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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한국의 눈으로 평가해야
[쟁점] <'탈아론' 후쿠자와유키치, 침략의 원흉만은 아니다!”>를 비판함
 
이윤옥   기사입력  2010/12/11 [12:13]
2010년 11월 26일 자 프레시안의 “'탈아론' 후쿠자와유키치, 침략의 원흉만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어 나는 단숨에 읽었다. 제목만 들여다보면 마치 한국사회에서 후쿠자와라는 인물이 침략의 원흉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글쓴이 김동기 씨는 철학아카데미 상임연구원이란 직함을 가진 사람으로 그는 말한다. “중국은 청조가 붕괴되고 나서야 열강의 침략에 대한 중국적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은 명·청 교체기와 청조의 조선 지배 이후 보여준 왜곡된 양상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주적 대응을 상실했다.”고 말이다. 비비 꼬았지만 쉽게 말한다면 조선왕조가 빨리 무너지지 않아 ‘자주적 대응’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민의 정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조선왕조가 있어서 대응을 못 했다고 보는 견해와 또 다른 하나는 외부세력이 600년 사직인 조선왕조를 무너뜨리려고 해서 자주적 대응이 안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을 지나친 채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김동기 씨처럼 ‘후쿠자와는 침략의 원흉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 초상화     © 위키피디아
그는 이어서 “우리에게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한 이론, '탈아론'으로 유명한 후쿠자와이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누구보다도 조선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낸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개화파를 중심으로 조선 사회의 문명화에 많은 기대를 했고, 물질적 지원도 마다하지 않은 경력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후쿠자와를 침략의 원흉으로 무조건 매도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


어디서 많이 들어 봄 직한 말 같은데 바로 일본인들이 입만 열면 해대는 말이다. 후쿠자와가 침략의 원흉이 아니라면 조선의 은사라도 된단 말인가! 일본의 식자들은 말한다. 김동기 씨처럼 말이다.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는 조선독립을 위해 일한 사람이라는 투의 책을 일본은 오늘도 앞다투어 찍어 내고 있으며 많은 우익은 이에 동조한다. 

정말 김동기 씨 말처럼 후쿠자와는 조선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따스한 눈으로 아시아인을 보듬은 인물인가! 후쿠자와가 마치 아시아인을 사랑한 듯한 제스처에 대해 일침을 가한 사람은 재일사학자 금병동 씨이다. 그는 임진, 정유재란 때 풍신수길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다가 교토 풍국신사 앞에 묻어 놓은 잔악한 사건을 평생 파헤친 사람으로 1898년 3월 22일 일본 일간지 지지신보(時事新報,1882.3.1 후쿠자와 창간) 사설에 실린 ‘'지나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글의 의미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후쿠자와가 조선을 도운 사람이라는 말이 나도는가? 김동기 씨 글에서는 유감스럽게 이 말의 본뜻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다.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일본판 위키피디어사전에는 ‘조선독립운동지원’이란 소제목으로 후쿠자와를 치켜세우고 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이 제목은 그러나 후쿠자와가 살다간 시대만 추적해도 금방 불순한 의도의 글임을 알 수 있다. 후쿠자와는 하급 무사집안 출신으로 1835년 1월 10일 태어나 66살을 살다가 1901년 2월 3월 죽은 인물이다.

1901년에는 풍전등화이긴 하지만 엄연히 조선왕조가 존재하였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은 후쿠자와가 죽고 9년이나 지난 뒤인 1910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러한 시기에 후쿠자와가 ‘조선독립운동지원’을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위키피디어는 말한다. ‘후쿠자와는 조선인 애국자 김옥균이 찾아와 조선독립을 도와달라고 하자 조선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후쿠자와가 뭘 어떻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도왔다는 내용은 없다. 여기서 혼동하면 안 될 말이 있다. ‘후쿠자와의 조선독립운동지원’과 1910년 일제 강제병합 후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 바쳐 투쟁하던 그 ‘대한독립운동’은 전혀 다른 뜻을 품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후쿠자와의 이른바 ‘조선독립운동지원’은 조선왕조 타도가 그 목적이라는 점을 지나치면 안 된다.

2010년 8월 10일 나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 답사단과 함께 일본 기타큐슈의 조선인 강제연행 탄광을 비롯하여 나가사키 인권박물관, 교토 단바망간기념, 우토로마을을 거쳐 도쿄 야스쿠니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바 있다.

그때 일본인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유일의 가해역사를 기록한 오카마사하루기념관엘 들렸는데 국가지원 없이 순수 민간인의 십시일반으로 지은 다소 비좁은 기념관 안 2층 계단 입구에서 한 장의 커다란 후쿠자와유키치 사진과 맞닥트린 적이 있다.

기념관 사람들은 후쿠자와유키치를 침략의 원흉으로 보고 있었다. 

▲ 일본의 고액화폐인 1만엔권에 잇는 후쿠자와 유키치     © 위키피디아
또한, 악명 높은 도쿄 야스쿠니신사 안의 전쟁미화 기념관인 유슈관 2층 전시관 벽면 가득 후쿠자와 일행의 이른바 선진서구문명 시찰을 마친 그림도 본 적이 있다. 아직 근대화라는 문명의 등불이 일본을 확연히 비추기 전 명치정부는 후쿠자와 유키치, 이토오 히로부미 등을 포함한 신사유람단을 서구에 보내 발전한 서구문명을 배워오게 한다. 조선으로 말하면 갓 쓰고 짚신 차림의 세상에 살다가 맞닥트린 영,미국의 문명은 한마디로 후쿠자와에게는 쇼크 그 자제였다. 후쿠자와 일행은 귀국길에 들른 싱가폴의 한 식당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미개한 나라 조선을 포함한 지나인(중국인) 등 아시아인들을 집어 삼키고(탈아론) 이를 토대로 서구로 진출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귀국하여 착착 일을 진행 시켜 나간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 ‘미개한 나라 조선’ 사람들만 이러한 사실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여 마치 후쿠자와가 조선을 도운 양 말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한 술 더 떠 김동기 씨는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후쿠자와를 모르는 한국인들을 향해 ‘극복되지 않는 근대성’이라고 비판한다. 정말 그럴까? 후쿠자와가 김옥균을 도와 조선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은 사실을 두고 근대성의 결여라고 붓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한국인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다.

이는 마치 안중근에게 저격당한 이등박문을 다시 봐야 한다는 말이며 이등박문 손에 이끌려 일본 땅으로 끌려가던 11살의 영친왕에게 눈깔사탕 하나 사준 일이 있다고 이등박문을 침략의 원흉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과 같다. 

역사를 보는 눈은 부분을 넘어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코끼리 다리만으로 코끼리를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평가하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다. 그러나 입만 열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애쓴 일본의 공덕을 알아주지 않는 조센징’이 서운하다는 일부 못된 일본인들의 말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는 옳지 않다. 

후쿠자와에 대한 평가 역시 일본인들의 잣대가 아니라 한국인들의 잣대로 재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은 거듭 강조하지만 후쿠자와가 김옥균을 도와 조선왕조 타도를 위한 ‘조선독립운동지원’을 했다는 말과 1919년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조국의 광복을 되찾는 날까지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대한독립운동’을 제발 혼동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상의 자유 이전에 빼앗긴 나라를 구하려고 죽어간 수많은 이 땅의 애국지사와 후손들을 모욕하는 말이며 더 나아가 일본의 조선 강탈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붓놀림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바탕을 제대로 읽어내야 하는 점이다.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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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11 [12: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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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물인 2010/12/24 [08:42] 수정 | 삭제
  • 아 그래서 어떻다구..잘 안들리네..
  • 2010/12/14 [16:53] 수정 | 삭제
  • 그걸로 본문을 안 읽었다는 결론이 나오나? 안 나오나?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렴.

    읽는 사람에게 본문이 중요한 거 같으냐? 이름 외우는 게 중요한 거 같으냐?
    만일 둘 중에 하나를 희생한다면 너같으면 본문을 희생하고 이름만 간직하겄니?

    본문에 대해 (이씨글이나 내 글이나) 말을 해라. 너도 좋고 윤씨나 이씨도 좋으니까. 잎사귀 붙잡고 앵앵거리지 마라.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아야지?


    그 방법은

    여기 대해
    "어드런게 어때서 바른 논지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구체적 제시를 하는 거야.


    이 글을 쓴 사람은 윤(이) 씨 일 가능성이 1% 정도는 된다.
    본문 쓴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나는 감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야.

    만일 본글 쓴 분이라면 태연하게 나오시오. 필요하면. 나는 예의는 바른 사람이랍니다. 이 댓글 녀석들이 헛소리를 돌아가며 음해를 하니 그런 거지 필요한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없고~



    논지가 뭐냐 그러는데
    나는 제3자로서, 느낌까지 밖에 쓸 수 없고 쓸 필요도 없고
    맨 위의 요거 하나가 달랑 논지야. 요건 말해주고 가야지.

    더 쓸 일이 없는 것인데

    자꾸 댓글쟁이들이 내 글이 모호하다고 걸고 넘어지며 오독하며 구체적 적시 없이 비방 음해 위주의 글을 쓰니 결국 비철학자 탓이라 공표하고 길어진 거지.

    이의를 제기해야 돼요. 물어봐야 돼요 ??표 쓸 줄 알지요? 이건 토론 상식이고 예절이고..내 댓글의 흐름을 주욱 한번 보시오. 혹 시간 있으면.
    그대들 알듯이 세상이 이분법도 아니고 이 글 내용에 관해 찬반 이분법만 가능한 게 아니예요. 그래 내가 귀이고 등짝이라 시작한 건데

    이걸 김-이 둘 중에 하나가 틀림없이 코끼리라 그러고 나는 어느 쪽인가를 검증해야겠다고 졸라대니 그것도 비열하게 일체의 적시도 없이 마녀사냥을 하며..



    나는 동쪽을 가리켰는데 전부 서쪽을 보고 있더라고. 이런 황당한 경우가...어째 이런 류의 문제인 것 같아서 앞에서 이미 우리는 말이 부족하다, 4년 동안 "그게 아니라~" 만 하고 나온 예를 들어놓은 것인데 문서 가독률 얘기도 했고 아주 고대로 따라하는구만 오독에 선입견에....



    이 정도 됐으면 본글 쓴 필진이든 했으니 김 씨든 누가 나올 만도 하건만

    다시 보니 앞부분에는 이 씨라고 잘 썼구먼 그래. 이 윤옥인가 윤 이하는 좀 발음이 어려워 몇 번을 고쳤는지 몰라요.

    참고로 아직도 이러면 곤란해요.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감정적이고 단순 (예를 들면 2분법)하다는 거예요. 이 이슈는 둘 중의 하나다 이러고 글쓴이부터 독자까지 미리 틀을 정해 놓고 시작해 김씨의 의도도 비뚤어매고 여기 있는 나까지 내가 아니라는데도 이분법에 끼워맞출려고 하고, 이런 선입견이 있으면 안돼요. 알려진 이런! 소통도 전혀 안하고 (나중에 김 씨의 재반론이라도 들어볼 요량이라도 있는지?)

    내가 옛날에 사람은 손가락만 해도 10개라는 글을 최초에 들어오면서 정문순 위원 잎으로 제목을 붙여 쓴 게 기억나는데 찾아 보시오. 맨 앞에 있는 거요.

    하나도 안 변하는구만!!!!!
    이건 이 윤옥 여사가 기여한 거예요. 구체적으로 by 안 나타나고, 재반론 요청도 안하고 숨어 있으면서.. 토론을 제한하는 대자보도 그렇고. 옛날에는 무한대로 토론을 하던 곳이었는데..이건 변했군. 토론기술만 늘어도 바른 추론 (reasoning)에 가까와질 수 있을 텐데

    댓글들은 아마 한승조와 비교를 한 모양인데
    한 승조와는 좀 다를 텐데...다른 면이 있는 걸 혹시 알게 되면 알겠구먼. 나는 주로 미래에 대해 얘기를 했다는 것. 여러가지 태도에 있어서도 그렇고 시혜론도 부분적으로만.


    ps. 그리고 제목 누가 다는지 모르겠는데 즉흥적으로 달지 말고 몇 초라도 좀 생각을 거쳐 함축적으로 달아라. 제목서부터 내용을 맞춤복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는 거야. 제목은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2분법이 강세를 얻나? 주입식이나 OX는 아니지 않아요? 내용보다는 좀 범위를 넓게. OK?

    독자를 편안하게 "스스로 생각하며 읽게 해서" 인정을 받으세요. 그냥 집어줄라고 하지 말고. 우중 약졸이 됩니다. 다른 매체의 제목과도 한번 비교해 보세요. 다른 매체는 지나치게 함축적이어서 매치가 안되고 허황된 것도 있는데 대자보는 가장 직접적인 편에 속해요.

    나는 대자보의 목적이 뭐인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궁극에는 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래야 읽힐 테니? 2분법 독자를 통해 이룰 수 있는 목적이 뭐가 있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종교집단도 아니지 않아요?

    김영호 고문의 글이 가장 연륜의 무게가 묻어나는 건 내용도 좋지만 제목도 알맞게 함축적이예요.

    그리고 벼리님 글도 필요한 때 필요한 글을 쓰고 시원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 2010/12/14 [16:46] 수정 | 삭제
  • 시간날 때 밝혀 줄 테니 반드시 보고 가라. 반론할 주제는 안될 테니까. 그녀석 라는 제목을 세웠으면

    하고 을 하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떠들더니 끄트머리는 장엄하게 ?

    나한테 한 말이냐? 독자들에게 (폼 잡을려고) 한 말이냐?
    이명박이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외국가서 외국인에게 하는 거랑 똑같군. 그러니 대통령 수준이나 국민 수준이나 똑같은데 어떻게 어느 국민이 감히 (민주주의?) 대통령의 정치를 비판을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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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말하는지 논지는 분명하게.... 중립자 10/12/14 [06:58]



    1)후쿠자와가 예언하길 조선이 왕조 타파 후 근대 국가(김동기 씨가 말하는 근대성극복?)를 못 이루면 조선은 서양에게 먹힌다고 한 말은 막말이며 조선을 깔보는 말이요, 저주의 말임을 깨달아야한다.

    후쿠자와는 말한다.'국민을 못 지켜주는 나라(왕조)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이다. 맞는 말 같지만 건방진 말이다. 일부 부패가 없는 정권이란 유사이래 없으며 조선을 지가 언제 알았다고 그런 말을 감히 하는 것인지.. 김옥균 일파를 통해 겨우 인식한 게 그의 조선왕조 600년 사직에 대한 정보의 전부다.

    조선말기 조정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후쿠자와 손을 빌려서 까지 타도해야할 정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집안에 늙은 꼰대(아버지,죄송)가 있어 집안 발전이 안되니 니가 와서 좀 해치우라는 것과 같다. 후쿠자와 생각의 깊이를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치정부와 일본 국민 개조에도 바쁜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조선을 보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불가능 했다고 본다. 김옥균을 통해 그 짧은 시간에 조선이란 나라를 이해한 것도 역부족이었다.후쿠자와가 서양 유람을 하고 외람된 눈으로 동양을 본 것은 일본에게도 불행이다. 수백만명의 일본병사가 전장터로 나가 총알받이로 된 것에 대해 일본에서도 후쿠자와를 곱게 보지 못하는 판에...

    2)후쿠자와의 개똥철학 곧 서양에게 먹히느니 우리(일본)가 먹어주겠다를 그가 죽은 후 일제가 조선침략의 발판으로 삼은 것을 기억하라! 조선왕조 밑에서 초근목피로 사느니 이밥에 고깃국 먹여준다고 했으면 그대로 실행했어야지...왜 군산항으로 조선의 쌀이란 쌀은 다 실어 간 것인지...왜 백성들을 전장터로 강제 연행 한 것인지...왜 아리따운 조선 처녀들은 군홧발 밑으로 내 몬 것인지...1905년 철도부설은 군수물자용으로 건설했음에도 입만 열면 조선의 근대화를 위했다고 하는 저들과 계속 시비하지 않으려면 피해자 한국인의 일제수탈과 침략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한다.

    특히 이 공간에서 토론은 좋지만 문장 꼬투리 잡는 일은 그만두고 글쓴이들이 무슨 철학으로 글을 썼는지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對 일본관'이 서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다수 한국인들이 금세기에 경험한 치욕의 역사에 물타기 하기를 중지하라.



  • 한심 2010/12/14 [16:22] 수정 | 삭제
  • ㅎ 씨는 여기 댓글 마당을 도배하는군요.
    그럴거면 기사를 하나 쓰는 게 좋지 않나요?
    흥분하지 말고...
    ㅎ 씨의 가장 큰 문제는 남의 성을 바꾸어놓는 오류입니다.
    사실관계의 기본은 거기부터 아닌가요?
    글을 쓴 사람은 분명 이씨인데 왜 윤씨로 둔갑했나요?
    남의 성을 바꿨다면 그 글도 정독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러고도 올바른 논지의 댓글이 나올 수 있나요?
  • 2010/12/14 [10:44] 수정 | 삭제
  • “청나라와 조선은 근대화를 거부하고 유교를 중심으로 한 구태의연한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청나라와 조선은 일본의 명치유신처럼 정치변혁을 꽤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양국은 수년 내에 망하여 서양제국에 분할 될 것이다.”
    “서양인들이 일본을 인식하기를 ‘청나라(당시)와 조선’ 처럼 동일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좋지 않다. 이들 나라와 일본이 동일시 되는 것 자체가 ‘일본 최대의 불행’이다. 악우(惡友)를 가까이 하는 것은 함께 악명(惡名)을 면치 못하는 일이다. 나는(후쿠자와) 마음속으로 아세아의 악우(惡友)(조선, 청나라)를 사절(謝絶)한다”

    ---> 이것은 후쿠자와가 한 말이 아니라 당시 세계정세가 서구문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인을 시켜 한 말이다. 미국군함이 앞바다에 와 개항하자 하니까 깜짝 놀라 1년간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고 1년 뒤에 오니까 바로 개항했다. 그 덕으로 세계추세를 타게 됐으니 그 이후 사건전개는 일종의 불가피성이 있다. 후쿠자와라는 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숲을 보아야 한다. 그 결과로 동(남)아에서 경원시되었으니 피장파장이고..

    참고로 나는 당시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이 후쿠자와의 글에서 아무 문제도 발견 못하겠다. 이건 우리끼리 하는 얘기다. 우리끼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본다. 이렇게 말하고 애국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안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이 글에 흥분하는 사람은 100% 이라 본다. 현대에 애국은 정서가 아니라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애국하는 법이 따로 있다)


    한 나라의 역사 (과거)는 그 나라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한다. 좋은 나라 나쁜 나라는 없다. 신도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일본책임론을 강조하려면 최소한
    일본의 입장에서 탈아론 말고 침략을 않고 어떻게 아시아를 보듬으며 서구 제국주의의 진행기에 아시아와 공동발전을 모색할 방법이 있었겠는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비록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이것이 내가 유윤옥 씨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르긴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 하나는 인정한다!! 한일간 역사학자 세미나 같은 데서 후쿠자와 등의 문제를 다룰 때 한국측 학자는 난감할 것이다. 나야 여기 나갈 일 없으니 발표할 것도 없어 다행이지만.

    일본 시혜론도 100%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게 내 입장인데 뭐 과거사가 다 골치 아픈 것이니까


    나는 저 위에 후쿠자화 공부한다는 학생이 예로 든 후쿠자와의 상식적인 발언, 또 밑에 댓글쟁이들도 마찬가지고... 이런 피상적 수준에서 말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우리끼리는 하고나서 일본 앞에 가서는 후쿠 나쁜 놈 왜 아시아를 위해주지 않았냐? 하고 따지는 작전이라면 장래성이라도 있는데, 우리 자체 내에서 저렇게 100% 일본 책임으로 돌려버리면 나는 더 걱정이고 일본은 더 안심할 것이다. 할 때 일본이 더 긴장할 것이다.

    물론 이 자신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제일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일본에게 보이면서 생기는데 그것은 남북화해다. 느이 일본보다는 북한과 더 가깝다는 것을 보고 믿게 해 주는 것이다.

    일본이 아직은 양심이 있어 따지지는 않고 있지만 조만간 이렇게 나올까봐 걱정이다. 그때 "응, 그야 일본이 친구지." 하는 매국노가 나온다면 지금 중립자나 잘나가다 같은 독해력조차 없는 자기도취적인 사람들 속에서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겉으로 후쿠 나쁜 놈 일본 나쁜 놈 하면서 사실상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것은 일본이 볼 때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일본은 남한인이 속으로 일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말로만 자존심 때문에 한일문제 나오면 열을 낸다는 사실을 일본은 뼛속깊이 60년간 체득하고 있다.

    박정희 때 국교를 열고 처음 서울에 온 일본인이 속으로 걱정하면서 택시기사에게 물었는데 "일제시대 어땠어요?" 하고. 기사의 대답은 "아이고, 그때가 좋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니까 구로다 같은 사람이 방송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일본 시혜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 방송에 나가서는 절대로 이렇게 못한다.

    내가 예전에 이 문제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내가 그때 방송에 패널로 같이 있었다면 서서히 일어나서 노려보면서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엉덩방아 찧게 만들겟다고 했다. 이 방법 밖에 없다.

    하고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학회에서 되도록 후쿠자와는 주제로 잡지 말아야 하지만 만일 잡혀서 떠들어 봐야 생산적인 얘기는 나올 것이 피차 없다. 흥분할 일도 없고 금기 주제 정도로 하면 되고 후쿠는 느이들에게 중요한 사람이니 우리는 주제로 잡지 않겠다 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국가간 관계나 개인관계나 똑같은 것이다. 유윤옥 씨가 5명 그룹에 포함돼 공동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중립자니 잘 나가다니 같은 4명의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기계같은 저능아들이 들어왔다. 짜증이 나고 미치겠다. 과제기한은 다가오는데 진행이 하나도 안 되고 선생 (세계정세)은 재촉한다...급기야 험악한 얼글이 되어 부려먹기 시작하고 구타도 하고 속이고 갈취도 한다. 이것은 세계인류의 인지상정이다. 당시의 청과 조선이 이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죽자고 중국을 따라해 온 나라이니까. 망하는 것까지도.

    대원군 하에서도 청은 그래도 여러 나라들이 들어와 있어 실학파가 다 청에 대한 사신단에 끼어 열심히 서양문물을 배워 간 것이고 천주교, 기독교가 다 있었다. 우리만 철저한 쇄국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섬이다보니 가장 먼저 서양 배가 들른 것인데 그네들이 1년 동안에 사태를 재빨리 파악한 것은 놀랍다. 서구와 같이 영주가 있는 그들의 봉건제도가 변화 수용에 훨씬 유리했던 것 같다.이걸 가지고 인물중심으로 후쿠자와를 존경할 필요도 질투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인물일 뿐.

    김옥균 얘기는 근대성과 관련해 나온 것이니 거기서 그치면 된다.
  • ㅎㅎ 2010/12/14 [08:50] 수정 | 삭제

  • ㅎ 님의 말씀대로 다시 댓글을 안다는 것은 하고 가버린 사람으로 여기셔요.

    그 사람들이 ㅎ님 말씀대로 예의바르게 하겠어요?
    두번 안 나오면 그런 것이겠지요... 아니면 기다려 보시구요. 딱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윗 분들은 아마 출근하시는 분들인가 봐요? 벌어먹고 살려고 직장에 가는 분들...8시46분 현재 저 처럼 백수는 이 글을 쓰지만 지금 시각이란 산업 현장에 가 있을 시간이지요. 좋은 대학 나와 몇해 째 취직 안돼 이러고 있는 것은 누구 잘못일까요? ㅎ님 ! 혹시 후쿠자와 그 자슥? 부러운 출근자들이 돌아 오는 밤을 기약하지요?
    백수 지만 저도 할 일은 있으니까.. 그럼 밤에 뵈요... 저 나갑니다.
  • 2010/12/14 [08:36] 수정 | 삭제
  • 나라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일뿐 ... 모두 좋은 열정..

    --->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쿠자와를 희생양 삼아 자신이 현재 나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 것입니다.

    주자가 감정의 분노는 있으면 안되고 지성의 분노는 없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저렇게 100년도 넘은 인물에 대해 감정의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애국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후쿠자와를 어떻게 할 거냐? 하고 물었더니 다 도망을 갑니다.
    100여년 전에 우리가 국치를 당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국치를 당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후쿠자와를 포함한 당시 일본과의 관계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지금 무엇을 할지를 모르는 것이 진정한 국치인 것입니다.

    35년 나라를 뺏긴 건 세계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몇 백년씩 나라를 뺏긴 국가가 얼마든지 있고... 현재가 문제입니다.

    이라.. 하하.. 역사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개별적 사건들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수두룩 할 것이라... 내 입장은 후쿠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을 주창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당시 상황이...

    내가 맨 위에 썼는데 탈아론은 당시 세계정세 속에서는 충분한 배경이 있습니다. 너무 인물 위주로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내가 맨 위에 썼는데 귀도 있고 등도 있고 꼬리, 코, 다 합쳐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귀나 코만 가지고 코끼리가 되지 않으니 흥분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일본사회는 이 다양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2분법으로 나뉘는 게 정답인 줄 알고 악을 바쳐 싸우고, 현재의 행동은 가령 통일운동 같은 것이 단합일치해야 하는데 이건 또 다양성이 있습니다.관심도 없습니다.거꾸로 하는 것이죠.

    음... 후쿠자와를 지금 나쁜 놈으로 매도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요? 100년 전 과거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는 게 지금 애국자의 도리다 하고 자빠졌으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100년 전 일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습니까? 왜 여기에 비생산적으로 몰두하는지 모르겠어요.

    후쿠자와는 그들 사회의 일종의 선구자이고 사상가였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증요!!) 왜 우리가 일본 놈 모방을 하며 후코자와론을 일본과 붙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절대로 일본이 중요시하는 만큼 우리가 후쿠자와를 중요시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알면 됩니다.
  • 2010/12/14 [08:03] 수정 | 삭제
  • 왜 다들 도망이야? 어느 사람이라도 나와 봐.

    내 글을 어떤 구체적 부분을 제시하며 논점을 맞춰 반론을 주고받을 생각을 해야지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혼자 중얼거리다 가니 뭔 선언하러 나왔나? ...그게 토론인가?

    논지를 흐린다니 무슨 논리를 어떻게 흐렸는지 구체적으로 말을 해야지 웅?

    내가 후쿠자와에 대해 뭐라고 한 것이 문제인가 물어도 말도 안하고..

    저 중립자란 사람이 대표적인데 라?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근데 도망을 가버리니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나?

    잘 나가다가는 또 누구야? 같은 사람이야 뭐야? 왜 다들 도망을 가면서 선언을 하나? 잘 나가다가가 한 소리도 또 무슨 소리인가? 할배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할배 얘기 하던가? 논리적 비약은 또 뭐야? 자네가 한 게 논리적 비약 아닌가?

    그나저나 다 도망을 가버리니 ㅎ 그럴려면 하고 나와야지.. 왜 건들고 도망가나?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군.
  • ㅎㅎ 2010/12/14 [07:52] 수정 | 삭제
  • 나라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일뿐 ... 모두 좋은 열정....

    모처럼 대자보에 이런 열정이... 영원한 한민족의 테마 '일본'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함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서로의 글에 칭찬과 위로를!

    ㅎ님은 상당한 실력가 이신듯...

    알기 쉽게 밝은 지면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후쿠자와 인물론'을

    한 번 써주시면 속이 후련 할듯... 이건 진심...
  • 2010/12/14 [07:29] 수정 | 삭제
  • 구체적으로 해라. 응?

    그녀석 미꾸라지 처럼 도망가며 음해하는 것만 도가 텄군.
  • 2010/12/14 [07:25] 수정 | 삭제
  • ㅉㅉㅉ 120년 전에 났으면 애국자도 할 사람이군...

    지금의 자네는 아무 것도 아니다. 위선자일 뿐!
  • 잘나가다가 2010/12/14 [07:24] 수정 | 삭제
  • 싸운다. 두 사람이...

    '니네 할아버지가 문제다'라를 가지고 다투다가

    상대방이 '그런데 니 할배는 뭐가 잘났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우리 할배도 문제다'로 돌아선다.

    그래서 논지를 흐린다.

    이 경우 논지를 흐리지 말자고 누가 한 소리하면

    또 덤빈다.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그 할아버지를 봐야한다'고...

    음....

    그 못된 할아버지를 알기위해서

    많이도 알아야하는 주변 이야기......

    가장 쉽게 10살 아이가 그 할배에 대해 물을 때 나오는 답이

    명답이다.


    그 나머지는 없어도 있어도

    그 할배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 2010/12/14 [07:10] 수정 | 삭제
  • 그래 후쿠자와 욕하면서




    요렇게 하는 것이 자네의 목적인가? 탈아론은 후쿠자와가 안 햇으면 다른 일본인이 했어. 후쿠가 세계냐? 우주야? 그 사람 없으면 어쩔 뻔 했나?

    현재에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은 기만이야. 후쿠자와를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나? 그거나 제시해 봐라.
  • 2010/12/14 [07:02] 수정 | 삭제
  • 무슨 소리요? 내가 후쿠자와에 대해 뭐라고 했는데? 그거나 말해 보쇼.

    이거 흥분만 하면 애국자인 줄 아나?
  • 중립자 2010/12/14 [06:58] 수정 | 삭제

  • 1)후쿠자와가 예언하길 조선이 왕조 타파 후 근대 국가(김동기 씨가 말하는 근대성극복?)를 못 이루면 조선은 서양에게 먹힌다고 한 말은 막말이며 조선을 깔보는 말이요, 저주의 말임을 깨달아야한다.

    후쿠자와는 말한다.'국민을 못 지켜주는 나라(왕조)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이다. 맞는 말 같지만 건방진 말이다. 일부 부패가 없는 정권이란 유사이래 없으며 조선을 지가 언제 알았다고 그런 말을 감히 하는 것인지.. 김옥균 일파를 통해 겨우 인식한 게 그의 조선왕조 600년 사직에 대한 정보의 전부다.

    조선말기 조정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후쿠자와 손을 빌려서 까지 타도해야할 정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집안에 늙은 꼰대(아버지,죄송)가 있어 집안 발전이 안되니 니가 와서 좀 해치우라는 것과 같다. 후쿠자와 생각의 깊이를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치정부와 일본 국민 개조에도 바쁜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조선을 보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불가능 했다고 본다. 김옥균을 통해 그 짧은 시간에 조선이란 나라를 이해한 것도 역부족이었다.후쿠자와가 서양 유람을 하고 외람된 눈으로 동양을 본 것은 일본에게도 불행이다. 수백만명의 일본병사가 전장터로 나가 총알받이로 된 것에 대해 일본에서도 후쿠자와를 곱게 보지 못하는 판에...

    2)후쿠자와의 개똥철학 곧 서양에게 먹히느니 우리(일본)가 먹어주겠다를 그가 죽은 후 일제가 조선침략의 발판으로 삼은 것을 기억하라! 조선왕조 밑에서 초근목피로 사느니 이밥에 고깃국 먹여준다고 했으면 그대로 실행했어야지...왜 군산항으로 조선의 쌀이란 쌀은 다 실어 간 것인지...왜 백성들을 전장터로 강제 연행 한 것인지...왜 아리따운 조선 처녀들은 군홧발 밑으로 내 몬 것인지...1905년 철도부설은 군수물자용으로 건설했음에도 입만 열면 조선의 근대화를 위했다고 하는 저들과 계속 시비하지 않으려면 피해자 한국인의 일제수탈과 침략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한다.

    특히 이 공간에서 토론은 좋지만 문장 꼬투리 잡는 일은 그만두고 글쓴이들이 무슨 철학으로 글을 썼는지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對 일본관'이 서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다수 한국인들이 금세기에 경험한 치욕의 역사에 물타기 하기를 중지하라.











  • 2010/12/14 [03:56] 수정 | 삭제
  • 원래의 양식은 하면 제까닥 김동기 씨가 나와야 하는 것인데 울 나라는 일방적으로 떠들고 마니.. 나도 제3자로서 쓰기가 민망하여 (예의상) 추상적, 암시적 표현 밖에 못한 것이지만 사실 중요한 단서는 다 제공했다.

    비철학자란 양반의 도발 때문이니 두 분은 원망 말라. ㅋ

    나는 이 글은 대자보 글이라 다 봤지만 김동기 씨 글은 일부 관심 가는 것만 슬쩍 보았다. 짚이는 데가 있어서 다 볼 필요가 없었다.

    십중팔구 김 씨의 키워드는 근대성인데 유 씨는 도왔냐 안 도왔냐를 주제로 본 것이다. 그래서 오해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했는데

    위 글에서 두 개의 단락만 보고도 유 씨가 지사 타입인 걸 알 수 있었다. 일본어 투의 말을 바로 잡는 건 백번 찬성인데 역사는 결국 가치의 문제이니 이 부분이 명확해야 한다. 실제로 두 분 간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견차이는 제시된 게 하나도 없으니 신기한 노릇이다.

    지사 타입이라는 건 "제목만 들여다보면 마치 한국사회에서 후쿠자와라는 인물이 침략의 원흉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했는데 제목에서 이런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제목에서는 "~만은 아니다"가 중요한 부분이다. (쉽게 쓰느라, 사실은 의미있는 부분이다 해야 하는데)

    또 제1단락에서 중국적 대응- 한국적 대응에 관한 김동기 씨의 글은 아무 문제가 없고 유 씨도 동의하기 때문에 2단락으로 넘어갔는데

    "하나는 조선왕조가 있어서 대응을 못 했다고 보는 견해와/ 또 다른 하나는 외부세력이 600년 사직인 조선왕조를 무너뜨리려고 해서 자주적 대응이 안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 여기서 나온 결론이 "김동기 씨처럼 ‘후쿠자와는 침략의 원흉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데,

    우선 결론이 자체로 틀렸고 김 씨는 침략의 원흉 "만"은 아니다 라고 했다. 큰 차이다. 전제도 일종의 책임론처럼 보이는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 외세가 사직을 무너뜨리려고 해서 자주적 대응이 안 되었다 (외세책임론)는 좀 치졸한 변명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이 둘을 큰 국면에서 하나로 본다. 이것은 역사를 하는 태도의 문제인데 유 씨말대로 한국의 눈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주체성에 더 기대어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데도 못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 (과거)는 그 나라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한다. 좋은 나라 나쁜 나라는 없다. 신도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일본책임론을 강조하려면 최소한

    일본의 입장에서 탈아론 말고 침략을 않고 어떻게 아시아를 보듬으며 서구 제국주의의 진행기에 아시아와 공동발전을 모색할 방법이 있었겠는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비록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밖에 생각하는 것은 김영조/유윤옥 두 분의 일제만행에 대한 발굴은 매우 귀중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에서 할 일을 (일제에 대한 합리적인 손해배상, 독립투사에 대한 처우, 자주적 외교 등) 왜 우리는 민간단체에서 산발적으로 고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관련하여 현재가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가 과거의 일본을 제아무리 미워하더라도, 현재에 친일청산을 거의 완성하고 일본에 대해 아직 불완전한 손해배상을 안 하며 독립적 외교를 하는 북한에 대한 공격에 우리가 일본과 한 축이 되어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천 배 더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과거에서 배워 현재에 써먹지 못하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식은 박물관이 아니다. 실천적 지식이어야 한다.


    ps. 수천명의 천재가 집중노력을 하더라도 학문적으로 일본책임론으로는 기울지 않는다. 이것이 큰 틀의 역사다. 다만 일본은 천황이 일제만행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학문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일본책임론이 인정되려면 국가주의가 없어져야 하는데 21세기는 틀렸고, 1-2 세기 뒤에 지구촌이 하나의 블록이 되고 때맞춰 외계인도 나타나서 지구와 외계가 대립구도가 되며, 제국주의 과거사가 지구인의 단합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 된다면 일본 책임론이 인정되겠지만, 그때 가서는 단합에 방해가 안될 것이다. 이미 충분히 국제결혼이 진행되어 국가의식이 없어진 뒤고 우주여행을 하고 의체인간 등 기기묘묘한 로보트들이 나타나는 판에...

    독일 총리가 유태인 학살에 무릎 끓고 사과한 것도 만행에 대한 정치적 행위로서의 사과이지 학계에서 독일 책임론이 인정된 것은 아니라 본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동책임론을 유발하는데 힘든 얘기다. 일본의 경우 서구를 모방한 2차적 행위자이기 때문에 더욱 사과하기가 힘든 것이며, 동시에 유럽처럼 침략의 피해국들이 엇비슷한 세력으로 성숙해야 하므로 남북통일이 필수적인데 통일에는 아무 관심도 의욕도 없는 사람들이 일본책임론을 입방정 떨고 있다.

    제국주의에 희생되었던 나라들이 전세계에서 대부분 다 잘 살고 있다. 우리 나라 같이 미-일 등 제국주의에 의해 분단까지 강요받은 비참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1. 분단을 '감사' 하며 2. 미국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일본만 갖고 타박을 하니 1. 2는 상호 모순이다. 모순을 극복하려면 , 미-일과 한 편이 되어 북한과 60년간 대립하는 개멍청이 나라에서 무슨 일제의 만행을 따지고 일본 책임론을 올리며 애국자인 척 하니 일본이 하도 기가 막혀 콧방귀나 뀌겠는가?

    일본천황이 사과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생전에 남북이 사이좋게 뭘 하는 걸 본적이 있나? 분단시켜 줬더니 저롷게 좋아하면서 겉으로 일본 잘못했다 하는 소리를 미친 놈이 아니면 누가 믿겠는가? )


    현실에서 일본이 경제대국이면서도 이제까지 아시아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 못하는 것으로 제국주의 가담에 대한 그만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소중한 기회에 한국이 북한과 빨리 통일을 이루어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계사의 헤게모니가 서진한다는 말이 있는데 (신은 골로루 돌아가며 기회를 주신다. 언젠가는 아프리카도 세계 중심국이 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미국 -> 일본 -> (한국/한반도) -> 중국.... 한반도를 건너뛰고 중국과 인도로 넘어가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통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전국민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실천적 지식의 결론이다.
  • 2010/12/14 [01:03] 수정 | 삭제
  • 아니 나는
    쉬운 것을 어렵게 쓰는 것이 우리나라 글의 문제,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것이 우리나라 글의 중요한 과제라고 평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유윤옥 씨나 김동기 씨 글에서 문제를 찾을 수는 있느나
    일단 두 분이 먼저 토론하는 것이 순서고
    그 이전에 우리 사회에 말이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환기하는 것이고

    사회가 철학을 점쟁이들이 하는 것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가망이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후쿠자와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우리를 도왔냐 안 도왔냐가 문제의 초점이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7살때 아빠와 함께 극장에 가면 물어 보지요. "아빠, 저기서 누가 좋은 사람이야?"
  • 비철학자 2010/12/13 [22:22] 수정 | 삭제
  • 철학자들, 아니 지식인들은 현학적인 글 쓰는 것이 취미인가?
    아니 잘난 체를 하기 위한 방편인가?
    도대체 쉽게 글 쓰지 못하는 것은 왜지?
    머리에 든 것이 지식이 아니라 오만이 들어 있는 것 아닐까?
    김동기 씨도 ㅎ 씨도 도대체 횡설수설
    여긴 당신들이 올 자리는 아니다
    강단에서나 노닥거리면 문제는 안 될텐데
  • 2010/12/13 [17:54] 수정 | 삭제
  • 두 분 글은 근본적으로 철학자와 역사학자 간의 문제는 아니고
    구체적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툼도 아니고
    관점과 측면의 문제인데
    1. 후쿠자와더러 한국을 더 위해달라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전제로

    보완관계라 다툼이 안된다. 등짝과 귀짝이 싸우면 코끼리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개론을 보고 각론을 보므로 유윤옥 씨 개론을 보고 김동기 씨 각론을 보면 될 정도.

    2. 조선의 싹수를 보고 한동안 기대나 간접 지원을 하다가
    3. 틀렸다 하고 돌아설 수는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김동기 씨는 2 부분을 말하고 윤 씨는 1. 3.부분을 말했다고 보면 안 되나.

    탈아론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본의 침탈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인데
    당시 일본학자들 중에도 조선합병이 장기적으로 일본의 손실이 된다고 반대한 사람도 꽤 있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국군주의자에게 밀리게 되었다. 후쿠자와는 이렇게 조선합병을 반대한 사람은 아니다.

    전근대성이라는 말이 재밌어서 쓰고 있는데 김동기 씨 글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이순신에 대해서도 일본인은 1차적으로 해임되었을 때 백성의 신망을 근거로 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를 의문시한다. 반란을 일으켰다면 근대성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최근까지도 한국이 근대화가 안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김동기 씨가 근대성과 관련해 용어정리의 문제를언급하는데 내가 평소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는 한글 자랑만 하고 있는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한의 이 형편 없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용어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북한 용어도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북한의 용어가 훨씬 정리가 잘 되었다. 그렇다면 근대성은 혁명과 관련하여 북한이 앞섰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개화기에 계몽사상가가 없어서 이 점 미-일-중과 다르며, 아직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꼬치꼬치 캐고 반복하고 중요한 문제에서 핵심을 요약하지 못한다.그래서 21세기에도 국회가 격투기판이 되는데 는 아주 수치스러운 부분이다. 말이 부족하며 원하는대로 운용할 수가 없다.전달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철학교수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4년간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로 일관하다가 임기 끝날 때는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듣던데?" 라고 말했다.
  • 신서울 2010/12/13 [15:38] 수정 | 삭제
  • 후쿠자와의 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에 있는 인상 깊은 말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청나라와 조선은 근대화를 거부하고 유교를 중심으로 한 구태의연한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청나라와 조선은 일본의 명치유신처럼 정치변혁을 꽤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양국은 수년 내에 망하여 서양제국에 분할 될 것이다.”

    “서양인들이 일본을 인식하기를 ‘청나라(당시)와 조선’ 처럼 동일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좋지 않다. 이들 나라와 일본이 동일시 되는 것 자체가 ‘일본 최대의 불행’이다. 악우(惡友)를 가까이 하는 것은 함께 악명(惡名)을 면치 못하는 일이다. 나는(후쿠자와) 마음속으로 아세아의 악우(惡友)(조선, 청나라)를 사절(謝絶)한다”

    후쿠자와를 보는 눈을 가지고 철학자의 눈으로 보냐 역사적 사실로 보냐는 말은 말장난이다. 마치 철학으로 보면 뭔가 다른 게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야 말로 철학자가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누가 다루든 후쿠자와를 다룰 땐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논리성을 가지고 접근해야한다.

    “낡은 조선왕조를 타파하라고 돈 몇 푼 집어 준 것”을 ‘조선독립운동에 협조’ 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철부지성은 근절되어야한다. 아직 공부가 모자라는 지식이 일천한 대학생 눈으로도 그것 하나만은 파악 할 수 있다. 후쿠자와식 논리라면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박수 쳐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투고의 김동기 씨 글을 후쿠자와 공부하는 친구들과 꼼꼼하게 읽었다. 이 글에서 자칫 후쿠자와를 모르는 사람들이‘별 것 아닌, 때로는 괜찮은 친구'로 생각 할 우려를 읽었다. 어른들이라면 좀 더 진지한 글쓰기를 해주길 바란다.
  • 2010/12/13 [09:08] 수정 | 삭제
  • 프레시안과 대자보 사이에서 내 느낌을 말하면
    김동기 씨는 코끼리의 귀짝이고
    이윤옥 씨는 코끼리의 등짝이다.
    많이 더 크지만 귀도 있어야 코끼리다.

    두 분 걸 합쳐도 코끼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례가 안 된다면.

    그런데 제목이 치명적이다.
    '탈아론'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의 원흉!
    -----------> 김동기 씨는 나는 귀짝이다 고 밝혔는데

    이윤옥 씨는 나는 코끼리다고 하는 것 같애서...


    역사도 깊이 들어가면 철학의 문제가 되므로
    이 단 하나의 사실이
    상대방의 글을 오해를 한다면
    이윤옥 씨가 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밝혀 준 게 유감이다.
  • 다물인 2010/12/11 [20:20] 수정 | 삭제
  •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언제들어도 좋은 말씀인것 같다. 무 고집멸도의 상황에서 또 다시 고집멸도할 꺼리를 찾는 사람들, 그것이 곧 권력이고 재력을 찾는 이유이다. 그렇게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죽음의 한계를 벗어너지 못하는 그래서 탈아를 해야되지만. 그 탈아가 곧 권력에 이르려는 욕망의 표현이고 보니..도인들이 고집멸도에서 벗어나려 해도 살아서는 벗지 못하는 한계..죽음으로 만이 해탈의 경지에 오르고, 그 과정이 수행이니 행복의 욕망을 찾아 길을 떠난다..아니 침략을 한다. 라고 표현해야..길을 떠난다는 것은 방황이 아니라 원정길에 가는 것..집떠나면 고생인데..그렇게그렇게 길을 떠나는 수행은 무엇인가? 그래서 그래서 세상에 도는 없고, 단지 욕망을 성취하려는 ..그래서 득도라고 하지 않는가? 뭔가를 소유해야 되는 욕망의 끝없음이여..그래서 탈아론으로 포장된 거시기도 사실 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만엥짜리 지패의 욕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