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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특강 2005/10/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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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민옵빠, 그래서 어쩌라구? 이게 진정한 역사라우...
    형제 일가친척, 장인 외척 들을 도륙한 조선 태종 이방원도 죽일 놈이라서 죽여야 하고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세조도 죽일 놈이라서 죽여야 하고 사화를 일으킨 광해군도 죽일 놈이라서 죽여야 하고 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을 만든 박정희도 죽일 놈이라서 죽여야 하고 .....

    근데 수민옵빠,

    그 사람들 모두 다 죽고 없어서 큰 일이네. 부관참시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쑤?

    수민옵빠, 역사가들은 위에 것만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ㅇ 조선 태종 이방원 ---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외척들의 발호를 아예 없애서 세종 대왕이 마음 놓고 성군정치를 하고 한글을 만들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조세제도를 완비해서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었다

    ㅇ 수양대군 세조 ---- 왕권을 강화시키고 진관체제를 완비하고 세금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백성들이 정말로 살기좋게 만들었다.

    ㅇ 광해군 --- 명나라-청나라 패권다툼 속에서 실리외교를 펼쳐서 백성들의 안위를 보존시켰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쇠잔한 명나라를 떠받들다가 병자호란을 당해서 백성들이 도륙당하고 사대부의 사모님 처자와 온갖 여자들이 능욕을 당했다. 인조 자신은 백성들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도망갔다가 결국에는 청나라 황제도 아닌 신하한테 큰 절을 하면서 목숨을 연장한 참말로 멋진 대왕이었다.

    ㅇ 박정희 --- 업적이 위에 언급한 인물들보다 수만배가 더 크다고 평가되니 굳이 말할 필요가 ....

    죽은 사람 불알 만지지 말고 살아있는 사람 전두환 김대중 같은 사람들 이야기나 해서 죽일 놈을 죽여야 하는 게 더 보람찬 일 아니겠수?

    김대중은 왜 자기가 제갈윤씨 아들이고 또 연해주에도 가서 살았는지 말않하고 사는지 한번 연구해 보슈,

    한심한 짓 하지 말고....


  • 김수민 2005/1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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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역사특강 님께...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죽은 사람 불알잡고 영웅찬가나 부르세요.
    박정희 일가의 현대사 가로지르기보다 김대중 족보가 더 궁금하다면,
    그거야 당신 마음이지만,
    그게 더 중요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정신과 상담을 요망.
  • 안진환 2007/04/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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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석(관훈클럽인사)씨에 대한 향변
    대학교수라는 분이 책으로 밥먹고 산다고 남의 집안의 명예를 더럽혀서야 되겠는가요? 문제는 당신의 저서 <언론과 현대사> 서두에 나오는 독립협회를 이끌던 구한말의 장보고적 삶으로 일관된 안경수를 한일합병당시 작위에 은사금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에 열거했는데, 이는 지대한 오류임을 밝히고자 하면서 귀하는 현 동아일보 사장으로 있는 김학준교수의 <한말 정치학 수용>- 이승만 유길준. 안국선을 중심으로란 책을 보시고 답변 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안경수의 큰집(본가)4대손 이며(제종6촌) 안경수의 실제의 본가 형 安載壽의 子 가선대부 安瑞鉉 장군의 증손자로서 안경수의 종가댁은 물론 저희 집안은 3 대가 그 뿌리가 뽑혀서 107년이나 되는 기나긴 슬픔을 겪는 후손의 한 사람인데, 연좌죄의 사슬을 피하여서 본관 마져 죽산 안씨에서 순흥안씨로 일제시대 바꾸고서 간간히 살아온 불행한 손입니다. 당신의 저서 글 때문에 맘이 편치 못합니다. 안경수는 1900년 5월28일 고문치사 교수형을 당했다가 1907년 사면복권 시호로 의민(毅愍)이란 두글자로 보상된 불쌍한 민족의 선구자였습니다. 친일파 이완용과 동시대의 8 년상인 경수씨는 초혼에 여식만 둘 남기고 병사한 홀아비로 살다가 갑오개혁기 고관 심상훈의 애첩 이씨를 통해서 득남(안국태-황헌의 매천야록근거)을 하였지만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고 살다가 48세의 나이로 재동의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의 자택및 모든 재산을 적몰당하고 큰집 작은집 모조리 평리원에 끌려가서 국사범으로 대역모반죄로 역사에서 버림받은 공신 입니다. 1910년 한일합병당시 윤치호와 그의 부친 윤웅렬이 작위 은사금을 받았지 안경수의 명단이 왜? 낍니까?
    안경수는 친일적 관료에서 아과파천당시 친러쪽으로 미국쪽으로 정치적 선향을 달리하였기에 1898년 가을 일본으로 망명가서 남들은(유길준의 예)7년이나 숨어서 살아왔는데, 그 당시 주일공사관 李夏榮의 방해공작과 안경수가 별려놓은 국내의 각종 은행과 회사문제와 개인적으로 종가집안의 구금된 인사들을 살리려고 주한공사의 중재로 자수하였다가 심한고문으로 늑골이 부러지고 고환이 터지고 피부가 벗겨지는 문초를 3 일씩 굶겨가며 린치를 당하다가-주일공사관 기록) 안경수의 많은 재산과 황권의 강화라는 대의 명분을 앞세운 수구대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안경수는 4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안경수는 친일적 정치인 이었지만 ,친일파는 아니며 한일합방 전에 사망한 인사임을 명백히 하고자하며 귀하의 정정 수정을 바랍니다.
  • 이대연 2010/09/0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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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역사특강'님 광해군이 언제 사화를 일으켰나요?
    저기요. '역사특강'님 광해군이 언제 사화를 일으켰나요? 연산군과 헷갈리신건 아닌지??ㅋ 혹여 인목대비 폐위와 영창대군 사사로 인한 소북인들의 희생사건을 사화로 말씀하시는건가요?? 역사지식이 어느정도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공과 과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 그리고 태종조때의 조세제도는 정비가 되었긴 하였으나 문제가 많아 세종조때 1/24로 확정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백성의 부담이 경감되었습니다. 그리고 진관체제는 세종조때 간도 및 연해주 즉 4군 6진의 개척이 되었기에 여진족의 특성에 맞춰 지역 방비 체제를 수립하려 만든 것으로서 세조때 최종적으로 완성된거라 엄밀히 말하면 세조의 업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친인척과 자신의 참모등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또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경제개발이요? 지금 지구상의 못사는 나라의 독재자들보다 착취를 덜 한것정도가 잘한것일까요? 이 나라의 경제는 순전히 우리 국민이, 내 자식은 굶기지 말자,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일념하에 강인한 정신력과 만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경쟁에 강한 민족성,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채택과 미국의 비호하에 활발한 수출로 인하여 발전해 온 것입니다.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이가 잡았어도 아니, 박정희가 아닌 민주적인 인사가 대권을 잡고 우리나라를 이끌었다면 최소한 정경유착으로 인한 경제의 약점도 없었을 것이고요. 내실이 튼튼해 왠만한 세계 경제 공황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겉으로만 발전시키고 성과선전주의 경제체제로 이끌어간 결과 부실한 대기업 위주의 정경유착 경제체제 속에서 결국 많은 권력자들의 끊임없는 사리사욕으로 IMF라는 엄청난 국가재난을 불러와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에 김대중씨가 국민의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며 각기 집안에서 잠자던 금을 깨워 모으고 우리 국민의 살과 뼈를 깎는 경제구조조정 정책 및 부실기업퇴출, 부정부패척결로 IMF 조기졸업을 이루어내었으나 결국 빨갱이라는 소리나 듣고 말입니다. 이게 맞는겁니까? 경제를 진정 누가 살린겁니까? 남북이 화해되면 외국인들의 국내투자도 안정감에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진정 모른단 말입니까? 왜 아직도 상대도 안되는 북한을 들먹이며 색깔논쟁에 국가 정력을 낭비해야 합니까? 결국 이득은 우리의 살과 뼈를 깎아먹은 위정자들이 취하게 됩니다. 민주당도 참여당도 민노당도 진보신당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에는 국민을 업수이 여기고 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딴나라당에 비해 적을뿐이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무엇이 이 나라를 강성대국으로 이끌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 입니다. 태종은 주변 측근이나 정치가는 많이 죽였으되 백성을 탄압한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민심을 매우 두려워하여 자신의 측근이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 숙청하였습니다. 명심합시다. 민심이 곧 천심, 지금 민심은 색깔논쟁이 아닌 실속한 경제 안정 및 균등한 분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친일김대중 2017/02/1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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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현 시점에서 친일시대 친일적 성향을 가진 김대중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김대중은 원래 성이 제갈 이였다가 윤대중에서 후일 김대중을 성을 3번이나 바꾼 인물이고목포상고 시절 일본군을 찬향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일본군복까지 빌리고 총기 군용 밸트 모자까지 완벽하게 차려 입었죠.2차대전 즈음 무렵시절이였으니 일본군복 입고 일본군 비하하는 연극을 했을리는 없을 꺼고 더더욱 개탄스러운건 해방 후에도 일본을 자기 집 드나들듯 다녔고 1989년엔 전범 히로히토 참배까지 하셨죠.그 시기에 한국에서 반일본 기류가 대세이던 시절임에도 천황이라 깍듯하게 부르던 김대중이야 말로 해방 후에도 전향안한 친일이라 주장한들 반박 할 수 있습니까?친일이 그렇게 싫으면 좌익 쪽 인사들 부터 검열하고 비판 합시다. 자기들 속에 핀 드러운 곰팡이는 나몰라라 하고 남의 드러운것만 보는거 안좋은 습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