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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싫어할 권리
[정문순 칼럼] 애국가가 구속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먼저 생각해야
 
정문순   기사입력  2012/07/02 [13:48]
이석기 의원 입에서 나온 “애국가는 없다”라는 발언으로 한동안 세상이 들썩였다. 그의 애국가 발언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한 제명, ‘종북’보다 ‘종미’가 더 문제라는 발언에 이은 3연타석 홈런 쯤에 해당한다. 감히 애국가를 부정하다니. 역시나 빨갱이였어. 애국가 부정은 꼼짝없이 대한민국 부정이 되고 남한 체제 부정이 되더니 종북이라는 종착역으로 거듭 이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사람들을 내몰았다. 그러나 민족주의 중도좌파 쯤에 해당하는 통진당 계열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 등의 덩어리 집단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이 의원의 발언은 안익태 작곡의 현행 애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의원이 국가(國歌)와 국가(國家)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님은 아리랑이 애국가라고 말한 데서도 명백해진다. 빨갱이 사냥 당하기를 즐기는 듯한 본인의 처신 때문에 진실이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그의 애국가 발언은 사실 별스러울 것도 없다. 이 의원은 민중의 정서와 맞지 않거나 국민에게 묻지도 않고 위에서 부르기를 강요했던 떳떳치 못한 역사를 지닌 현행 애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표한 것일 뿐이다. 김구 선생 정도가 작사했어도 그의 거부감이 거셌을까. 

현행 애국가는 친일파 작곡가와 작사가(친일 개화파 윤치호로 추정)가 지은 것이라 태생부터 깨끗하지 못하다. 더욱이 애국가는 통치와 강요의 역사를 지녔기도 하다. 독재자가 딴 짓 하고 있는 동안 국민들은 애국가가 들리면 가던 길을 멈춰야 했고, 영화 보러 극장에 가거나 야구장에 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불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반면 아리랑은 민족보편적인 감수성이 서려 있고 누가 시키거나 위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지어 불러 왔다는 점에서 격이 다르다고 느끼는 건 지당할 수 있다. 

설령 애국가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오더라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애국가가 싫다고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애국가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대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 국가가 나올 때 그 나라 선수들 중 몇 명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거나 딴전을 피우기도 한다. 한국 선수가 그랬다간 당연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출생을 따지자면 국가는 전적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국민국가들은 형성 과정에서 대부분 외세와의 전쟁이나 구체제와 내전을 치렀다. 국가에는 고스란히 그런 과정이 담겨 있으며, 국가 중 상당수가 군대 행진곡 기풍이 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많은 나라의 국가 가사에서 등장하는 말은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는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의 극치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 자유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자유이며, 설령 개인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국가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자유이다. “피 흘려 독립을 얻었다. 네가 누리는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의 자존과 독립이 먼저이다” 식의 ‘협박’이 국가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애국가도 온통 국민의 충성 다짐밖에는 없다. 개인의 자유는 오간 데 없고 네 자유를 지키려면 목숨 바쳐 나라를 떠받들라고 나라가 요구하는 노래를 떠받들지 않을 권리는, 내게는 숨 쉴 권리만큼이나 소중한 자유이다.

여러 나라 국가를 찾아 들어보다가 대한민국 국가는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후지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국가들은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통민요 가락을 존중하고 있거나, 낙오자 없이 모두 합창하기 쉽게 간결한 가락으로 만들었거나, 예술 작품에 견줄 만큼 공력을 들인 것도 있다. 차라리 친북이라 몰릴지언정 내 귀에는 북한의 국가가 훨씬 더 깔끔하고 무난하게 들린다.

국가를 해당 나라의 국민들만 아낄 것 같지만 국가 중에서도 명곡으로 꼽히는 것들이 있다. 프랑스, 중국, 멕시코의 경쾌한 군가풍 국가, 목동이 고즈넉이 부르는 동요 같은 웨일즈 국가, 특히 한 마리 학이 비상하듯 황홀한 아르헨티나 국가가 내 나라의 국가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애국심이 모락모락 솟아날지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애국가를 나쁘게 말하거나 부르지 않을 자유를 누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 본문은 경남도민일보 6월 27일 게재 칼럼을 수정한 글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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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02 [13: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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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4 [21:36] 수정 | 삭제
  • 맨위 첫줄은 잘못 ---> 애국가는 없다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국가'가 없다.
  • 2012/07/14 [21:21] 수정 | 삭제
  • 여러 나라 국가를 찾아 들어보다가 대한민국 국가는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후지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국가들은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통민요 가락을 존중하고 있거나, 낙오자 없이 모두 합창하기 쉽게 간결한 가락으로 만들었거나, 예술 작품에 견줄 만큼 공력을 들인 것도 있다. 차라리 친북이라 몰릴지언정 내 귀에는 북한의 국가가 훨씬 더 깔끔하고 무난하게 들린다.

    ---> 맞는 말입니다. 태극기도 좀 문제가 있어요. 문맹률은 거의 제로지만 태극기 제대로 그리라면 역시 제로에 가깝거나 기껏해야 10% 안쪽일 겁니다. 국민이 그릴 수 없는 국기는 국기가 아니지요. 너무 어렵게 만든 것은 국민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 아리랑19호 2012/07/04 [18:55] 수정 | 삭제
  • 좋은 글입니다. 이런 시각 이런 입장을 기대햇는데 소낙비 처럼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