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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남편 대신해 다시 삼성에 투쟁하다
남편 몰래 하는 삼성SDI 앞의 1인시위, 그리고 어린 딸하고 맺은 비밀
 
박미경   기사입력  2004/11/26 [23:26]
삼성SDI 해고자인 남편이 두번째로 구속수감되었을 때입니다. 가끔씩 면회를 가면 남편은 기침이 너무 심해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라며 괴로운 듯이 말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주는 약은 먹어도 차도가 없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면회를 가니 남편 목에 파스가 1cm 크기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먹는 약은 효과가 없어 파스 요법을 쓴 거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켁켁 거릴 정도로 기관지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 줄 수도 없고 저는 마음만 아팠습니다.
 
그 후, 특별 면회가 예약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편을 만나면 따뜻한 차 한잔을 주기 위해 밤을 꼬박 샜습니다. 기침에 좋다는 도라지 껍질을 까느라고요. 그런데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도라지 껍질에는 기침을 멎게 하는 성분인 사포닌이 많기 때문에 흙만 씻으면 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음식만큼은 워낙 깔끔을 떠는 성격이라 그 많은 도라지를 손으로 일일이 다 깠습니다. 그렇게 도라지를 까다가 정말 돌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거의 매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삼성SDI 앞에서 남편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들은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가게를 보는 등 1인 다 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남편 못지 않게 저도 건강 관리에 신경써야 했습니다.
 
▲제가 1인 시위 하는 곳에서 보이는 광경입니다.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더 힘차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박미경

하지만 새벽에는 억울함과 분노로 잠 못 이루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나머지 저 역시 건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기에 특별면회가 있던 그 날 새벽의 준비는 더욱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도라지, 배, 대추(씨 제거), 파뿌리 등을 푹 달여서 만든 물을 보온병에 담아 면회를 갔습니다. 하지만 "소지품은 모두 바구니에 놓고 들어가야 한다"는 교도관의 말에 새벽 내내 고생하고 애써 달인 물은 남편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아크릴과 철창으로 가로막힌 서로 다른 공간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은자리에서 기관지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물 한잔 주고 싶었는데 많이 속상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주머니 속에 넣어간 귤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대화를 하는 내내 남편에게 건네줄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제가 줄 것이라곤 귤뿐이라는 생각에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는 먹지 못했을 것 같아 주머니 속에서 이미 따뜻해진 귤 세 개를 남편 손에 쥐어주고 교도소 문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있던 교도소는 노후 된 건물이었습니다. 마루바닥에 습기가 많아 이불이 젖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면상자를 찢어 테이프로 붙여 깔고 그 위에 요를 깔고 잔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추운 곳에서 지내야 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저도 냉방에서 생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해 출소한 남편을 위해 특별면회가 있던 날의 아쉬움을 담아 도라지를 포함한 여러 재료로 달인 물을 자주 줬습니다. 정성 때문인지, 민간요법이 통한 것인지 몰라도 남편의 기관지는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기관지만 손상된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목뼈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출소 이후 생계를 위해 뙤약볕 아래서 얼굴과 팔 피부가 벗겨 질 정도로 열심히 막노동을 하였는데 목이 아파서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물리치료와 투쟁을 병행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지난주에 입원을 했지요. 바로 뒷날부터 저는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하러 삼성SDI앞에 달려갑니다. 아이에게는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삼성sdi에서 부당해고된 송수근 씨의 아내 박미경 씨가 구속당시 1인시위을 벌이고 있다.     © 박미경
"은지야, 혹시 새벽에 눈떠서 엄마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 어디가요?"
 
"응. 회사 앞에 1인 시위하러 가려고."
"엄마, 추운데 가지 말죠? 고생하잖아요."
 
"춥다고 일 안 하냐? 이것저것 다 가리면 투쟁 못 한다."
"나는 엄마가 안 갔으면 좋겠는데…."
 
"혹시, 아빠가 알면 걱정할 테니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라. 비밀이다."
"네. 엄마 운전 조심하세요."
 
지난 해 제가 1인 시위하러 가다가 빙판 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전봇대와 벽에 부딪치는 등 자주 차량이 파손되는 것을 잘 아는 우리아이가 걱정을 합니다.
 
1인 시위 첫날이었습니다. 새벽 5시가 넘도록 아픈 남편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겨우 1시간 정도 눈을 붙였습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기상시간을 알려주는 음악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몰라도 오후에 겨우 눈을 뜨고 게으름을 피웁니다. 그러나 남편이 집에 없으면 한없이 부지런해집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었더군요. 곤히 잠든 딸아이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갔다 올 때까지 잘 자고 있어야 할 텐데….'
 
보일러를 끄고 전화 벨 소리를 줄였습니다. 가스밸브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조용히 방문을 닫고 집을 나섰습니다. 유난히 차가운 새벽바람이 슬픈 마음을 더욱 더 짓이기는 듯 했습니다. 남편의 차를 몰고 회사 앞으로 향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이 구부러지더군요. 피켓을 잡기도 힘들만큼 팔도 아팠습니다. 남편의 고통이 생각나 눈물까지 나더군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분노의 힘으로 몸을 지탱했습니다.  
 
▲1인 시위하는 바로 옆에 벚꽃 나무가 있습니다. 부러진 채로 방치된 나뭇가지를 보면 목 디스크로 고통 받는 남편이 생각납니다. 자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강     ©박미경
 
건강했던 저 또한 남편의 구속 이후 몸이 많이 축났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마음이 아프면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버립니다. 어떤 날은 눈뜨고 있는 자체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위장장애를 겪으며 약을 복용했지만 차도는 없더군요. 몸이 쇠약해졌나 싶어 링거를 맞아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마음의 병이 건강을 해친 것 같습니다.
 
1인 시위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전화벨이 울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 학교 보내라'며 저를 깨우기 위해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막 자다 깬 사람처럼 "알았다"고 힘없이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어제아침에는 제가 집에 조금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1인 시위할 때 시계와 휴대폰이 없다보니 정확한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충 출근차량들이 한산해질 때쯤 1인 시위를 마치거든요. 집에 들어서니 평소와는 달리 방에 불이 켜져 있더군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니가 웬일로 일찍 일어났냐? 혹시 아빠한테 전화 왔디?"
"아빠도 오고 이모도 전화 왔었어요."

 
"혹시 아빠가 엄마 안 찾디?"
"'엄마 어디 갔는데'하고 물어보데요. 그래서 솔직히 말할까 생각하다 '아빠한테 말 안 할래요. 비밀'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비밀'이라고 말하면 안되지 그냥 엄마 화장실 갔다고 하지."
"엄마가 '비밀'이라면서 요. 그래서 나도 똑같이 말했는데…."하며 웃습니다.

 
남편에게는 제가 고생하는 것을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푸른 하늘,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 내리는 빗방울만 봐도 바보같이 울컥합니다. 억울하게 고통 받은 날들을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주르륵 쏟아집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만큼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 날들이 많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태연한 척 밝게 웃지요. 이유는 제가 힘들어하면 혹시라도 남편의 투쟁이 약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고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를지 모르지만 제가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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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1/26 [23: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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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민 2004/11/29 [12:58] 수정 | 삭제
  • 날씨가 춥습니다. 힘내시고 승리의 그날까지 필승 박미경입니다!
  • 힘내세요. 2004/11/29 [10:18] 수정 | 삭제
  • 정말 장한 부인이십니다.

    마음아프지만, 두분의 사랑이 너무 보기좋고 아름답네요.

    딸아이도, 너무 대견스럽고 이쁩니다.

    돈에서 소외되고, 권력에서 소외되어 사시지만 늘 지금같이 서로 아껴주는 모습으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날이 반드시 두분과 아이곁으로 찾아올겁니다.
  • 시민 2004/11/29 [09:37] 수정 | 삭제
  • 한국의 소수의 주류에 역행한 댓가를 이리도 힘들게 치르시는 군요...
    정의가 이길거라는 막연한 정당성에 용기를 가진 모든분들께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힘없는 우리가 할수 있는 모든것은 그냥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니까요.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니 까요
  • yoyo 2004/11/29 [08:48] 수정 | 삭제
  • 힘내세요.그리고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