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국 기독교는 미 보수적 기독교 아류?
부시 기반은 미디어 결탁한 보수적 복음주의 세력, 기독교는 본분지켜야
 
아름다운화원   기사입력  2004/11/11 [03:14]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자 여러분! 복음주의 하실려면 제대로 하십시다.
 
"복음 (Euangelion, good news)"은 참되고 복된 소식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공의와 구원을 이루었고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복음적 (Evangelical)"이라는 말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의 실천적인 원리에 대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형용사입니다.
 
"복음주의 (Evangelism)"의 기원은 루터와 칼빈에 의한 종교개혁적 전통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주의는 그 용어가 그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지 초기 기독교인의 삶의 양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성서적 삶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이를 실천하는 운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초기 기독교 운동의 실천적 모토를 지칭하는 것이 복음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수한 신앙운동이며 사회 속에서 그 실천적인 영성을 구현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바로 예수 운동의 첫 시작이 복음주의일 것입니다. 즉 복음주의는 기독교적 영성을 이해 (앎)하고 바로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삶)을 일치시키는 총체적인 활동입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용어 설명을 간략하게 하자면, 학술적으로 복음주의를 Evangelism과 Evagelicalism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복음전파'(혹은 전도/선교)를 의미하는 것을 Evangelism이라 하고 복음적인 (evangelical) 사람들의 신학과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것을 Evagelicalism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복음주의라고 지칭합니다만 제가 여기서 사용하는 용어는 복음적인 삶과 생각에 대한 것들을 지칭하는 복음주의(Evagelicalism)를 말합니다.
 
복음주의가 구체적으로 기독교사에서 드러난 예는 18세기 영국의 감리교 운동과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에서 그 유래와 변천 과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한 감리교 운동은 미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준 신앙운동이며 미국으로 건너간 감리교 운동은 초기 미국 사회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영적 대각성 운동은 각 교파별 전도활동과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형성에 기여를 합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운동은 신앙적 신념에 근거한 사회 개혁 운동과 신앙적 열정을 표출하는 부흥운동의 전통을 갖게 됩니다.
 
복음주의는 -구체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것- 부흥운동과 선교활동을 신앙 활동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진영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설명하는 신학적 근거로 삼기 시작하면서 다른 의미와 강조점을 갖게 됩니다.
 
복음주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미국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기독교에 대항하기 의해서 생겨난 근본주의와 연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주의는 미국내 제2차 대각성운동 후 태동한 해외 선교운동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합니다. 순수 기독교 운동과 보수적 신앙운동이 한 지붕 아래 형제처럼 사는 모양이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사회개혁 운동에 주안점을 두는 이른바 사회구원을 외치는 진영과 개인전도와 개인의 구원에 열정을 쏟는 진영으로 갈립니다. 후자의 경우가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와 복음주의로 다시 구분짓는 데 그것은 교회 중심적이냐 선교단체라고 불리는 특별목적이 있는 기관 중심적이냐라는 것과 근보주의적 색채가 강한 원리적-배타적-기독교 최우선성-전투적인 색채를 지니느냐와 대화적-열린자세-합리적-다원주의적이냐는 관점에 의해 그 운동성과 전략성이 갈립니다. 전자를 복음주의, 후자를 신복음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두 진영 역시 기독교 중심적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미국의 기독교에 바탕을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태생적 한계가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주의를 호칭하는데 있어 기독교와 다른 전통에 대한 입장을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대화적이냐 기독교 지상주의냐의 차이로 나누어 부릅니다만 이 역시 보수적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지 합리적이고 대화적이냐 아니면 신앙적이고 열정적이냐의 세상을 향한 태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에 반해 에큐메니칼 진영은 기사에서 언급된대로 교회의 일치와 화해와 연합을 추구하는 범기독교 연합운동입니다.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에 의거한 기독교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존재 이유와 어떻게 봉사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 무척 대화적이고 열려져 있고 통합과 유기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타종교와의 연합과 연대 역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지난 반세기 넘게 복음주의 기독교로 인한 제국주의적 기독교를 끊임없이 경고하고 우려해 왔고 지적해 왔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열린 복음주의 진영과 대화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왔지만 미국 내 대다수 복음주의 진영의 보수성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며 개혁적이지 못했습니다.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의 문제는 기사에서 지적되었듯이 백인중심적 시각이며 서구적 기독교 문화제국주의적 양상을 나타내면서 세속 정부를 자신들 중심으로 이끌려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에 대응하면서, 그리고 20세기 중후반의 새로운 문화운동에 대응하면서 우경화되고 보수화된 것이 정말 우려되고 위험해 보입니다. 이들은 세기말에 발생하는 불안의 징후나 갈증의 조짐을 종말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더 확대하고 재생산하여 진정 세상이 끝장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극대화 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신학적 오류이고 초기 기독교 전통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것은 지난 10년동안 미국 내에서 이 진영이 미디어와 교회를 통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현실화 되고 있는 데 지난 주 선거결과에서 이들이 대거 투표에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기총 주도 시청앞 집회는 권력유착과 성장위주의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자보

 
더우기 한국도 역시 이런 미국 보수 기독교와 보조를 함께 하듯이 대규모 정치집회를 하는 현상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적 사회개혁운동 전통은 선동적인 대중집회와 세력 과시에 의한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것에 기반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가 이런 양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전통적인 것도, 성서적인 것도, 신학적인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한 복음주의는 예수의 복음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대로 실천하며 구현하는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주의는 예수의 복음을 세상 가운데 전하며 예수의 믿음을 고백하는 후예들의 삶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인간 해방적이며 삶의 양식을 통전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개혁의 정신이 가득한 도전적인 메시지인 것입니다.
 
코비아의 경고가 진정 예언자의 소리일진대 광야에서 오늘날의 기독교를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코비아의 절박한 목소리는 오늘날의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에 성서에서 말하는 복음주의를 실천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부디 한국 기독교계와 미국 기독교계가 이 외침을 듣고 마음과 행동을 돌이켜서 예수의 정신과 믿음으로 돌아서길 바랍니다.
 
* 본문은 필자가 11월 8일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에 실린 최근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의 사무총장 사무엘 코비아(Samuel Kobia) 목사의 목회서신 관련 기사를 읽고 쓴 글입니다.
* 필자는 정치포털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논객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11/11 [03:14]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