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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고대한국 고승의 발자취를 찾아서
[현장답사] 시가현의 백제사와 4절 순례, 가는 곳마다 백제의 정취 어려
 
이윤옥   기사입력  2012/11/15 [17:59]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파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은 교토와 오사카에 면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은 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하여 55건의 국보 그리고 806건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로 국보보유로 치면 교토부, 도쿄도, 나라현, 오사카부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에도시대에는 강남, 강서, 강동 지역으로 나누던 것을 명치시대 이후에는 비파호를 중심으로 호남, 호동, 호북, 호서 4곳으로 생활권역을 구분하고 있다.
 
▲ 시가현의 명물 백제사 본당에 이르는 단풍길     © 이윤옥

예부터 시가현은 관동지방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물론 지금도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특히 가을철 단풍명소로 꼽혀 단풍철에는 숙박을 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에 맞춰 “호동3산 순례”라든가 “호남3산 순례와 같은 유서 깊은 절 순례코스를 만들어 놓고 임시버스를 운행하는 등 지역 관관협회의 홍보도 매우 적극적이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11월 중순 나는 비파호의 동쪽에 있으며, 호동3산(湖東3山)에 속하는 고색창연한 백제사(百濟寺)를 찾았다. 
 
▲ 고구려 혜자 스님이 이곳을 찾았을 때도 고운 단풍철 이었을까?     © 이윤옥

“당산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 따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등이 참석하였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이 절에 주석하였다. 
 
가마쿠라시대 이후에는 천태별원(天台別院)으로 사세가 확장되어 1,300여명의 승려들이 거주 할 정도 대규모 사원으로 발전했으나 전국시대(戰國)의 거듭되는 병화(兵火)와 약탈로 절은 황폐화되어 갔다.

에도시대에 들어서 현재의 본당 (1650)건물이 완성되었다. 일찍이 대규모 사찰이었던 만큼 참도(参道) 양쪽에는 승방이 처마를 나란히 잇대고 있었는데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루이스프로이스는 1,000방(坊)의 건물이 소실(燒失) 된 것을 두고 ‘지상의 천국’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을 만큼 백제사는 그 역사가 깊은 절이다.” - 신록과 일본 홍엽백선의 고사《新綠と日本紅葉百選の古寺》 중에서-

위의 안내문 중에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라는 것이 이채롭다. 백제사 누리집(http://www.hyakusaiji.or.jp)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성덕태자의 스승인 고구려 스님 혜자가 태자의 인격과 지식을 쌓게 하려고 이루카(斑鳩)-나라(奈良)-우지(宇治)-시가라키(紫香楽)-코토(湖東)-코호쿠(湖北)-와카사(若狭) 등지를 데리고 함께 여행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태자의 길(太子の道, Dr-Prince Road)이라 부른다.
 
여기서 백제사 창건 유래를 보면 고구려 혜자스님이 성덕태자를 데리고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지금의 백제사 터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산 속에서 이상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빛을 쫓아 가보니 그곳에는 영목(霊木)인 삼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11면관음상을 조각하여 이 불상을 안치할 당우(堂宇)를 지은 것이 백제사의 시초라는 설명이다. 이때 백제사의 가람배치는 백제의 용운사(龍雲寺)가 모델이었기에 절 이름을 백제사로 지었다고 한다.

성덕태자라 하면 일본인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영웅 1호 인물이다. 그 태자를 고구려 혜자 스님이 곁에 두고 가르쳤다고 《조일일본역사인물사전,朝日日本歴史人物事典》에는 또렷이 기록해 두고 있다.

백제사는 시가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그 위치가 한국의 백제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시가현의 백제사와 한국의 백제를 잇는 이러한 위도는 우연이 아니라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륵이 이곳에 체류 하면서 절을 지을 때 관여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관륵 스님은 일본에 역(暦)・천문(天文)・지리(地理)・둔갑(遁甲(兵術))・방술(方術)・선인술(仙人術)을 전한 스님으로 602년에 일본에 건너가 백제사 창건에 관여한 것이다. 북위(北緯) 35도선을 백제사 측에서는 백제망향선(百済望郷線, Pecche Nostalgia Line)이라고 부르고 있다.
     
▲ 고국을 마주하고 지어진 시가현의 백제사, 지도에는 한국의 독도를 일본 땅 죽도(竹島)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 백제사 누리집: http://www.hyakusaiji.or.jp/contents/history/01.html)     © 이윤옥
   
일본최초의 여왕으로 불교를 적극 수용한 스이코왕 3년(595)에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혜자스님(慧慈, ? - 623)은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일본에 불교를 크게 일으킨 분이다. 백제사에 이어 일본 불교의 고향인 아스카의 법흥사가 완성되자 백제의 혜총 스님과 주석하면서 20년간 일본불교발전에 힘을 쏟다가 고구려로 귀국하였다. 스님은 귀국 후에 제자인 성덕태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퍼하면서 자신도 같은 날에 정토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이듬해 성덕태자가 사망한 같은 날에 입적하였다.

성덕태자와 고구려 혜자 스님은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시가현 오오츠시 사카모토 (滋賀県大津市坂本5丁目13-1)에 있는 서교사(西敎寺, 사이쿄지)는 성덕태자가 고구려로 돌아간 혜자스님과 혜총스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절로 유명하다.  
 
▲ 고구려 혜자스님을 그리며 성덕태자가 지은 서교사 단풍길     © 이윤옥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서로 그리면서 불법(佛法)을 펼친 아름다운 인연이야기는 후세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서교사 본당 마당에 내려서면 아름다운 비파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호수라기보다 바다같이 넓고 탁 트인 호숫가에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 할 때의 아름다움은 기가 막히다.

서교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백제사는 더러 한국인들도 찾아 가겠지만 서교사를 찾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간 이 절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절이 고구려 혜자 스님을 기려 지어진 절이라는 소개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일본 쪽 기록이 없었다면 교토에서도 두어 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서교사를 필자 역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는 서교사 경내를 이내 나오지 못하고 필자는 오랫동안 고구려스님 혜자와 더불어 혜총, 관륵 같은 고대 한국스님들을 떠올리며 서성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한국출신 고승들의 일본 내 활약상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이다.

시가현에서의 첫날은 백제사와 서교사를 둘러보았고 둘째 날은 호남3산 임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JR고세이 역에서 탑승한 임시버스는 맨 처음 목적지로 장수사에 내려 주었다. 국보답게 고색창연한 본당 건물은 세월의 무게를 두툼한 지붕으로 용케도 버티고 있었다. 장수사(長壽寺, 쵸쥬지)는 시가현 코난시(滋賀県湖南市東寺5丁目1-11)에 있는 절로 양변(良弁, 로벤, 689-774)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양변 스님이라 하면 백제출신으로 동대사 초대 주지를 맡은 스님이다. 재미있는 일화는 스님이 어렸을 때 어머니와 밭에 나가 있다가 매가 물고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어머니는 30년 동안 울며불며 찾아 다녔는데 매에게 물려간 양변스님은 동대사 이월당 앞 삼나무에 걸려 있었다. 이를 구해준 이는 백제 고승 의연스님으로 의연스님은 양변스님을 훌륭한 제자로 키웠다. 이후 나라의 동대사 주지를 거쳐 시가현의 장수사와 상락사를 창건했으니 대저 스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어디일까?
   
▲ 한국 고승들의 발자취가 서린 일본 시가현의 호남3사 / 선수사와 필자, 장수사, 호남3산 안내전단, 상락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 이윤옥
  
장수사에 이어 호남3산 임시버스가 내려 준 곳은 선수사(善水寺,젠스이지)이다. 임시버스로 각 절의 이동 거리는 10여분 정도였는데 선수사는 시가현 코난시 이와네(滋賀県湖南市岩根3518)에 있는 절로 나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은 백제 출신 행표스님(行表, 교효, 722-797)을 은사로 12살에 출가한 백제계 최징(最澄, 사이쵸, 767-822))스님이 훗날 천태사원으로 재건한 절이다.

특히 선수사는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아들인 50대 간무왕(桓武天皇)이 중병에 걸렸을 때 최징 스님이 이 절의 영수(霊水)로 치료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 몸에 병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선수사의 영험한 우물물을 마시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절이 고대한국과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싶은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상락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상락사(常樂寺, 죠라쿠지)는 시가현 코난시 니시데라(滋賀県湖南市西寺六丁目5-1)에 있다. 황실보호 사찰로 한때는 그 규모가 아성사의 오천방(阿星寺五千坊) 중심 사원이었으나 가마쿠라 시대로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되는 등 쇠락의 길을 걷다가 명치 정부 때 본당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날 답사한 3사의 이름을 쉽게 외우는 방법은, 선을 열심히 닦으면(善修寺) 장수하고(長壽寺) 항상 즐거운 일(常樂寺)이 생긴다는 식으로 외우면 좋을 일이다. 빠듯한 일정이었으나 한국계 출신 고승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활약상을 밝히고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의미 깊은 여행이었다. 백제사가 있는 시가현은 지금쯤 단풍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 찾아 가는 길
 
<백제사>
*주소:滋賀県東近江市百済寺町323(百濟寺, 햐쿠사이시)
*가는 길: JR니시니혼 비와코선(西日本 びわこ線)을 타고 오우에하치망에키(近江八幡駅)에서 내리면 백제사까지 가는 순환버스가 1시간에 1대씩 있다.(교토역에서 접근하는 방법)

<서교사>
*주소 :滋賀県大津市坂本5丁目13-1 (西敎寺,사이쿄지)
*가는 길: JR 코사이센 히에이잔 사카모토역(湖西線比叡山坂本駅) 앞에 나오면 서교사행 버스가 자주 있다.(시가현 오오츠역에서 접근하는 방법)
 
<장수사>
*滋賀県湖南市東寺5丁目1-11 (長壽寺, 쵸쥬지)

<선수사>
*滋賀県湖南市岩根3518(善水寺, 젠스이지)

<상락사>
*滋賀県湖南市西寺六丁目5-1(常樂寺, 죠라쿠지)

*이들 3사는 매년 가을 호남3사 순례 (11월 12일~30일) 임시 버스를 타면 경제적으로 알찬 순례를 할 수 있다. 매년 날짜가 다르니 확인하는 게 좋다.

*문의:滋賀県 湖南市 觀光物産協會, 일본 0748-71-2157 

▲ 일본 안의 다른 백제사들     © 이윤옥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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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1/15 [17: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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