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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청년 교토에서 큰스님되다
[현장] 교토 구로다니의 서운원을 연 종엄화상의 발자취를 찾아서
 
이윤옥   기사입력  2012/07/25 [01:35]
교토 구로다니 (京都市 左京区 黒谷町121)에 있는 서운원(西雲院, 사이운인)이 자리한 금계광명사는 일본 3대 문수도량으로 알려진 정토종 대본산으로 절을 연 법연 (法然, 1133-1212, 호넨) 스님은 전수염불(専修念仏) 스님으로 널리 알려졌다. 전수염불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경전을 파고들기보다는 일심으로 염불함으로써 성불한다는 사상을 실천하는 일종의 염불불교이다.

▲ 서운원으로 들어가는 금계광명사 큰 산문은 고려문(高麗門)으로 불린다 © 이윤옥
수은주가 36도를 오르내리는 교토의 더위는 무덥다는 말보다는 살인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정도였지만 더위를 무릅쓰고 7월 15일 구로다니에 있는 서운원을 찾아 나섰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18살의 나이로 조선에서 끌려와 갖은 고생 끝에 큰스님이 되어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종엄화상(宗厳 和尙,1575-1628)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어째서 교토의 구로다니에 조선인 승려 종엄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일까? 그 연원을 캐자면 1592년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20년 전 풍신수길은 16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궁궐을 불태웠으며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가고 죄 없는 조선인을 생포해갔는데 종엄스님이 끌려간 것은 바로 이때이다. 종엄은 18살 되던 해에 풍신수길의 가신인 오노기시게카츠(小野木重勝)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 조선인 종엄스님이 세운 교토 구로다니의 서운원 © 이윤옥

▲ 서운원 주지스님(하시모토)이 건네준 종엄스님의 약력 © 이윤옥

《일본전사(日本戰史)》에 따르면 오노기시게카츠는 6월13일 부산에 도착하여 7월 15일 평양 근처에서 전투를 했는데 종엄은 이듬해 1593년 9월 일본군이 퇴각할 때 끌려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엄스님의 고향이나 출생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고 다만 서운원이 소장하고 있는 대략적인 기록만 남아 있다.

《서운원연기 및 기진장(西雲院緣起および寄進帳)》이 그것인데 이에 따르면 일본으로 건너간 종엄은 풍신수길의 정처(正妻)인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 1549~1624, 일명 네네)의 시동(侍童)으로 12년간 지냈다.

잠시 여기서 주목할 것은 원문에 나오는 “北政所に侍える”라는 말이다. 직역하면 “풍신수길의 정처 곁에서 시동(侍童) 역할을 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이때의 시동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시종이나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볼 수 없다. 일본말이나 풍습을 잘 모르는 청년을 천하를 호령한다는 풍신수길의 정실부인 옆에 두게 했다는 것은 그가 사물의 이치나 문장을 잘하는 뛰어난 청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종엄의 나이 18살이고 풍신수길 정처인 네네는 44살이었다.

18살 청년 종엄이 네네 곁으로 보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서운원 연기기진장(西雲院 縁起寄進帳)에는 “宗厳天質、陰茎至小にして男事すでに絶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번역하면 “종엄은 원래 음경이 작아 남자 구실을 못한다.”라는 것인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종엄의 학식이 뛰어난 것을 탐하여 일부러 남자구실을 못하게 만들어

정처의 비서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종엄은 여기서 12년을 보내다가 정처인 네네에 의해 역시 풍신수길의 가신인 타키가와(滝川雄利, 1543~1610) 집으로 보내진다. 종엄의 나이 어느덧 서른 살 때의 일이다. 만석꾼 집안의 무장 타키가와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이 외동딸의 가정교사로 간 것이다. 그러나 17살이던 외동딸은 종엄과의 인연이 없었는지 얼마 안 돼 병으로 죽고 종엄은 이후 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 종엄스님이 출가한 절 교토 知恩院(치온인) 본당 © 이윤옥

서운원 문헌에는 “외동딸이 죽은 뒤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종엄은 어쩌면 18살에 끌려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고국산천을 그리다가 출가했을지 모른다. 종엄은 풍신수길 정처 곁에서 보낸 12년과 타키가와 집에서 보낸 몇 달을 포함하면 인생의 황금기를 속절없이 남의 밑에서 보낸 셈이다. 그 얼마나 갑갑했으랴! 그가 출가 후 훌훌 털어 버리고 정처 없는 운수행각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도 11년간이나 말이다.

1616년 41살 되던 해 종엄은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교토의 구로다니 동네로 들어와 초암을 짓고 일심으로 염불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계광명사 27대 주지인 료테키(了的)의 눈에 띄어 정토종 대본산의 징표인 자운석(紫雲石)을 하사받고 그 자리에 서운원을 번듯하게 짓게 되는데 종엄스님의 기도가 간절한 탓인지 이곳은 염불 소원성취 도량으로 전국에 알려져 그의 문하에는 이름난 제자들과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종엄스님은 이곳에서 12년간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53살 그리고 일본에 끌려온 지 36년 되던 해인 1628년에 조용히 서운원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생전에는 서운원이 천일염불도량(千日念仏惣回向)으로 이름이 났으나 사후에는 1만일기도도량(万日念仏惣回向), 3만일기도도량, 4만일기도도량(100년)으로 이름이 알려져 지금도 일심으로 기도하던 조선인 종엄화상의 뒤를 따르는 신도들로 줄을 잇고 있다. 스님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본당 앞 아담한 뜰에는 연꽃 화분 여러 개가 놓여 있는데 활짝 핀 연꽃 향기가 스님의 향기처럼 느껴졌다.

▲ 서운원 주지스님은 친절하게 종엄스님 무덤을 안내해주었다. 주지스님 뒤쪽에 둥글고 큰 무덤이 종엄스님 무덤이다.(오른쪽 두 번째) © 이윤옥

종엄스님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들어간 종무소에서 하시모토(橋本周現) 주지 스님은 시원한 보리차로 환대해 주면서 초대 종엄화상의 모국에서 찾아온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자료를 복사해주면서 본당 앞에 있는 종엄스님의 무덤까지 안내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주지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무덤가 곁으로 길게 심어진 삼나무 숲길을 걸어 나오는데 어디선가 매미들의 합창 소리가 우렁차다. 조붓한 길을 걸으며 문득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귓전을 스친다. 조선인 종엄스님이 예술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지만 불교라는 등불을 마음에 올곧게 밝히고 척박한 이국땅에서 일본인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으니 그 후손된 자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 세월이여! 종엄스님이여!

▲ 서운원 정문 앞길은 고즈넉한 삼나무 길로 양옆에는 공동묘지이다. © 이윤옥
<찾아가는 길>

일본에서 서운원을 찾아 가려면 구로다니콘케코묘지(黒谷金戒光明寺)라고 해야 통한다. 금계광명사 경내 안쪽에 서운원(西雲院, 사이운인)이 있다.

주소 : 京都府京都市左京区黒谷町121
전화 : 일본 075-771-3175

JR교토역에 가면 서운원 가는 버스가 많다. 그러나 승차장이 여러 곳이므로 한 곳만 설명하면 D-1 승차장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 가다 오카자키신사(岡崎神社)에서 내린 다음 왼쪽 골목길로 10미터쯤 가서 다시 왼쪽 길로 10여 미터 가면 금계광명사 로 들어가는 커다란 대문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문을 고려문(高麗門)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금계광명사란 팻말이 붙어 있다. 큰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절 안내판이 크게 보이는데 그 뒤쪽으로 가면 양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금계광명사 본당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극락교가 나온다. 이 극락교를 건너면 위쪽으로 삼중탑이 보이는데 삼중탑을 향해 오르다가 중간쯤 가면 왼쪽으로 <宿坊勢至>라는 팻말이 보이는데 이쪽으로 30여 미터 올라가면 서운원이 있다.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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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25 [01: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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