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선택', 45년 장기수의 '양심자유' 투쟁사
아직도'다른 한쪽을 버리게 하는'선택의 폭력은 끝나지 않아
 
이숙진   기사입력  2003/11/04 [14:45]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그 사상을 지켜낼 수 있도록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영화 선택 포스터     ©청어람

영화는 볼테르의 이 유명한 말로 시작합니다.

제가 장기수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 김하기의 소설 '완전한 만남'을 통해서입니다. 김하기는 자신의 체험담이기도 한 그 소설에서 그 동안 누구도 입에 담지 못한 장기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삼사십년을 감옥 안에 감추어져 있던 장기수들의 이야기는 비로서 그렇게 세상 밖으로 전해져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만났던 장기수는 도대체가 비현실적이었으므로 그야말로 소설 속의 주인공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그때 나의 관심은 오히려 저 먼나라 남아프리카의 만델라가 갇혀 있던 27년의 수형생활 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에게 이 땅의 40년 이상을 살고 있는 장기수들은 감옥 안의 박제된 인간이었던 겁니다.
 
영화의 주인공 김선명은 1951년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95년 석방될 때 까지 45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냅니다. 당신은 피가 살아 돌아 펄펄 뛰는 심장을 가진 인간이 0.75평의 감옥 안에서 보낸 45년의 세월을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그 45년은, 제가 태어나 아직 다 살아내지도 못한 세월입니다.
 
영화를 빌어 주인공 얼굴에 줄곧 오버랩 되던 또 하나의 '김선명'인 박 선생님 이야기를 해 보려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박 선생님이라 해도 극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듯 합니다. 이 영화는 비단 김선명만의 이야기가 아닌 박 선생님을 비롯한 그 세월을 함께 산 모든 장기수들의 이야기니까요. 
영화 속에서도 잠깐 언급됩니다만,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의해 장기수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 되고 세계적인 인권의 문제로 부각됩니다. 이후 민가협에서 장기수 후원 활동의 하나로 시작한 '시사 주간지 보내기'운동에 우연히 저도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원'이래 봐야 단지 주간지 구독료만  대납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저는 박 선생님을 담장 안과 밖에서 편지로 만났고, 그 만남은 99년 석방되고 2000년 북으로 송환되실 때 까지 이어졌습니다.
 
▲필자가 장기수 박 선생님에게 받은 편지들. 귀퉁이에 검자가 선명하다.     ©이숙진
처음 박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던 때의 생경스러움이 떠오릅니다. 70에 가까운 '간첩'의 또박또박한 글씨와 평온한 문장, 그리고 봉투와 편지지 안에 선명하게 찍혔던 푸른 색의 '검'자가 그것이지요. 우중충한 회색 담장 안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하여 색색의 꽃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한달에 한번 우체국에 가 영치금을 넣으며 조마조마 설레던 저를 보고 그 때 제 직장 동료는 "꼭 연애하는 여자 같다"고 했지요. 그랬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상으로 중무장된 간첩'과는 너무나 다른, '순진하기 이를데 없는 칠순의 간첩'과 연애를 했습니다. 오랜 편지 끝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 대전교도소에서 면회한 박 선생님의 모습은 제게 또 얼마나 실망(?)이었는지요. 무섭지만, 멋있는 백발의 영화속의 '스파이'를 상상하던 박 선생님의 현실 속의 모습은 더도말고 딱 우리 이웃집의 할아버지였던 겁니다.

제가 면회 온단 편지를 받고 감옥 안 창에서 기르던 조롱박에 국화꽃을 그려 넣어 면회날  선물로 가지고 나온 박 선생님을 보는 순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한낱 보잘 것 없는 조롱박에 들였을 정성과, 잡힐 당시의 -지금의 저 보다도 어린- 눈빛 형형한 그 청년의 모습이 함께 보여 어찌나 마음이 먹먹하던지 꼭 안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 조롱박 선물은 교도소 측의 반대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이후 석방될 때 가지고 나오셔서 다시 받았습니다만 그 날 그 조롱박을 주지 못하게 되자 크게 실망하시던 박 선생님을 보는 저 또한 여간 마음이 아픈게 아니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북에 처와 4남매를 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맏딸이 저와 동갑이고 막내는 뱃 속에 있을 때였지요. 헤어질 때 울며 매달리던 딸에게 "네가 학교 갈 나이에 돌아오마"던 약속을 30여 년이 넘도록 지키지 못하고 계셨던 겁니다.
 
영화는 그 분들의 사상을, 이데올로기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무지막지한 '전향공작'에서도 장기수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양심의 자유'를 말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양심'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영화에서 김선명은 "선택은 어느 한 쪽을 고르는게 아니라, 다른 한 쪽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송두율 교수입니다. 우리들이 그 사람의 사상과 이념에 동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로 인해 탄압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함께 싸워줄 수는 없는걸까요? 아니 싸워주기는 커녕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한 인간의 양심을 갈기갈기 찢어 난도질 해 대는 이 땅의 언론과 다른 쪽의 여론들은, 단지 양심을 지키고자 했다는 이유로 40년이나 인간을 감옥에 가둬두고 눈 감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는 것 같아 너무나 끔찍합니다. '간첩'이었던 장기수들도 석방되어 그들의 희망대로 북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쪽을 버리고 이쪽을 '선택'한 송교수를 상대로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송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은 여기에서 그만 멈추어야합니다.
 
평양시 용성구역 용성1동...

박 선생님이 북으로 돌아가시며 저에게 주고 간 박선생님의 고향 주소입니다. 편지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설사 내가 이사를 해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받지 못해도 내가 박선생님께 편지를 하면 반드시 받을 수 있을테니 그때까지 잘 간직하라며 적어 준 주소입니다. 그러나 전 요즘 송두율 교수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관용없음과 진전되지 못하는 남북관계를 보면서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도대체 언제일 지 모르는 그 '나중에' 지금 이미 70을 넘으신 박선생님이 살아 계시기나 할까요.
 
영화 이야기를 하려다 이야기가 다르게 빠졌습니다.

'선택', 참 잘 만든 상업영화입니다. 다큐가 아닙니다. '장기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무겁지 않습니다. 김선명 역의 김중기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연기 또한 탄탄합니다. 이 가을 삶과 자신의 양심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은 당신께, 한국의 '켄 로치'를 기다리는 당신께 홍기선 감독의 '선택'을 권합니다.

* 현재 영화 '선택'은 광화문 흥국생명건물 지하 <씨네큐브>에서 상영중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11/04 [14: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