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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크의 눈] 아직도 011을 쓰시나요
 
공희준   기사입력  2002/09/24 [18:28]
{IMAGE2_LEFT}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수가 마침내 3,000만 명을 훌쩍 뛰어넘어 3,088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이동전화 가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어린이와 사용에 애로를 겪는 노년층 등을 제외하면 바야흐로 1인 1핸드폰 시대가 개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집만 해도 어른들만 따지자면 분가한 형제들을 포함해서 어머니를 뺀 모든 식구가 저마다 휴대폰을 하나씩 소지하고 있다. 칠순이 넘은 아버님조차 '스무살의 여유' 011 TTL 가입자시다.

지방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애인과 휴대폰으로 자주 통화를 하면서 가끔씩 우스갯소리로 우리 연애의 진정한 수익자는 통신회사와 운수회사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나마 양자 모두 KTF 사용자라 통화요금의 부담이 조금 덜해진다. 커플 요금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했는데 그녀가 난색을 표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만큼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고작해야 애인과의 장시간 전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가의 핸드폰 통화료 정도를 막연히 걱정하는 데 그치던 내 인식의 층위는 본지 민경진 편집위원이 지은 테크노 폴리틱스를 읽는 과정에서 빅 브라더가 시민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낱낱이 꿰뚫고 있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에 대한 구체적 공포감으로 변모하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휴대폰 위치파악 시스템은 적시적소에서 소비자에게 유용한 혜택을 줄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첨단기술과 마찬가지로 이 기술 역시 심각한 사생활 침해 위험을 안고 있다. 통신회사가 고객의 위치정보를 함부로 불특정 업체에게 허락도 없이 유출시키거나 해커가 시스템에 침입할 경우 휴대폰 사용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마치 거울을 보듯 상세하게 노출될 수 있다. 머지않아 실용화될 휴대폰 위치파악 시스템의 활용 한도에 대해 늦기 전에 미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지혜가 필요한 듯 하다
- 테크노 폴리틱스 P. 131에서 발췌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민경진 편집위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에서 이동통신 업체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우려하는 대목까지 내친 김에 마저 인용하겠다.

KTF의 웹사이트에 가면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정밀한 지도를 찾을 수 있다. 그냥 지도가 아니고 앞집의 통닭가게, 건너편 서점 위치까지 세밀하게 나와 있는 정밀지도다. 그 지도 위에서 움직이는 1천만 가입자의 위치정보를 상상해보자. 휴대폰에 적어낸 당신의 개인정보가 지도 위에서 실시간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막대한 부가가치정보를 통신회사가 독점하도록 놓아둘 수 없다. 1천만 가입자의 실시간 사생활을 사기업의 통제하에 놓아두어서도 안 된다. 통신회사는 스스로 파이프 역할만을 할 때 사회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파이프 속으로 무엇이 통과할 수 있는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혹은 이 권세를 휘둘러 이익을 독점하려 든다면 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수천만 가입자의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다.

민경진 편집위원이 예견한 그 권세의 휘두름을 나는 제휴사 직원으로 근무하며 이미 체험한 바 있다.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 중에서 원청업체인 재벌기업의 완장질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게다. 본질적으로 같은 노동자인 처지에 상전처럼 군림하는 재벌회사 직원들이 속된 말로 꼴 같지 않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회사와의 거래를 담당한 원청업체 직원-대리급-의 방문시마다 회사 전체가 마치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조선왕조 조정처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문제의 직원이 올 적마다 남직원들은 마대질을 하고 여직원들은 걸레를 들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다.

개인적 반감은 술자리에서 동료 직원들끼리 모여 앉아 푸념을 늘어놓고 노래방에서 앰프가 터져라 목청을 높이면 쉬 잊혀지는 법이다. 그러나 공공성이 강한 대표적 네트워크 산업으로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중요성이 배가되고 있는 이동통신의 사업권과 이와 연관된 제반 인프라 구축 서비스를 민간사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방치하고 있는 오도된 현실은 술 마시고 노래 부른다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각능력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가시적인 현상에만 이목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만약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과 두꺼비집을 통해 가정으로 인입되는 전기가 특정 회사가 판매하는 상품이라면 공공재를 장사꾼들에게 팔아먹었다고 당장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반면 음성과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는 상대 통화자의 목소리는 개인의 것이다. 저 멀리 떨어진 친구와 애인의 목소리를 음성에서 전파로, 다시 전파에서 음성으로 변환하는 단말기는 일반 기업에서 제조·판매해야 어울릴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산된 개인들이 발신하는 음성과 전파가 한데 수렴되는 중추적 핵심(Hub)은 공공의 자산으로 지켜져야 한다.

철도를 무리하게 민영화했다 대형철도사고 빈발에 신음하고 있는 영국과, 전력산업을 섣불리 사유화했다 사상초유의 전력대란에 시달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사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21세기 현대인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등장한 이동통신을 일개 회사의 이득을 불려주는 도구로 악용되도록 방기한 것은 국가로서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이동통신 사업의 공공성과 사회적 성격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오판으로 특정 사기업체에 불하된 전파사용권과 통신인프라는 조기에 공공자산으로 환수돼야 마땅하다.

{IMAGE1_RIGHT}국가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알짜배기 개인신상정보를 대규모로 소유한 집단은 사기업에 불과한 SK다. 국가기관조차 주민등록 데이터와 운전면허 데이터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판이다. 동일한 통신사업자이면서도 여전히 공기업 성격이 강한 KTF(구 한국통신)도 제약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SK가 보유한 데이터는 그 사용과 취급을 견제할 도리가 없다. SK가 고객 데이터로 무슨 짓을 벌일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TTL이니 UTO니 칼라니 하는 회원 서비스도 기실 SK의 기획력과 전략수립능력이 타 기업에 비해 우월해서가 아니라 보유중인 고객 DB를 사업적으로 부분 활용했을 따름이다. 이런 류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은 장사에 문외한인 나도 하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리적 이동경로와 소비패턴을 분석하면 간단히 포착된다. 휴대폰 위치파악 시스템이 일반화하고 이동전화 결제방식이 작금의 신용카드에 필적하는 보편적인 지불수단으로 정착된다면 SK란 사기업에는 대한민국 국민 절반의 사생활 정보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갈 수밖에 없다.

현대차를 운전하고 삼성 애니콜을 사용한다고 당신의 동선과 생활패턴에 관한 정보와 데이터가 현대자동차 기획실과 삼성그룹 비서실로 얼렁뚱땅 흘러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체기관의 연장으로 자리매김한 핸드폰은 국민 개개인의 귀중한 개인정보를 특정 대기업의 사세확장을 위한 제물로 넘겨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것도 국민의 혈세를 동원해 구축한 인프라에다 공공재인 주파수까지 덤으로 해서 선물로 쥐어주었으니 이런 특혜가 없다.

이동통신회사의 달콤한 광고물량공세의 이면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실상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인지도와 위기의식은 대단히 저급한 수준이다. 외려 통신회사 멤버십이 제공하는 몇 푼의 할인서비스에 눈이 멀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나라의 기간망이 일개 사기업체의 수중에 장악되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대상인 KTF는 그나마 1년에 한번씩 수박 겉핥기일망정 국민에게 실체가 까발려진다. 당연히 경쟁사인 SK에게도 알려질 것이다. LG 019는 IMT-2000 사업에서 억지로 동기식을 떠 안은 사실에서 입증되었듯 시장지배력은커녕 언제 퇴출될지 모를 지경이다. SK의 성장비밀과 팽창비결은 영원한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정치권마저 특정 통신회사가 떡고물로 선사하는 공짜 전화기에 넋을 잃었는지 묵묵부답이다. 일개 국민인 내가 통신공룡 SK에 대항해 할 수 있는 작업은 011을 쓰는 지인들에게 절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이 전부다. 공룡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지만 멸종하기 이전까지 먹이를 싹쓸이하는 탐욕스런 공룡의 먹성 때문에 생태계는 초토화를 면할 방법이 없다. 통신생태계는 SK가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011이 공공재로 환원되어 SK가 동그라미 두 개가 달리는 스마트 자전거와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교복 장사를 주력업종으로 삼던 선경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아쉬워할 사람은 SK 임직원 빼고는 거의 없으리라 믿는다. 신문장사든 전화장사든 시민적 상식은 독점과 특혜를 미워한다. 밥값을 할 절호의 기회가 세비만 축내던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드디어 찾아왔다. 한나라당은 MBC 대신 SK를 국감대상으로 채택하라.

* 필자는 [우리들의 비밀암호 : 노무현을 부탁해] (도서출판 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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