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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실화 아닌 상상력일 뿐
‘에이즈 감염’으로 언론에 난도질 당한 HIV 양성인 K씨의 비극 못다뤄
 
이훈희   기사입력  2005/09/08 [21:13]
오는 9월 23일 전국의 개봉관에 '너는 내 운명'이란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다. 전작인 '죽어도 좋아'로 명성(?)을 날린 박진표 감독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화제의 이 영화는 2002년 여수 에이즈 사건으로 유명한 K씨와 그녀의 남편인 B씨와의 사랑을 다루었다.
 
이윽고, 지난 9월 6일. 나는 에이즈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너는 내 운명' 시사회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에 촛점을 맞춘 사람들은 "사랑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께요. 오빠 나도 사랑해요." 등 가슴이 저며지는 대사가 오고 가는 동안 간간히 웃음, 눈물을 교차했다.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의 회원들, 함께 간 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 활동가들의 눈시울도 이미 붉어져 있었고.
 
'너는 내 운명'은 뼈마디에 고인 골수까지 눈물로 빼버리는 최류성 영화다.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헤어지세요."라고 말할 정도. 또 인터넷으로 '너는 내 운명'의 예고편을 본 김민영 씨는 "어떻게 아직도 눈물이나요;; 이거 진짜 영화보면 통곡할것 같은데.. 실화라니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가벼운 미소조차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리지 못했다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2002년 나는 여수 에이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HIV 양성인인 K씨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박진표 감독을 만났고, 그에게 남편 B씨를 소개했었다. 마녀사냥에 시달리는 K씨의 인권 방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봐.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실화로 알려진 '너는 내 운명'의 전후 맥락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눈물조차 말라버렸다면 거짓말일까.

'너는 내 운명'은 실화일까?
 
박진표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에이즈 영화가 아니다"면서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고 , 보고 싶고 , 믿고 싶어하는 운명적이고 영원한 사랑 , 그것이 <너는 내 운명 >의 사랑이다 . 우리가 그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은 만큼 관객들도 이들의 사랑을 축복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이 가리킨 '이들의 사랑'은 실화 속 사랑일까, 아니면 영화 속 사랑일까? 진실을 모르는 관객들은 실화 속 사랑으로 인식할 듯 싶다. 그래서 200% 감동받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영화 속 사랑에 불과하다. 그 역시 순도 100% 영화 속 사랑이다.
 
실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실화는 이렇게 간단하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 즉,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은 실화가 아닌 셈이다. '너는 내 운명'에서 드러난 은하와 석중의 관계는 가슴이 찢어지게 아름답지만, 현실세계에서 그 사랑의 관계는 혹독한 편견으로 처참하게 재단되었고,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결국 비극적인 이별로 끝을 맺었다. 남편 B씨는 K씨가 출옥 후 함께 살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문제는 K씨가 HIV 양성인이란 사실을 아는 마을 주민들. 두 사람은 또다시 말못할 절망 속에 빠져야했다. 이웃의 눈을 피해 저 멀리 이사를 가야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방을 옮기려고 해도 최소한 600만원 정도 필요했다.
 
하지만 가난하디 가난한 농부인 B씨에게 이 천문학적(?) 비용이 있을리 만무. K씨 어머니의 권유로 두 사람은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고, K씨는 지금 이 순간도 방에 갇혀 가족의 감시(?) 속에서 차라리 죽는 게 더 마음이 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수 에이즈 사건의 진실
 
2002년 "섹스에 미친 년"으로 신문보도된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공포, 두려움 그리고 마녀사냥을 불러 왔다. K씨가 살았던 여수, 구포, 부산 등 경남 일대에서는 마치 쥐새끼를 찾는 양 HIV 검사가 빗발쳤다. 고등학교 전교생이 HIV 검사를 받는 등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수십만명이 HIV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는? 단 한 명의 HIV 양성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K씨에 의해 에이즈가 무서운 속도로 전염되었을 거라는 전문가와 언론사, 에이즈 예방협회와 정부 기관의 예언은 부도난 공수표가 되었고, 공수표가 나뒹구는 자리에는 "K씨를 화형시켜야 한다"는 헛소리가 왕왕거렸다.
 
이 와중 K씨 사건이 터지자 마자 대책위원회를 꾸려 K씨의 인권 보호 및 변호사 선임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던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의 헌신적인 주장은 가랑잎처럼 힘이 없었다.
 
우리는 재판부에 과학 논문 10편을 번역하여 제출했다. HIV는 분리되지 않았으며, HIV 검사는 레퍼런스가 없는 비과학적인 검사이며, 현행 에이즈예방법은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게 우리의 주장. 영화에서 석중은 절규한다. "나도 알아봤어요. 에이즈는 전염병이 아니래요." 맞다.
 
영화 속 석중, 즉 B씨는 우리 모임으로부터 에이즈에 대해 A부터 Z까지 자세히 설명받았다. 에이즈는 전염병이 아니다. 지난 2년간 하루 5명의 손님을 받은 K씨와 관계를 가진 그 어떤 남성도 HIV 양성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콘돔을 사용한 적이 없던 B씨 역시 HIV 음성이다. 그래서 당시 유일하게 객관적 시각을 유지했던 문화일보는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마녀사냥"
 
K씨와 B씨를 헤어지게 만든 언론
 
이 땅의 언론사와 기자들은 '특종' 이란 희한한 질병에 걸려 있다. 죽기 전에는 절대 나을 수 없으며, 자연 치유되지 않는 이 고질적인 질병의 뒷면에는 '비인간성'이 도사리고 있다.
 
여수 에이즈 사건이 발생하자 K씨와 B씨의 관계에 눈독을 들이던 기자들 중 특히 '여성중앙21'의 프리랜서 기자는 아주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경찰에게 B씨의 주소를 알아낸 뒤 집으로 찾아가 B씨를 인터뷰, B씨가 사는 마을 모습까지 선명히 찍어 기사화했다.
 
이 기사의 파장은 대단했다.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한 편이 만들어진 순간. 그러나 이 순간이야말로 B씨와 K씨의 이별이 시작된 끔찍한 순간이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당황했고, K씨는 더 이상 그 동네에서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힐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나는 수소문 끝에 문제의 기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교활한 남자 기자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30대의 여성이었던 기자.
 
나 : B씨의 집 주소와 연락처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기자 : 경찰한테 물어보았어요.
나 : HIV 양성인의 개인정보가 누설되면 징역 3년 이하의 죄를 묻게 된다는 거 알고 있었나요?
기자 : 몰랐어요. 하지만 경찰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주던데요.
나 : B씨가 사는 마을까지 공개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건 법률 위반 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양심을 묻는 겁니다.
기자 : 그건 기사예요. 기사를 어떻게 쓰는가는 기자의 자유고요.
나 : 고발하겠습니다.
기자 : 고발하세요.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고요.
 
그러나 고발되진 못했다. 그 이유는 감옥 안의 K씨가 사건이 더 이상 불거터지는 걸 원치 않기에 "제발, 조용히 있게 내버려두세요."라고 간곡히 말했기 때문. 억장이 무너졌고, 속이 타들어갔지만 K씨의 소원대로 그 기자는 고발되고, 구속되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K씨가 HIV 양성인이 된 이유
 
영화상에서 은하는 티켓을 끊고 매매춘을 하는 다방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HIV 양성을 받은 걸로 설정되는데. 하지만 K씨가 HIV 양성을 받은 때는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하던 시점이다. 임신은 자동 항체를 생성하고, 특히 두 번째 임신은 HIV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위, 위양성인데 놀랍게도 에이즈 과학자들은 이 중대한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임산부에게 강제적으로 HIV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자신이 잘못된 HIV 검사의 희생양이란 걸 모른 임산부는 HIV 양성 반응을 보인 뒤 낙태를 하는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K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는 건강하게 출산되었고, 검사 결과 HIV 음성인 아기는 해외로 입양되고 말았다. 
 
K씨가 성관계를 통해 HIV 양성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이 점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실시된 역학조사 결과  성관계를 통해 HIV가 전파된다는 가정은 철저하게 부정되었다. 단 한 명도 성관계와는 무관했다.
 
그런데 정부기관과 에이즈 협회 등은 이 중요한 과학적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운명'에서조차 성관계를 통해 HIV가 전파된다는 해괴한 가설을 차용하고 있다. 이 점에서 K씨의 명예회복에 작은 기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박 감독마저 K씨를 난도질한 셈이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 남편 B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선다. 그러나 도움을 주는 이는 한 명도 없고, 가는 곳마다 냉대를 당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좀 달랐다. 남편 B씨는 정신지체 3급 수준의 지능을 갖춘 전형적인 농촌 총각이다.
 
그는 에이즈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당연히 공포와 두려움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가 매매춘을 하던 중 HIV 양성이란 사실로 구속된 걸 인지했지만, HIV 양성인이 아닌 단지 집을 나갔다가 어느날 구속되어 자기 앞에 다시 나타난 처였을 뿐이었다.
 
변호사 선임을 위해 백방으로 뛴 쪽은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과 대책위였다. 민변을 찾아가 상황을 호소하고, 변호사비 200만원 모금 운동을 벌이고, 이도저도 안 되어 국선을 선임하여 재판에 유리하게끔 밤을 새워 번역하고, 정리하여 각종 자료를 만들어 낸 측도 인권모임인 건 당연.
 
영화에서 은하는 "난 이렇게 건강하다."면서 "HIV 재검사를 시켜달라"고 검사에게 조른다. 사실은 인권모임에서 재판부에 재검사를 요구한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의 의미
 
앞서 밝힌 바대로 인권모임은 변호사비 모금 운동에 실패했었다. 회원들 몇몇 이외에 아무도 우리의 주장,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선뜻 돈을 내려하지 않았다. 결국 몇 푼 모아진 돈은 턱 없이 모자랐기에, 나는 임의적으로 부산역 앞에서 노숙하던 장애인 가족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이들 가족은 비를 피해 삭월세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척 감사해하던 장애인 가족들. 나는 이 돈이 K씨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들은 K씨가 HIV 양성인 K씨인 줄 몰랐을 것이다.
 
이제와서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당시 200만원만 있었다면 재판 과정과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민변의 변호사는 K씨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고, 에이즈 예방법 자체를 건드릴 생각까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인권모임은 너무나 빈곤했고, K씨는 징역 8개월을 받고 말았다. 영화 속 설정처럼 2년 6개월이 아니다.
 
영화와 실제 사건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흥미를 더 돋구기 위한 가정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 박 감독은 K씨 재판 내내 단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만 키운 게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이 상상력은 관객의 눈물을 짜냈고, 대박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상상력이라고 평가한다면 너무 심한가?
 
결론적으로 '너는 내 운명'은 K씨의 사회적 무덤에 또 하나의 멜랑콜리한 십자가를 박고 말았다. 실화는 무슨 실화! 영화를 보건대, 박감독은 여수 에이즈 사건에 대해 내가  쓴 에세이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은하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매매춘을 하게 되었다는 검사의 말 등등.
 
실제 인물인 K씨는 인생이 하도 기구해서 허구한날 인신매매를 당했다. 첫번째 남편에게서 인신매매를, 카드빚에 쫒겨 또 인신매매를. 그런데 아는가. 그녀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를. 최근 집창촌에 장애인 여성이 성매매를 한다고 하여 문제시된 적이 있었는데, K씨가 바로 장애 여성이었다.
 
그녀의 지능은 정신지체 3급 수준이다. 그래서 K씨 역시 에이즈가 뭔지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 못했다. 그에 비하면, 은하로 나온 전도연은 너무 이쁘고 똑똑하며 영악하다. 전도연과 K씨는 절대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 영화가 대박나면 웃을 사람은 누구일까? 제작사인 봄과 감독인 박진표 또 배우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결코 실화는 아니지만, 박 감독이 못내 주장하는 '실화 속 이들'은 봄이 와도 웃지 못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헤어진 이들. 이 헤어진 이들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재포장한 믿지 못할 '너는 내 운명'. 박 감독에게 권유하건대, 만약 대박나면 번 돈 중 일부를 B씨와 K씨에게 전달해주길 기대해본다.
 
당뇨병에 시달리는 B씨와 K씨의 어머니. 돈이 없어 병원 진찰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K씨가 영화 속 전도연이 입은 예쁜 옷 정도는 한 번 입어보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 그녀는 고작해야 청바지에 몇 천원 짜리 셔츠 정도만 걸치고 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슬프다. 아주. 3년이 지난 지금도 신문, 방송, 영화 속 주인공인 되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K씨의 운명이. 이 가혹한 운명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여전히 지켜만봐야 하는 내 운명도 그렇고, 에이즈의 진실이 감춰진 채 오늘도 숨 죽인 채 살아가는 HIV 양성인의 운명이 그러하다. 

*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http://www.noaids.co.kr/)에 가시면 '너는 내 운명'의 K씨 사건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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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08 [21: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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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말 2006/03/10 [00:06] 수정 | 삭제
  • 방금영화를 티비로보고 실존인물이 궁금해서 인터넷검색을 해봤는데

    실화를 읽어보니 더기가막히고 영화에 감동받아 흘린 눈물이 더럽게

    느껴 지네요...영화보다 더슬픈 진짜 이야기네요...
  • m 2005/09/30 [14:48] 수정 | 삭제
  • 화내는게 이해 된다고 하신분이 계시네요. 어떻게 이해하실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런일을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을 겪지도 않은 사람이 이해할수 있을까요? 위선적인 말이라고 봅니다. "이해하니까..." 라는 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라고 봅니다. 집적보지도 않은 사람이.. 겪어보지도 않은사람이 그러는건 오히려 더 화를 부른다고 봅니다.
  • 바라 2005/09/28 [18:21] 수정 | 삭제
  • 1984년을 쓴 죠지 오웰의 소설이
    오늘날까지 회자화되는 건
    빅브라더가 현실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984년의 빅브라더와 작금의 빅브라더는 뭐가 다른가요?
    전자는 소설, 후자는 현실

    황망한 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 D 2005/09/28 [17:25] 수정 | 삭제
  • 성인이시라면 구분하시길.... 가끔씩 무슨 위원회다 어쩌다 하면서 괜실히 틱틱 되는 사람들 보면 개인적으론 너무 황망하게 보인다는....
  • 카르핀 2005/09/24 [02:27] 수정 | 삭제
  • 몰랐습니다. 실화라고 해도 어느정도 모티브만 따왔겠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실존 인물에게 상처가 되는 영화라고는 생각못했어요. 단지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고 슬퍼서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 이렇게 무지했었다니, 이렇게 무심했었다니 스스로의 모습이 더 슬프게 여겨지네요. 역시 현실과 영화속세상은 일치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나와 같은 무지한 사람들이 오늘도 내일도 또 눈물을 흘리겠죠, 단지 보이는 것만을 향해.
  • carnival 2005/09/23 [01:14] 수정 | 삭제
  • 사건에 연루된사람들은 가슴아프지만 실화에서 모티브를 딴것이고 실화가 아니므로 흥분하실 필요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어디 이영화만 문젭니까? 실화를 모티브로 하는것은 그만큼 현실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것이고 감독의 의도가 뭐든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되는데...인권도 일단 알려져야 차즌것 아닌가요. 누구도 모르는 얘기를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문제삼나요?
  • 음.. 2005/09/19 [17:53] 수정 | 삭제
  • 그 기자.. 참.. 다른 사람들 상처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기 성공만을 위해 사는 세상과 그렇게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가끔..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나는 왜 그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지가 않은 걸까.. 아마 이 분도 그런 생각 하실 것 같아요..
  • 철학도 2005/09/15 [17:48] 수정 | 삭제
  • 호미징거의 중세의 가을에란 책에 보면요.
    제 1장에서 중세의 특징으로 대중들의 양극단이 중세의 특징이라고 기술합니다.

    현재 한국만큼 양극단적인 사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모 아니면 도, 그게 한국 사회죠,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죠.

  • odyssey 2005/09/09 [17:19] 수정 | 삭제
  •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기사의 내용이 더 슬프네요...

    필자님의 마음속 슬픔에는 비교도 되지않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