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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생들이 ‘망명정부’ 세운 이유
‘마광수 교수 재임용 탈락 보도’ 그 후
 
박형숙   기사입력  2002/05/01 [12:33]
4월 초 인터넷뉴스 사이트 『오마이뉴스』에는 눈에 띄는 광고 하나가 실렸다. 문안을 클릭하자 관련 사이트( http://dreamwater.net/yonseigrad )로 바로 연결된다.

“망명정부 연세대학교 국문과 사이트입니다.”

대문의 문패였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글에 대해 관리자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이 페이지를 관리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는 관리자의 공지창이 떴다. 홈페이지랄 것도 없었다. 메뉴라곤 게시판 하나뿐이다.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외국 서버를 사용했다는 점, 홈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 게시판 글들이 모두 익명이라는 점 등 지극히 폐쇄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은 이런 곳이 생기고 말았군요. 연세대 국문과 사태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사회가 워낙 좁은 곳이라 교수들이 맨투맨으로 압박하자, 금방 무너졌습니다. 굴욕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도 적당한 긴장을 잃지 않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망명 게시판이라, 참 희한한 이름이면서도 적절한 이름이라 여겨집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넋두리나 좀 하겠습니다. 그러다 힘이 나면 다시 레지스탕스라도 조직할까요?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렇게 먼 곳까지 이민을 오는군요. 조국이 좋은 것인데… 모교가 좋은 것인데… 가까운 것이 좋은 것인데… 이렇게 멀리 이렇게 답답한 양말(洋語)이 펼쳐져 있는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만들어졌네요. - 무림맹주.”

확인해보니 기존의 연세대 국문과 홈페이지( http://pinetree.yonsei.ac.kr )와 연세국문대학원모임 홈페이지( http://www.freechal.com/yonseigrad )는 ‘폐쇄’되었다. ‘망명정부’의 이주 원인이 더욱 궁금해졌다.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 연세대 국문과 사태라는 것.

불 지핀 마광수 교수 재임용 탈락 논란

{IMAGE1_LEFT}2년 전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본지는 2000년 12월 「갇히고 잘리고 마 교수의 ‘내 것도 아닌 인생’」이란 제목으로 연세대 국문과 마광수 교수 인터뷰 기사를 낸 바 있다. 당시 마 교수는 과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재임용 ‘탈락’을 통보받은 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기사를 일부 인용하면,
“지난 6월 마 교수의 연구논문의 수가 한 편밖에 되지 않는 등 연구자로서 자질에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재임용 부적격이라 결정한 국문과 측의 입장은 달랐다. 그의 전공은 창작이 아닌 문학이론이기 때문에 그가 복직 이후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출판하고 기고한 각종 비평과 소설, 시들은 재임용 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2년 동안 쌓은 교수업적(논문 6편, 장·단편 소설 4편, 시 5편, 문학비평집 2권) 중 심사대상이 되었던 것은 학회에 실렸던 단 한 편의 논문이었고, 그마저도 “논문의 질과 내용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 그는 “앞으로의 발전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는” 교수가 되었다. 마 교수 본인은 『실천문학』에 실린 「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 해석」을 비롯해 ‘학회 밖’에 실린 것도 논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문학 참고서류의 단행본에 실린 글들은 연구논문이라 할 수 없다”는데 뭐라 더 할 말은 없었다. ‘기준’이야 학교마다, 과마다 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문학』이나 『창작과비평』과 같은 계간지들이 ‘전문학술지’로 통하고, 이론 전공자가 창작 활동을 한 것을 오히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공에 고립되지 않는 시도로 보는 학계의 일반적인 관행에 비추어서는 이례적이다. 또한 마 교수의 재임용심사와 같은 해 특채임용된 ‘불문학’ 전공의 정명교(정과리) 교수에 대해 “학과의 소속이나 제도적 경계를 넘어 국문과 교수로 초빙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면 일이지 결코 부정적으로 평가될 일은 아니”라는 근거와는 상반된 잣대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 국문과에 재직중이다. ‘서류상’으론 그렇다. 당시 과 인사위원회의 재임용 불가판정은 본부 인사위원회를 거치면서 심사가 1년 뒤로 유보되었고, 또 건강상(신경성 위염)의 이유로 마 교수가 1년간 휴직을 신청한 상태라 재심사는 올 7, 8월경으로 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마 교수가 그 사이 사직서를 제출해 그마저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사표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마 교수는 그저 “백기를 들었다”라고 말할 뿐 별다른 복귀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두문불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고 건강도 더욱 악화된 듯하다. 과 사무실로 알아보니 사표는 아직 수리 전이지만 이번 학기에 그가 맡은 강의는 없다고 말한다.

연세대 국문과 사태의 도화선은 바로 마 교수 문제였다. 당시 국문과 대학원생들은 “규정상 창작물도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마 교수의 재임용 문제를 재고해줄 것을 교수회의에 요구했고, 이를 시발로 교수임용, 장학금 지급, 논문지도 등 교수의 고유권한이었던 영역에 대해 학생참여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적인 술자리가 아닌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교수들의 교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충돌

하지만 갈등은 증폭되었다. 대학원사회의 ‘특수한’ 교수·학생 관계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는 데 인터넷은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래서 ‘연세국문대학원모임’ 게시판은 글마다 조회수가 2∼3백을 넘어서는 등 뜨겁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진 학생들의 원색적인 비난, 교수들의 고압적인 태도로 불신은 커져만 갔고 문제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졌다. 특히 게시판 상에서 ‘문제 교수’로 지목된 교수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글 삭제를 요구했고, 학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김철 교수께서 학생게시판에 실린 다음의 글들에 대해 게시판 운영자인 학생회에 공식적으로 삭제를 요청하셨습니다. 김철 교수가 삭제를 요청한 게시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삭제요청의 이유는 해당하는 게시물들이 김철 교수 개인, 또는 국문과 교수 및 국문과의 명예를 근거 없이 훼손했거나 국문과의 일부, 또는 전체 교수를 심각하게 인신공격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김철 교수가 지목한 게시물은 몇백 개나 되는 전체 게시물 중 27개를 제외한 ‘모든’ 글이었다. 사실상 폐쇄를 의미했다. 문제가 되었던 대부분의 글이 익명이었던 것에 반해 실명으로 교수를 비판한 소수 학생들은 사과문까지 게재하는 등 ‘후속조치’를 감당해야 했다.

“4월 20일 작성된 175번의 댓글에서 본인은 직접적으로 지칭한 것은 아니나 김철 교수를 ‘미친사람’으로 표현한 바, 이는 그의 개인적인 명예를 심각히 훼손한 것으로 정중히 사과합니다. 아울러 그 근거로 제시된 게시판 폐쇄, 학생징계 운운, (학생회장) 장학금 취소 등은, 확인해본 결과 명백한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개인을 욕설에 가까운 어휘로 비난한 것은 명백한 잘못으로 판단됩니다.”

김병문씨의 사과문이 게재된 후, 바로 “백날 강제로 사과문 받아내 봐라” “대체 무슨 명예훼손을 했다고?”라는 댓글이 따라왔고, 삭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학생들은 문제의 글을 다시 퍼다 나르는 식으로 반발했다. 김씨의 삭제된 글 전문을 보면 무작정 ‘학생옹호’ ‘교수배척’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시판) 어디를 둘러봐도 김철 교수의 글에 대한 수긍할만한 비판이 없다”며 “왜 말이 안 되고 어처구니가 없는지에 대해” 제대로 비판할 것을 동료들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자”는 김철 교수의 표현에 대해 “진정한 대화의 본질은 욕이나 비방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대학원생)를 인정해야 성립되는 것”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펴가던 중 발생한 과도한 비유와 표현들로 인해 ‘본의’조차 삭제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악덕한 교수? 구더기보다 못한 학생?

어쨋든 학생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고 이는 교수의 표현대로 “공중변소 낙서판”을 청소하는 방식이었지만 그렇다고 대학원의 언로가 자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측의 대응이 ‘법’적인 것으로 이어지자,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최현태씨(박사과정 6학기) 역시 실명으로 교수를 실명비판하였다가 작년 말 변호사로부터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이, ‘학생들을 호출해 녹음을 하면서 강요하는 진술’ 등등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김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진술을 강요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단정적 사실을 열거하고 있는 바, 이는 명백히 허위사실로서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http://jabo.co.kr/zboard/


최씨는, 교수임용의 문제를 지적하던 당시 학생측의 주장에 동조해 지지성명서을 발표한 동문 교수 17명을 명예훼손으로 소송한 교수들을 비난하는 글(‘나도 함께 고소하라’)을 쓰면서 “김철 교수와 이윤석 교수의 추악한 행위는 실로 한심한 작태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며 “고집불통” “우매한” 등의 표현을 사용해 소송을 자처했고, 당사자인 김철 교수 역시 최씨에게 ‘고소통보’를 알리는 이메일에 “이제 네 말대로, 나의 ‘무지막지한 악덕을 명명백백히 밝히’든가, 아니면 네가 구더기보다도 못한 버러지인지 한번 밝혀보도록 하자”는 비난으로 응수했다.

더 이상 사제지간이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은 극을 향해 치달았다. 교수는 학자로서의 명예와 한 시민으로서의 인권을, 학생은 15년 동안 다닌 대학, 그것도 논문만 쓰면 박사가 되는 ‘미래’를 잃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대화채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수·학생 공청회와 간담회도 있었고 새로 구성된 학생회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주장을 조직화하고 책임선을 그어갔다. 그간 산발적으로 제기된 과 내 문제들을 문서로 정리하면서 ‘백서’를 작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학생회가 ‘국문과 문제에 관한 백서’를 통해 교수회의에 전달한 최종적인 요구사항은 다음의 네 가지였다.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는 공식적인 채널로서 교학협의회 구성, 대학원생들의 학사행정 참여권 보장, 특히 교수임용과 재임용 제도에 대한 참여권 보장, 그리고 마광수 교수의 재임용 문제 재고.

하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제출한 백서는 교수들의 인권과 교권을 침해한 백서가 되어 종국엔 학생회의 사과문 발표와 임원진 총사퇴, 그리고 홈페이지 폐쇄(2001년 8월 16일)로 이어졌다. 이로써 1년 넘게 쏟아낸 학생들의 요구와 문제제기는 완전히 철회된 셈이다.

‘망명정부’의 탄생은 그즈음이었다. 연세대 국문과 사태를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 생각하는 ‘무명씨’들은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조회수가 3천선에 이를 정도로 하나둘 망명객들은 늘어났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과거 연대 국문과 게시판과 프리챌 게시판의 ‘삭제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 게시판 모두 그 싸움의 판이 교수 대 학생 구도였다는 겁니다. …연대 국문과 사태의 경우처럼 교수 대 학생의 싸움 구도는 십중팔구 학생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진로나 취업, 논문 혹은 장학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교수에게 목을 메야 하는 상황… 교수들이 만일 이 고리를 악용한다면 이를 이겨낼 장사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있다면 몇몇 학우들처럼 학교를 그만두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이 역시 교수들에게만 좋은 일시키는 거죠. 골치 아픈 놈 하나 스스로 나간 셈이니까요.”

2001년 7월경 ‘대안’이라는 익명인이 “연세대 국문과 사태의 싸움판을 바꾸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교수 대 학생 구도를 바꾸어”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외부 사이트에서 동참을 호소”하는 방법뿐이라고 제안했지만 그 대안을 조직할 ‘실물인’은 나서지 않았다.

석·박사 10명 징계위에 회부되다

한편 학생회가 공식적인 활동을 접은 상태에서 9월경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권침해’ 사태에 관한 국어국문학과 교수회의 의견서”라는 제목의 교수측 백서가 나왔다. 백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들이 교수회의나 학사운영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므로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 마광수 교수 재임용 심사문제
● 정과리, 이경훈 교수의 특채임용에 관한 문제
● 김철 교수의 학위논문 F학점 부여문제
● 우수학생 장학금 배정 및 글쓰기 강사 선정문제
● 학문학 신임교수 인사문제

특이한 것은 백서의 ‘부록’이었다. 백서의 3분의 2이상(120쪽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록은 학생회 임원들, 그리고 가장 크게 문제로 불거진 한문학 신임교수 임용문제에 관여한 한문학 전공생들을 상대로 벌인 면담 녹취록이었다. 이는 김철 교수가 교수회의의 위임을 받아 진행했는데 사실상 교수와 학생간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볼 수 있다. 시종일관 ‘사실확인’으로 진행된 녹취록은 교수든, 학생이든 말을 바꾸는 상황에 대비한 일종의 증거자료였다 (박스기사 참고).

교수회의는 이 백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교수들의 인권과 교권을 침해한 것으로 규정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학칙에 따라 처리”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현실화되었다.

현재 10명의 국문과 대학원생들은 과 교수회의의 ‘요청’에 따라 대학본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숫적으로만 보더라도 대학원 초유의 대량징계였다. 징계대상자는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그리고 한문학 전공자 8명이었고, 그 주된 이유는 부당한 인사개입이었다. 학생회 임원이야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한문학 전공자 전원이 징계위에 회부된 것은 한문학 신임교수 인사문제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것은 연세대 국문과 사태의 종지부가 된 사건이었다.

대량징계를 불러온 한문학 사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2001년 2월로 국문과 내 한문학 전공 교수의 정년퇴임이 예정돼 있었던 바, 2월이 되기 전에 교수충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이미 채용공고가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해 1월, 교수 한 명이 ‘지원자 부족’과 ‘심사시간 부족’이라는 이유로 임용을 한 학기 미룰 것을 제안했고, 이는 교수들간의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갈등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런 와중 논문작성을 앞둔 한문학 전공생들로서는 불안했을 터, 임용을 예정대로 치를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이는 다른 과목 전공생들의 연대서명으로 이어졌다.



“우리 나라에서 대학원생이 자기학과 교수, 그것도 자기 전공분야의 교수를 정면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반발한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자칫 잘못하면 그 자신에게 얼마나 큰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희들로서는 다른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수성’은 특정 교수의 사주를 받은 행동으로 비화되었고, 임용을 미루자고 했던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는 극단적인 비방과 협박이 오갔다. 결과적으로 교수채용은 예정대로 치러지고, 학생들의 사과문도 발표되었지만 후유증은 컸다. 한문학 전공자 11명 중 3명이 자퇴를 했고(현재 서울대와 성균관대 등으로 재입학한 상태), 8명은 징계위에 회부되었다.

침묵 혹은 ‘법대로’ 소통하는 대학원

“대학원생들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말은 ‘학위취득’과 ‘교수임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은 모든 교수의 전권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여겨져왔다. 제도적으로 교수에게 밉보여서는 학위를 취득하고 어느 대학에 임용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학생회를 강화하고, 공식적인 의사소통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 국문과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수들의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만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결정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는 결국 피해는 학생들만 입는 것이 아니라 과 전체가 입게 된다.”

학생회장이었던 이대성씨가 학생회를 맡으면서 작년 4월, 『연세대학원신문』에 기고한 내용이다. 대학원 학생회란 그저 적당히 잡무나 하는 형식적인 기구여서, 그마저도 없는 학과들이 많지만 연세대 국문과의 경우 물밑에서 제기되는 학생들의 얘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이를 교수와의 합리적인 소통으로 이뤄내기 위한 채널로 학생회를 활용하려했다는 점에서 참 드문 일이고, 또 전체 대학원사회에 좋은 귀감이 될만했다. 하지만 그 소통은 현재 온라인으로 ‘망명’해 버렸고, 오프라인은 침묵과 냉소가 지배하고 있다. 학교에 ‘남은’ 한 학생들은 “이젠 사석에서조차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학생회의 주사업이었던 신년하례식과 논문집 발표도 올해는 없었다”고 말한다.

2000년 8월 30일∼2001년 8월 31일 동안 진행된 연대 국문과 사태에 대한 교수측 입장을 듣기 위해 당시 학과장이던 김철 교수와 이윤석 교수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기자가 들은 말은 “(기자를)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물으니 “그건 내 맘이다”라는 답변과 “말하기 싫다”는 것이 전부였다. 소통은 ‘법대로’만 진행되고 있었다.

녹음기 들고 만나야 하는 사제지간

2001년 6월경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교수·학생 면담은 ‘연세대 국문과 사태’로 불거진 문제들의 사실확인을 위해 마련되었고, 김철 교수가 학생회 간부와 한문학 전공생들을 상대로 면담한 내용은 모두 ‘녹음’되어 나중에 교수측 백서에 게재되었다. 그 녹취록 중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한문학 전공생과의 면담기록을 소개한다.

남재철 : 오늘 이야기한 내용을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성실하게 답변했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교수회의에 이걸 제출을 해서 전체적으로 판단하시는 겁니까?

김철 : 아니 이거는 교수회의에 제출할 필요 없어.

남재철 : 뭔가 학생들이 성실하게 답변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김철 : 그것은 내가 모르겠어. 아직. 이걸 내가 풀고 다시 들어봐야지. 그리고 이걸 토대로 해서 정리도 하고 자네들의 책임을 물을 거면 묻고 그래야 되겠지….

<중략>

남재철 : 그러니까 선생님께도 저희가 열심히 답변하지 않았습니까?

김철 : 아, 열심히 답변을 한 거는 알어.

남재철 : 끝까지 선생님께서도 어떤 저희의 마음에 대해선 이해할려는 모습은 전혀 안 보이시는 거죠?

김철 : 그렇지. 나는 뭐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요. 자네들의 말을 도저치 납득할 수가 없어….

김철 : 그 다음에 더 할 얘기 있어요?

남재철 : 저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제가 요전에 이윤석 선생님께서 고전문학 연구실에 찾아오셔 가지고 일대일로 한두 시간 가량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또 저희들의 이야기를 했거든요? 제가 누차에 걸쳐 그 때 선생님께 말씀드린 게… 설령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좀 아쉬운 바도 있지만 해결이 됐다, 이제 해결이 된 상황에서 가능하면 문제를 더 들추어내기 보다는 하나하나 좀 수습을 해서 학과의 전체의 이익에 맞춰서… 좀 대동단결을 해서 선생님께서 나서 주셔서 생각을 바꿔서 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김철 : 학과발전을 위해서? (남재철 : 예) 대동단결을 위해서? (남재철 : 예) 그동안 있었던 상처들을 아물고 서로 대동단결해서 나갈 수 있는 조치를 하자?
남재철 : 그러기 위해서 저희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선생님들께서 좀 겸허하게 왜 얘네들이 이렇게 했을까 그걸 좀 이해를 하시면….

<중략>

김철 : 자네는 다 해결이 됐다 끝났다. 뭐, 그동안에 조금 아쉬운 문제가 있었지만 별일이었느냐, 다 끝나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문제를 끄집어 내가지고 지난 일을 꼬치꼬치 따지고 뭐 그런들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느냐, 대동단결로 가자, 그렇게 말하고자 해. 내가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이 말은 또 한 번의 폭력이야. 아주 지독한 폭력이야. 몇 개월에 걸쳐서 학생이 교수를 그런 식으로 짓밟아 놓고, 자네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봐. … 그거 아주 심한 모욕이고 조롱이야.

남재철 : 그렇게 대동단결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하나하나 아픈 데를 서로 이렇게 좀 이해하고 상처를….

김철 : 누가 아파? 자네가 언제 아팠어? 자네들이 이걸 가지고 언제 아팠어?


* 말지 제 191 호 2002 년 5 월 발행 ⓒ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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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01 [12: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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