남대 교수 등에 의해 밝혀졌다.
 
[참고기사] 안수찬, “식민조선 근대화? 낱낱이 캐묻다!”(한겨레신문, 2005. 3. 24)

그러나 이보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학문적 영역의 아닌 현실 정치의 장에서 발언한 것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한ㆍ미ㆍ일 우호 관계 강화를 자주 언급하고, 시장경쟁원리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선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복지ㆍ분배ㆍ환경ㆍ평화ㆍ연대 등을 탐색하기 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도”라는 정연태 카톨릭대 교수의 지적은 이들의 지향점이 단순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열망 아닌 신자유주의로의 귀착을 위해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우파 ‘386’이 주축이 된 뉴라이트 세력과 식민지근대화론자(경제성장사학)의 결합은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그 어느때 보다 높아진 한국 사회에 미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활동반경을 넓힐 것이며, 이를 막을려는 민족주의적 계열의 지식인 사회와의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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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26 [19: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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