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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의 교훈과 미국 대선
미 대선예측과 그 의미, 향후 뉴미디어 선거가 승패 좌우한다
 
K.T.W.   기사입력  2004/11/04 [01:20]

2004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모양입니다.

그동안 혼돈을 거듭하던 각 지역에서의 결과가 하나둘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부시가 승기를 잡았다는 보도가 하나둘씩 나옵니다. 그 소식에 양진영은 장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합니다. 오하이오 주에서의 결과는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쪽도 보입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들도 눈에 선합니다. 여기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선거분석과 결과를 한번 예측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사회에 가지는 의미를 또한 말해보겠습니다.

1. 선거결과 예상

일단 지금의 부시 승리보도는 최종집계가 아니라 잠정집계에 불과합니다. 즉 지금 개표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 그러나 미리 실시한 출구조사결과와 대차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출구조사를 상회하는 차이가 나면 이 출구조사결과를 신뢰해서 그 주의 승리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종래에는 출구조사결과를 신뢰해서 처음부터 당선자예측등을 서둘러 발표했던 관행이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의 오보경험으로 많이 신중해진 것일 것입니다.
 
아마 출구조사결과 발표를 머뭇거리던 각 언론사가 자신들의 출구조사결과를 실제 개표결과에 맟추어보고서 실제개표결과가 자신들의 조사와 일치하면 그 조사결과를 최종결과로 확신하고 발표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예측하건데 이러한 출구조사결과중 각 격전지에서의 부시와 케리의 득표율 차이는 실제 개표결과에서 더욱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즉 머뭇거리던 언론사들이 발표를 서두르는 것은 부시의 우위가 실제개표에서 더욱 벌어졌거나 혹은 케리의 미세우위조사결과가 개표과정에서 의미있는 큰 차이로 뒤집어져서 나온 것일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허용오차범위를 넘어선 역전된 결과이기때문에 오히려 출구조사결과보다도 실제 개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실제개표에서 초반에 나온 부분적인 결과를 가지고 전제모집단의 분포를 예측하는 것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이러한 예측방식이 전제하는 것은 투표의 패턴이 균일하게 이어진다는 가정입니다. 일종의 시계열예측을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에 개봉한 얼마간의 결과를 가지고 그 이후에도 동일한 결과가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서 전체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이러한 예측이 전제하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가질수 있는 여러가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여러현상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케리가 그간에 상승세를 타왔던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전체 투표율이 크게 올랐는데 이것이 30대 이하의 젋은층의 대거 투표가담으로 달성된 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케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투표현장에서의 조사결과에서도 다시한번 이변없이 확인된 사실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출구조사나 혹은 부분개표결과가 보이는 추이와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새로운 사실이 전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측되고 조사된 결과들이 선거당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면 한번쯤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최소한 이 사실로 인해서 부시의 우위가 약간씩 희석된 가운데 그러나 여전히 미세한 우위를 지키고 있다면 그 결과는 맞을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세한 위위 혹은 열위인 부시의 지지율이 실제 개표에서 초반부터 큰 표차로 이기는 현상이 나온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즉 투표패턴(성향)이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분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한지에 대한 통계적 물음이전에 우리한국인은 바로 얼마전 두차례의 커다란 선거에서 동일한 사실을 분명히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바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말이지요. 그때에도 예상과는 달리 초반개표가 크게 부진해서 상대편후보가 치고 나가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선거 종반에 기적적인 역전승으로 두번다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 점심시간을 지나면서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량이 폭증했던 사실은 이곳(서프)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중장년층 이상이 아침 일찍이 투표를 하고 오후들어서 젋은층의 참가가 두드러진 결과로 출구조사결과가 크게 빗나간던 사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출구조사는 물론이고 개표과정에서도 선거막판에 들어서야 우위가 분명해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각 투표함들의 성향별표분포가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모든 투표함을 모두 개봉해서 혼합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시간대별로 각 투표함을 차례로 개봉하는 방식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격전지(플로리다,펜실베니아, 오하이오)에서의 출구조사결과가 박빙으로 거의 동률이거나 아니면 미세한 우위를 보였던 케리에 대하여 아직 중반인데 이미 큰 표차로 부시가 리드하고 있다면 이는 부시가 유리한 것이 실제로는 아닌 것입니다. 즉 분명히 케리가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보이고 있고 거기에 다시 젋은 유권자들이 대거 가세했다면 그 결과는 더욱 미세해져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아직 한 절반정도를 넘긴 격전지들의 개표에서 벌써 부시의 승리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니 상황은 부시가 종래의 출구조사결과를 크게 반전해서 상회하는 결과를 얻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이러한 사실등에서 한국의 두차례의 선거와 동일한 상황이 나타났다고 보고있습니다. 즉 시간대별로 다른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몰린 결과로 전수조사가 아닌 종래의 부분적인 출구조사결과가 빗나가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한국의 경우는 유리한 것으로 나왔던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실제로는 그 조사만큼은 아닌 것으로 나왔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사원들이 조사한 시간대와 조사한 대상이 주로 여당지지층에 몰렸던 것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젋은 사람들과 활발한 시간대에 많이 집중했던 결과이지요. 반면에 장년층이상의 나이든 사람들과 한적한 시간대는 허술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야당지지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승리가 분명해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중반이후에야 안심할수 있는 결과를 얻었으며 열린우리당은 총선결과에서 거의 압승이라는 조사결과까지 받아놓고 있다가 그보다는 크게 줄어든 승리에 그쳤던 것입니다.
 
미국의 조사방식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 경우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젋은층의 대거가세로 전체 투표율이 오를 정도의 분명한 투표율증가가 수반되었다면 이는 분명이 가시적인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까지 반대되는 결과로 나오고 있다면 그 답은 투표시간대별 상황이 고르지 않다는 한국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휴대폰과 인터넷등의 통화량과 패킷량이 폭증하고 실시간 투표권유가 이루어져서 특정한 시간대나 장소에 젋은 층이 대거 몰려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자면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자금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케리 후보가 무난하게 원래 조사결과를 상회하는 승리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케리후보라면 끝까지 투표결과를 지켜보는 것은 물론이고 오하이오는 물론이고 플로리다와 펜실베니아등의 종래의 격전예상지의 선거감시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내가 보기에는 플로리다가 수상하군요...) 
 
2. 그리고 이것이 미국에 가지는 의미.
 
나는 위에서 한국과 미국 양국에 동일한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했습니다. 즉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실시간 투표권유가 행해져서 매우 기복있는 투표자들의 투표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두가지 사실을 의미합니다. 즉 그것은 일단 인터넷과 휴대폰등의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투표양태가 출현한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같은 경우는 아직 인터넷이 한국만큼은 보급되지 않았고 특히나 농촌지역에서는 그러합니다. 광대한 국토의 여건상 중서부의 농촌지역에서 인터넷의 보급률이 저조할 것이고 이는 따라서 쌍방향 의사소통과 정치토론이 활발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도시지역은 한국못지 않게 인터넷이 잘 보급된 것이고 더 나아가 휴대폰의 보급률은 (아마도) 한국 못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의 휴대폰은 문자메시지기능등으로 충분히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인터넷못지 않게 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뉴미디어라는 기술적인 면만으로 이러한 상황을 다 설명할수 있을까요? 이러한 말을 하는 까닭은 이러한 뉴미디어가 종래의 투표층 즉 선거기간중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그 지지층의 변화를 초래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전체 투표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잘 알려진 젋은 층의 진보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갈수록 심화되는 정치무관심으로 인해서 별다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질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들의 대거 선거참여로 투표율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다시 역전된 것입니다. 즉 뉴미디어는 종래의 정치성향집단들을 변화시킨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종래에는 수면아래있었던 계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뉴미디어는 개별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쌍방향통신의 등장으로 젋은층등 종래의 정치무관심층의 선거참여가 촉진될 기술적인 수단과 가능성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정치 자체에 정말로 무관심하거나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수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할 유인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이러한 투표율 자체의 증가는 미국의 젋은 층이 정치무관심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 세대와 달리 이미 도시화된 주거하에서 서로 격리되어 자라났던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한국의 6월항쟁세대가 그 이전의 비교적 덜 도시화되고 따라서 그때까지 남아있던 전통적인 유대와 정치의식을 미리 가지고 정치에 등장했다면 이들은 이미 파편화된 사회상황에서 주로 T.V 등을 보면서 자라났던 세대입니다. 즉 제대로 된 토론의 기회나 혹은 지역사회의 참여경험등으로 얻어지는 정치의식과는 단절된채 방에서 T.V나 보면서 고립된채 자라났던 사람들입니다.
 
이 결과로 이들은 거의 정치적인 경험이 없으며 또 탈정치화된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즉 정치에 관한한 태어나면서 백치로 길러졌던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들에게 상호 연결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일까요?
 
달라진 상황은 고립된 사람들이 상호연락할 수단이 주어지고 T.V와 다른 시각들을 접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뉴미디어의 뒷편에는 이러한 젋은 세대의 정치적 각성이 일어났다는 좀더 중요한 사실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세대가 뉴미디어 없이 맨몸으로 거리로 나왔다면 이들은 자기집 방안에서 인터넷으로 대화하고 후대폰을 받고 투표장에 나왔다는 것뿐입니다. 다시말해서 이들은 이것이 없었다면 거리로 나왔을 것입니다. 인터넷이 한 것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맨입으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선거당일날 투표장에 나와서 한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바뀌게한 것뿐이지요..
 
즉 인터넷과 휴대폰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들의 정치적 각성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역풍을 맞고 뒤뚱거리던 케리는 어떤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의 보이지 않는 입김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 보이지 않는 손으로 끌어 올려져서 권좌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결과는 인터넷과 뉴미디어 이전에 내게는 마치 과거 메이슨-딕슨선의 재현으로 보입니다.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칠해진 지도는 마치 과거의 동북부지역과 남서부를 가르던 선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케리는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이 80년대의 그 뜨겁던 거리에서 정치에 눈을 뜨고 안일한 변호사에서 투사로 거듭난 것처럼 그 역시 월남전에 참전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부터 반전운동을 통해서 그의 정치적 경로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의 평생의 원칙으로 이어졌지요.
 
그리고 그 반전운동은 이 이전에 60년대의 미국의 인권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절에 J.F.K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클린턴과 케리같은 베이비붐세대의 가슴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케네디가 미남이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단지 그가 T.V라는 당시의 뉴미디어를 잘 활용한 능숙한 언변을 가지고 있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케네디는 바로 이 민권운동을 배경으로 나온 대중정치인입니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단지 그때까지 정치란 지식인이나 높은지위의 부유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T.V를 통해서 알기쉬운 정치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좀더 본질적인 면모는 바로 미국의 민권운동을 배경으로 미국민을 이끌었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민권운동은 비로 미국인들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죄의식에 관한 것이었지요.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다시 같은 인간인 흑인들을 노예로 짐승같이 대우했던 미국은 그러나 인간은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기독교이념에 의해서 건국되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이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충실히 지키려면 결코 피해갈수 없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말해졌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자리에서 대답을 듣고 싶다. 회피하지도 얼머부리지도 말고 내눈을 똑바로 보고 답해라."
 
그리고 이런 질문에 응해서 미국건국초기부터 메이슨-딕슨선을 따라 노예들의 탈출로들이 존재하지요. 또는 이른바 자유철도라는 노예들의 탈출을 돕는 사람들의 조직이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링컨이 나왔고 대양으로 격해서 큰 전쟁을 치를 염려가 없던 이 나라는 자기들끼리 내전에 돌입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인구가 얼마되지 않던 상황에서 북부는 200만명을 동원해서 36만명 남부는 60-70만명 중에서 25만명이 사망하지요. 사망자만 말입니다. 주로 백인끼리 노예해방에 관해서 이러한 당시로서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가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러한 노예제도는 미국인들의 영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이는 단지 경제적인 문제냐 혹은 타협이 가능한 정치적인 의제냐가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의 신념과 가치관과 믿음과 그들의 신에 대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전을 치렀던 달리말하면 같은 백인들의 핏값 수십만명을 치르면서라도 결연하게 흑인들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에 다시 흑인 문제는 잠복하지요.
 
형식적으로는 해방되었어도 이들 흑인은 다시 빈민층으로 편입되어서 전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야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해졌고 음성적인 것이 되었지요. 그리고 이들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나빠져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문제는 미국사에서 민권운동으로 불붙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보다못한 사람들이 나서서 흑인들을 비롯해 소수민족과 시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평한 대우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즉 이는 국외자인 우리가 보기쉬운 것처럼 단순한 인종문제가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는 자기생활주변에서 아니 자신의 삶 자체에서 감당해야 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자 흑인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강자와 약자 그리고 사람간의 차별과 무시와 모욕에 대한 항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배경에서 J.F.K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는 암살된 관계로 그 자신의 치적은 그리 남기질 못했지요. 그의 야심찬 사회개혁안은 그의 암살후 후임인 존슨대통령으로 이어져서 많은 성과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과 관계없이 케네디는 이러한 민권운동에 대한 감정 즉 우리 인간은 다같은 존재며 또한 다 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미국의 이상에 정말로 동의하며 일반 미국민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점이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잊혀질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이상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불운한 죽음에서도 알수있는 것입니다. 케네디를 비롯해서 그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마르틴 루터 킹 목사 말콤 X등 숱하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와중에 고초를 겪거나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링컨도 그렇거니와 결국 어느사회에나 있는 기득권층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즉 강한자와 약한자의 문제말입니다. 단지 이 문제는 흑인이라는 피부빛이 눈에띄는 관계로 정말로 원초적이고 지독한 차별의식을 낳게 만든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강자의 횡포를 미워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의 그것과 같은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는 그 중에서 선택된 사람들인 백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아서라도 이들을 해방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도덕적인 점이 있는 것이고 미국은 정말로 자신들의 신과 자신들의 양심을 위해서 같은 백인형제들과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벌였다는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지요.
 
미국인이 자신들의 조국을 가리켜 '이 위대한 나라'라고 말할때는 이런 점들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출발부터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자신들의 신앙의 조상들부터 시작해서 정말로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이분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려했던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전의 상전이었던 영국귀족들에게서 떠나서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했던 동북부의 역사나 그 이후에 남부의 흑인제도에 대해서 바로 자기자신이 그 기득권이랄수 있는 백인이라는 그것을 버리고 흑인들과 함께하려고 했던 사람들이지요. 신을 믿었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려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위험한 것이지요. 어느시대 어느 장소이건 이러한 행위는 위험천만한 것이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선에 링컨이 섰고 다시 마르틴 루터 목사가 다시 케네디가 차례로 섰다가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청교도의 신앙의 조상들인데 이들 역시 목숨을 걸고 대양을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이상의 본질은 결국 인간은 어떤 위대한 존재를 위해서 또 그것을 나타내는 원칙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이를 지키고 실행한다는 그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것이 각각 신교냐 구교냐 혹은 영국왕에 대한 예속이냐 평등이냐 노예냐 자유냐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이냐 아니면 평화냐로 바뀌어 나타났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점 J.F.K는 가톨릭이었지만 그러나 보스턴의 유력한 가문의 출생으로서 이 역시 동북부의 뉴잉글랜드에서 오대호까지 이들 사람들이 뻗어나갔던 지역의 연장선상인 것입니다. 즉 이러한 전통이 깊게 남아있었던 지역의 사람인 것이지요. 이들 지역은 또한 중서부에 대해서 오대호연안의 공업중심지였다는 점으로 목축과 농업을 주종으로한 중서부와 구별되는 지역입니다. 즉 뉴잉글랜드는 미국의 발상지로서 지금도 미국의 유수한 대학과 교육기관들이 집중해있는 미국의 지적전통의 중심지이며 오대호연안 역시 이러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케리를 동북출신의 샌님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바로 이들 지역의 지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모든 미국이 반드시 이렇지는 않답니다. 즉 이들 중에는 청교도의 정착촌으로 시작한 사람들도 있지만 영국국왕의 귀족과 대부호들의 대농장으로 시작한 지역도 있고 이것이 후에 노예노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멕시코에서 편입된 사람들도 있고 영국이외의 국가의 식민지들도 있고 해서 그 전통과 분위기는 사실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그리고 민권운동의 끝무렵에 바로 반전운동이 나왔던 것이지요. 자신들의 내부에서 흑인과 소수인종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차별과 학대에 눈감지 않은 사람들은 이윽고 자기나라가 힘없는 외국을 침공해서 그 나라국민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내부에서 억압과 차별에 항의한 사람들은 다시 자기외부의 약자들을 괴롭히는 자신의 국가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베트남반전운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배경으로 미래의 대통령 케리가 자신의 정치적 시각에 눈을뜨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해방과 민권운동 그리고 베트남반전운동은 미완의 운동입니다. 그 이상의 달성여부는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노예해방이 해방된 흑인들의 경제적문제를 해결 못했듯이 민권운동은 흑인과 사회적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지는 못하고 끝났지요, 그리고 반전운동은 미국의 냉전시절의 숱한 군사개입과 공작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모두 그 운동의 와중에 희생자를 내고 중단되거나 혹은 후로 미루어진채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자리에 케리가 섰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기껏해야 몇달전에 미국대선후보로 소개되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의 경력도 아주 간략하게만 압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는 그의 오랜 의정생활에서도 나름대로 이러한 그의 출발때의 첫마음을 잃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좌파논란에서 보듯이 그가 미국상원의원이라는 고위직에서 출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의정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반전운동이라는 사람들의 물결이 왔다가 흘러간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서 그때의 심정으로 깃발을 지키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잔치가 끝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서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남아있는 사람들 있지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 이어서 미국 역시 그때 그자리의 함성과 열기가 점차 뚜렸하게 느껴집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80년대의 그뜨겁던 시절을 마음에 안고서 그 이후에 십몇년이 넘어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 운동 역시 분명히 미완의 그것이었지요.
 
그리고 이처럼 중간에 아쉽게 중단된 운동은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돌아가는 '마음의 풍차'를 남기는 모양입니다.
 
이제 끝말을 써야 할때입니다.
 
신앙의 조상들과 링컨 그리고 마틴루터 킹 그리고 케네디 형제 그리고 이름모를 숱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용기와 결연한 삶의 태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안고 광채를 뿌리는 이들의 이상과 고귀한 원칙 그리고 이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이들의 믿음을 우리가 다시볼수 있을까요?
 
나 역시 미국에는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면 어릴적에 아버지와 함께 미 용산기지에서 피크닉에 몇번가본 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전부 책을 통해서 그리고 자라가면서 이들에 대한 말과 글과 영화를 보고 느낀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직접 눈으로 볼수 있을까요? 내가 보았었고 보려는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어떤 정치적 원칙? 아니면 어떤 사회이론? 내가 보았던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은 그러한 구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마치 조용한 일요일 아침의 광채처럼 뭐라말할수 없는 따사롭고 선의로 가득찬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상과 더불어 헌신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나라의 노무현대통령과 정치적 대척점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한미군문제와 통상문제 그리고 이런저런 여러가지 문제등에서 우리와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듯이 우리와 노무현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이들과 맞서야 할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이제는 서로 존중할수 있을 것입니다.서로 의심과 적대감이 아니라 서로 선의를 가지는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과 이상을 위해서 힘껏 자신들의 기량을 겨루는 것일 따름일 것입니다.
 
이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가호가 임하기를 빌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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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1/04 [01: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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