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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어떻게 기독교 탄압할 수 있나?
기독교는 최후의 '권력', 언론사의 탄압 말안돼, 자기성찰부터 먼저해야
 
최인   기사입력  2004/10/02 [23:44]
지금 한국사회에서 언론사가 특정 종교를 탄압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 국민 가운데 1천만 명 가량이 개신교 신자라면 국민 4명에 한명 꼴로 기독교 신자일 것이며, 아마 KBS 직원 가운데도 개신교 신자가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이 다니는 직장, KBS가 기독교를 탄압하려 한다면 우선 그들부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가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언론사가 특정 종교를 탄압하는 일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정말 가능한 일 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모 tv방송사가 기독교를 사칭하는 특정 집단의 문제를 파헤쳐 사회문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용납이 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였다. 그런데, 특정 종교집단의 비이성적이면서 일반인을 현혹시키는 행위에 대해 언론사가 문제를 파헤치려고 할 때마다, 그 집단에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었다.
 
만약에, 정말 언론사가 특정 종교집단을 탄압하려한다면 이번 KBS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 종교의 정통성과 존립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언론사가 무슨 권한으로 특정 종교를 탄압할 수 있을까? 언론사가 특정종교를 탄압한다는 표현이 과연 맞는 표현일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그 언론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탄압대상 종교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두고 있는 개신교라면 말이다.

'정론직필' 하라는 언론사가 본연의 임무와 역할은 외면한 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종교집단에 대해, 마치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확대해 보도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짚더미를 안고 불속에 뛰어드는 무척 바보스런 일이나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국가권력에 버금가는 ‘언론권력’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난 수십년간 일부 언론사의 잘못된 권언 유착에 의해서 나타났던 매우 잘못되고 비정상적인 행태였을 뿐 이고, 언론이 그런 권력을 가져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언론은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그 기본을 바탕으로 한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은 KBS가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안주해 있을 때 그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목적으로, 전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얻어 전개됐던 범 국민적 운동이었다.
 
언론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으로 어느 한 집단의 목소리만을 취사선택해 대변한다면, 그것은 바로 상대 집단의 반발을 사고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며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권력에 아부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면 앞서 얘기한대로 그같은 행위는 언론이기를 이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지금 KBS가 현 노무현 정권과 여당의 배후조종을 받아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다고 일부 교계는 주장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KBS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며, 당연히 범 국민적인 시청료 거부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KBS 안보기 운동도 곧 전개되리라 믿는다.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한국 개신교 史에는 또 하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며, 어제오늘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회는 지난 수 십년동안 성장주의와 자기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세습 문제까지 유발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교회 내에서도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높고, 소수의 자기 희생적이며 개혁적인 목회자들로 인해 방향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은 전쟁에 나가 있는 부하의 아내를 취한 일에 대해, 한 선지자가 감히 나서서 잘못을 지적하자 곧바로 회개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교회의 자랑인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양아들로 받아들이고, 그 자신 역시 순교를 당했으나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다.
 
KBS가 한국교회를 탄압하고 있다면, 기독교사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신앙의 선배들처럼 순교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순교자의 자세로 더욱 사랑의 빛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철저한 자기성찰과 반성, 회개를 통해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일 아침 중앙일보 문화면에는 마침 이런 기사가 눈에 들어 온다.

"서울 강북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Y교회가 흔들리고 있다... 중략... 현재 Y교회 사태는 앞의 고소장에서 보이듯 사회법에 의한 고소와, 교회법에 의한 행정심판 소송의 두갈래로 연결돼 심할 경우, 친목사 대 반목사로 교회양분을 우려할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중략... Y교회 분쟁은 서울 대형교회들 사이의 잇따른 분쟁과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몇해전 담임목사직의 세습을 둘러싼 잇따른 소송이 그렇고 목사의 공금유용 등으로 빚어진 사건들도 '불투명한 교회' '사유화되는 교회' 시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의 대표교회로 꼽히는 교회가 이럴 정도라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느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전체 교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대전제에서 말이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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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02 [23: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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