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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드윈 2004/07/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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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비
    글을 읽고
    오랜가뭄끝의 해갈 기분을 갖습니다.
  • 새만금 2004/07/1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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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강의 잘 듣습니다
    토인비보다 한 수위이십니다.
    시골에 앉아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새 안목을 갖습니다.
    뵙고 싶네요
  • 윤목사 2004/07/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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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성해방을 잘 규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예를 들어 목사가 설교 시간에, 어제 나는 아내와 이런 저런 체위로 관계를 가졌는데, 이런 저런 점에서 참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 해방이지요. 성 담론을 양지로 끌어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목사가 어제 저녁에 남편이 있는 여집사와 호텔에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교인들이 참 좋게 받아 들인다면 성 관계에 관한 금기들을 깨 버렸다는 점에서 성 해방입니다. 성경이나 그밖에 일부 고전들은 성 담론에 관한 한 아주 자유롭습니다. 성 관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당연히 엄격하지요. 성 관계의 본질을 쾌락과 상대 이성의 숫자로 보고 그 방향으로 자유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병적입니다. 성 관계의 본질은 재생산이며, 재생산 활동이 주는 본능적 쾌감이 엄청난 쾌감의 내용입니다. 재생산이 빠진 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마치 거식증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절하게 조절하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먹듯이 성도 그래야 되겠지요. 적어도 그것이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도락가, 거식증 환자들의 증상을 억압된 식욕의 해방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무분별한 성은 역사적으로 사치할 능력이 되는 계급이나, 현대 부르조아의 질병이며, 독점욕과 지배욕의 표현이며, 프로이드와 목사님이 위에 쓰신 글은 그같은 질병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대중의 일반적인 건강 지침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 관악 2004/07/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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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도가 아닌 분별
    윤 목사님의 답글을 보면서
    나름대로
    저자의 의도를 분석해 보면
    성 개방의 호도가 아니라
    성개방으로 도리어 성은 집착성욕망에서
    게임성 오락으로 변한다는 말씀같네요
  • 쟝발잔 2004/08/0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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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의 전방위성
    히야이
    섹스와 가치가 그렇게 연결되 있는 줄이야..
    예전엔몰랐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